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다니엘 7,2ㄴ-14 루카 21,29-33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혼인 주례를 하면서 신랑과 신부에게 질문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두 분은 결혼생활을 하면서 일생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겠습니까?”
이 질문에 신랑과 신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 사랑하고 존경하겠습니다.”
사제는 신랑과 신부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주님께서는 두 분이 교회 안에서 고백한 이 합의를 당신 은혜로 확고하게 하시고,
두 분에게 복을 가득 내리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맺으신 것을 사람이 풀지 못할 것입니다.”
많은 부부가 약속한대로 아플 때나, 성할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평생 서로 아껴주고,
보듬어 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혼인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격이 달라서, 마음이 변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약속은 지킬 때 의미가 있습니다. 깨어지는 약속은 이미 약속이 아닙니다.
오늘 독서에서 다니엘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다니엘 에언서 7장 2ㄴ절-14절)
예수님께서는 다니엘이 예언한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의로움과 하느님의 거룩함이 드러나는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신앙인들입니다. 그들은 가진 것을 함께 나누었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슬픔도, 고통도, 절망도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가난도, 질병도, 죽음까지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고 있음을 신앙으로 고백합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눈으로 하늘을 볼 수는 없지만 하늘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가졌던 권력을 빼앗길 줄 알았던 헤로데가 있습니다.
그동안 누렸던 기득권을 빼앗길 줄 알았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두려워했던 빌라도가 있습니다.
두려움과 걱정 때문에 예수님을 배반했던 제자들이 있습니다.
거짓된 선동에 휩쓸린 군중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던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에서 시작되었지만
죽음을 넘어 부활을 통하여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영토, 국민, 정부, 주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믿음, 희망, 사랑, 부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나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약해지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약해지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물리적인 ‘틀’에 갇혀있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은 이들에게, 사랑하는 이에게,
희망을 간직한 이에게 부활로 완성되는 하느님 나라는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루카 21,29-33)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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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다니엘 7,2ㄴ-14 루카 21,29-33
변화 가운데서 영원하신 주님을 만나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루카 21,33)
봄 가을이 따로 없는 팔레스티나에서는 나무에 잎이 돋우면 여름이 이미 다가온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성전파괴와 같은 큰 재난이 나타나면 하느님 나라가 다가온 줄 알아차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루카 21,29-31).
우리는 우주만물의 변화 속에서, 빛의 속도로 발달하는 생명공학을 비롯한 과학과 정보기술,
다양한 문화와 종교현상, 빈부격차의 심화, 급격한 의식의 변화를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변화와 발달의 끝이 어디일지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이지요.
이런 가운데서 우리는 이런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주만물은 끊임없이 변하고 국가도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인간 또한 희로애락과 생노병사를 겪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있게 하는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그런데 변화를 들여다보면 선과 사랑과 의로움을 담고 하느님을 향하여 변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와 정반대의 변화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변화와 사건을 통해 영원성을 드러내시지요.
우리는 시대의 징표를 읽어야 합니다.
변화나 사건을 보며 영원하신 하느님의 뜻을 읽는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어떤 변화나 사건을 통해서도 늘 당신의 뜻을 드러내고자 하십니다.
심지어 악과 고통스런 사건들도 하느님 계획의 일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긍정적 변화든 부정적 변화든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읽을 수 있어야겠지요.
우리는 어떤 삶을 살다가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을지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사랑이신 하느님의 원의와 손길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향해가는 긍정적인 변화라면 그 안에 담긴 사랑의 메시지를 읽고 은총의 선물에 감사하며
그것을 공유하고 되돌려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하느님의 자비와 선을 거스르는 변화라면 그 지점이 바로 회개의 시발점이요
하느님을 향한 반환점이 되어야 함을 의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그럭저럭
문제없이 살아가는 '거짓 안정성' 안에 머무르곤 합니다. 넘어졌다 하여도 곧바로 그 잘못을
인정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야겠지요.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과 반성, 그리고 시대징표를 읽어 변화 가운데서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영원성을 찾아나가는 것이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이를 위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해체를 허용하는 용기'입니다.
불의와 잘못된 구조와 타협하지 않고 과감히 맞서 해체함으로써 사랑과 정의의 질서를 바로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해묵은 습관과 굳어버린 사고의 틀을 미련 없이 해체할 수 있어야 하지요.
한낱 먼지에 지나지 않은 인간이 권력과 돈의 힘이 영원하리라 믿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영원하신 하느님을 믿는 우리는 그래서는 안되겠지요.
각종 사건들과 부정부패, 도덕적 타락, 비인간적 현실,
우상숭배 가운데서도 하느님의 영원성을 발견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오늘도 거짓 안정성에서 벗어나 자신을 해체하여 하느님의 눈으로 만사만인을
바라보고, 시대징표를 읽어 하느님의 영원성을 살려나갔으면 합니다.
지금이 바로 고통과 시련과 슬픔 가운데서도 말씀을 실행하고
사랑의 질서를 세우기 위한 세상의 해체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작은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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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우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다니엘 7,2ㄴ-14 루카 21,29-33
징표를 식별하고 신성을 실현하라
“므네, 트켈, 파르신.”
벨사차르 임금이 본 이 두려운 암호를 다니엘이 가볍게 해독했습니다.
그는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 꾼 어마무시한 꿈을 명쾌하게 해몽하기도 했습니다.
가볍고 명쾌하게 해 내기는 했지만 실은 그 내용의 심각성 때문에
죽기를 각오했어야 했던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꿈의 해몽이건 암호의 해독이건 모두 숨겨진 뜻을 알아내는 일인데,
오늘 말씀은 인간의 현실 안에 숨은 뜻을 식별하라는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부들은 이 메시지를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라는 뜻으로 풀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이끄시는 방식이 징표를 드러내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 징표를 식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또 필요합니다.
만일 이 징표를 알아보지 못하면 눈을 가리고 길을 가는 것처럼이나 위험할 것입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나라든 교회든 마찬가지로 그러할 것입니다.
다니엘의 환시(다니엘 예언서 7,2ㄴ-14)는 가까운 미래에 그 당시 지중해 지역권에서 일어날
민족들의 운명을 내다본 식별 메시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일상의 자연적 징표를 보고 날씨와 기후를 식별함에 빗대어 당신께서
선포하신 일들 안에 숨어 있는 하느님 나라의 징표를 식별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온 누리에 다가올 하느님 나라의 징표는 신성을 드러냅니다.
신성을 담고 있는 징표는 다니엘이 그러했듯이 하느님의 지혜를 받아야만 알아볼 수 있고,
사도들이 그러했듯이 예수님의 신성에서 나오는 거룩한 기운을 받아야 실천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세상일들이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되었음을
알려주는 기록이며,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믿는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이 그분을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 나라와
부활의 삶이 교회 안에서 계승되고 있다는 놀라운 현실을
세상과 후대에 널리 알리고자 힘쓴 기록입니다.
신구약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이를 기준으로 삼아 과거 역사의 기록 안에서나,
현재 사회적 상황에 대해서 드러나고 있는 징표들을 식별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지혜에 따라서 실천하는 데 필요한 신성의 거룩한 기운은 성체성사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징표를 식별하는 지혜와 신성을 실현할 수 있는 거룩한 기운을 주려 하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루카 21,28).
서울대교구 이기우 사도 요한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
가톨릭 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