평택 공사장 40여일전 ‘화재위험’ 경고 받았다… 또 ‘예견된 인재’
산업안전보건공단 작년 11월 점검… “배관 절단작업때 화재 위험” 지적
개선 확인했지만 한달후 화재 발생, 경찰-소방당국 등 오늘 합동감식
일정 맞춘 무리한 공사 여부도 조사… 순직 소방관 3명 주말 합동영결식
유족-동료들 ‘마지막 길’ 눈물 바다, 훈장-1계급 특진… 대전현충원 안장
예고없이 찾은 文대통령, 운구 행렬에 묵념 문재인 대통령(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이 8일 오전 경기 평택시 이충문화체육관에서 경기도청장으로 엄수된 순직 소방관 합동 영결식에서 운구 행렬을 향해 묵념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경기 평택시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 화재 현장에 투입됐다가 순직한 소방관 3명의 합동 영결식이 8일 오전 평택 이충문화체육관에서 경기도청장으로 엄수됐다. 한편 화재가 발생하기 불과 40여 일 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이 현장을 점검한 후 화재 가능성을 경고한 것으로 나타나 ‘예견된 인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 참석… 유해 국립대전현충원 안장
8일 오전 열린 영결식에서는 고 이형석 소방경(51), 박수동 소방장(32), 조우찬 소방교(26)와 함께 일하던 평택송탄소방서 119구조대 채준영 소방교(34)가 떨리는 목소리로 고별사를 읽었다.
채 소방교는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놓칠까 메케한 연기 속으로 묵묵히 들어가던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팀장님 수동아 우찬아. 이제 모든 걸 내려놓고 뜨겁지 않은 세상에서 편히 쉬길 바란다”고 울먹였다.
영정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고인 앞에 주저앉은 유족들은 갑작스러운 가족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영결식장을 지키던 동료들은 “미안하다” “고생 많았다”라는 인사를 남기며 눈시울을 적셨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예고 없이 영결식장을 찾았다. 별도 추도사 없이 일반인 조문객들과 앉았고, 영결식 중간 눈을 질끈 감거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헌화와 분향을 한 뒤 “국민을 대표해 위로를 전한다”며 유가족들에게 조의를 표했다.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영결식이 끝나고 운구 행렬이 행사장을 빠져나가자 동료 소방관들은 거수경례로 순직 소방관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고인들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정부는 순직한 소방관 3명에게 옥조근정훈장과 1계급 특진을 추서했다.
○ 10일 합동감식… 화재 원인 본격 수사
영웅들의 마지막 미소 6일 경기 평택시 청북읍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 화재 현장에 투입됐다가 순직한 송탄소방서 소방관 3명이 재투입되기 약 2시간 전 동료들과 짧은 휴식을 취하며 검게 그을린 얼굴로 웃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형석 소방경, 박수동 소방장, 조우찬 소방교. 사진 속 나머지 소방관 2명도 현장에 투입됐다가 자력으로 탈출했다. 독자 제공
이번 사고는 사전에 예고된 것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단은 지난해 11월 23일 이 공사장에 대해 “4층 배관 절단 작업 시 화재 위험이 있다. 불티 비산(날아서 흩어짐) 방지포 및 소화기 설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1, 4층에서는 가연성 물질인 우레탄 작업이 진행 중이었는데 소화기조차 없었던 것이다. 공단은 지난해 11월 30일 4층에 대해 지적 사항이 개선됐음을 확인했지만 불과 한 달 후 1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공사장에서는 2020년 12월에도 구조물이 무너져 작업자 3명이 숨졌고 그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사고로 약 한 달간 공사가 중단됐지만 준공은 올 2월로 바뀌지 않았다. 경찰은 늦은 밤 시간에 화재가 발생한 만큼 준공 일정을 맞추느라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했는지 조사하고 있다.
또 경찰은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해 소방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과 함께 10일 합동감식을 진행할 방침이다. 불이 처음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 1층이 집중 감식 대상이다. 7일에는 시공사와 감리업체 하청업체 등 6개 회사 12곳을 압수수색했고 관계자 14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조우찬 소방교의 외삼촌은 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화재 당시 안전관리자는 현장 작업자가 5명뿐이었다고 했지만, 일부 작업자가 3명 더 남아 있다고 주장해 혼선이 빚어졌다”며 “좀 더 확실한 정보를 갖고 수색했다면 이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있지도 않은 생존자를 찾느라 불필요하게 구조팀이 투입됐다는 지적이다. 유족들은 소방당국에 “이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평택=이경진 기자, 평택=송진호 기자, 박종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