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속세 생각 ( 九雲夢)
성진이 망연자실하여 마음을 진정치 못하고 돌아와 용왕의 말씀을 대사께 사뢴즉 대사는 그가 늦게 돌아옴을 꾸짖으니, 성진이 대답하되,
“용왕이 지성으로 권유하오매 박절하게 거절할 수 없어 저물었나이다.”
대사는 다시 묻지 아니하고 곧 물러가 쉬라 하매, 성진이 초막으로 돌아와 빈방 안에 홀로 앉아 있노라니,
팔선녀들의 구슬 같은 음성은 귀에 쟁쟁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앞에 앉아 있는 듯 눈에 선하매 심사가 황홀하여 진정치 못하겠는지라, 번죄와 망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더라. 문득 생각하되,
“세상에 나 하나로 태어나면 어려서 공명의 글을 읽고,
자라서는 성군을 섬겨 나아가면 삼군(三軍)의 장수가 되고 돌아오면 백관(百官)의 어른이 되어 몸엔 금의를 입고 허리엔 금인을 차고
눈으로는 고운 빛을 보고 귀로는 신묘한 소리를 들어 미녀와의 애련과 공명의 자취를 전하는 것이 대장부의 할 일이거늘 / 우리 불가의 도는 한 그릇 밥과 한 잔의 정화수요,
수십 권의 경문에 백팔염주를 목에 걸고 설법하는 일 뿐이라, 그 도가 높고 깊다 할지라도 적막하며, 설령 최상의 교리를 깨달아
대사의 도를 이어받고 연화대(불상을 모셔놓은 대) 위에 앉을지라도, 삼혼칠백(三魂七魄)이 한번 불꽃 속에 흩어지면 어느 누가 성진이 세상에 났던 줄을 알 수 있으리오?”
이렇듯 심란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더니 밤이 깊어 눈을 감은즉 팔선녀들이 나타나고 , 눈을 뜨면 흔적이 없는지라, 이에 이르러 몹시 뉘우치며 말했다.
“불가의 법은 마음자리를 죄없이 맑게 함이 제일 공부인데, 중이 된 지 십 년 동안에 일찍이 자그만 허물 하나 없었는데,
이제 이렇듯 올바르지 못하고 쓸데없는 생각에 자심하니 내 앞날에 어찌 해롭지 아니하리오?”
매향을 피우고 꿇어앉아 목에 건 염주를 세어가며 가만히 일천불(一千佛)을 생각하는데, 창 밖에서 동자가 부르되,
“대사께서 부르시나이다.”하니 성진이 몹시 놀라며 생각하기를,
“이렇게 깊은 밤에 부르심은 반드시 연고가 있다.”하고, 동자와 함께 법당에 이르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