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003년 1월 12일 현재 막을 내린 추진혁의 카페 [추군의 중앙정보부]에서 벌어진 일련의 언쟁에 제일 마지막 주자로 합류한 Worshiper라는 아이디를 가진 인물의 인문학적 소양을 이 글에서 분석해보고자 한다.
이 글은, 분석대상을 비방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지 않고, 분석대상이 이런 논쟁에 뛰어들만한 인문학적, 종교적 교양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검토와, 검토결과에 의거 그 부족함, 혹은 왜곡됨을 보충하기 위한 서적과 행동지침에 대해 열거하고자 한다.
2. Worshiper의 글 두편에서 보여지는 개괄적 성격
우선 그가 쓴 글 전문을 싣고자 한다. 화살표 뒤에 붙여서 써놓은 글들이 Worshiper의 글이다.
(1) 명성교회의 신도이다.
(2) 이정민군과 친분이 있다.
(3) 이정민군의 신앙이 독실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4) 자신 역시 독실하다.
(5) 이정민군과 같은 논조를 펴고 있다.(이정민군의 글은 꽤 많은 분량이기 때문에 같이 싣기가 곤란하다. 이 글을 보는 이들의 양해를 바라는 부분이다.)
등으로 정리가 가능하다 여겨진다.
3. Worshiper의 인문학적 소양 분석
1) '전제조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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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음과, 보혈은 "기독교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분은 이교도며, 죄인이며, 악한이며, 창녀며, 살인자를 구별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을 위하여 보혈을 흘리셨다.
그것은 어떠한 "보답"을 바란 것도 아니었으며, 그분이 이땅에 태어나실 때부터 "정해진"것이었다.
-> 맞아요. 근데요. 그 축복(복음과 보혈..궁극적으로 구원)에는 한가지 전제조건이 있어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 믿음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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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대상은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필수의 전제조건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분석대상 아닌 그 어느 크리스천 역시 하고 있는 주장이며, 크리스트교의 기본적인 사상의 바탕이기도 하다. 그래서 분석대상은 "가롯 유다와 같이 되지 말라.", "누구와 같은 신앙을 가져라." 라는 말은 전제조건에 비추어볼때 정당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주장은 '굳이 크리스천이 아니라도 착한 일을 아주 많이 한다면 천국에 갈 수 있다' 라고 주장하는 비크리스천들을 논박하는 근거로 지금까지 흔히 사용되어 왔고, 분석대상의 주장은 그것들과 하나도 틀리지 않다.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가 가능하다. '그러면 우리는 북학파 이전까지 아무도 구원받지 못하였단 말인가.' 언쟁을 벌였던 김대한군의 입장은 실로 이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후자의 논리에 무게를 조금 더 두고 싶다. 이것은 '서양문물을 너네 나라에 들여놓음으로써 경제적 발전의 토대를 우리가 만들어주었다.'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극우인사들의 발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떻게 그 둘을 대조할수 있는가? 서양문물을 크리스트교로 바꾸고 경제적 발전을 구원으로 바꾸면 말이 참 그럴듯하다. 이들의 주장과 내가 한 말바꿈의 차이는 무엇인가? 단적으로 말해 없다.
물론 자기네 교리를 비호하고 지키고 싶어하는 분석대상의 입장은 너무도 잘 이해할 수 있으나, 그것은 자기단속이면 족하다.
2) '신약의 하나님과 구약의 하나님'에 대하여
'신약의 하나님과 구약의 하나님에 대하여'라는 제목을 달 수 있을 정도의 지엽적인 논쟁이 있었다. 분석대상은 신약의 하나님은 구약의 하나님과 같다고 단정내렸으며, 언쟁상대인 김대한군은 신약의 하나님과 구약의 하나님은 확연히 다르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둘의 근거는 모두 성서였다.
신약의 하나님과 구약의 하나님에 대한 문제는, '다르다'라고 보는 것이 옳다. 물론 이것은 신의 대변인적 입장이 아닌, 인간이 지켜보는 일반적인 종교철학사의 관점에서 보면 타당한 논리이다. 무엇이냐 하면, '모세가 세운 율법의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서 사랑의 하나님으로 바뀌었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붓다의 자비사상과 더불어서 세계종교계를 꿰뚫는 하나의 종교혁명으로서 간주될 수 있으며, 예수가 위대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신학적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 신학적 입장 역시 마찬가지로,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다르다고 말한다. 국제 기드온 협회 등에서 나누어주는 성경에는 구약 없이 신약과 시편만 실려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또한 루터 등의 종교개혁에 있어서 개혁논리의 중심에 있었던 경전은 구약성서가 아니라 신약성경이었다.
신약의 하나님 = 구약의 하나님이라는 등식을 세우면 예수의 존재가치가 그야말로 무의미해진다고 할 수 있다. 구약의 하나님을 신약의 하나님으로, 율법정신을 박애정신으로 바꾼 것이 서양종교사에서의 예수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한다면, 저 등식 속에서 예수가 자리잡을 틈바구니는 없다. 저 등식의 틈바구니에서 '현재의 예수의 개념'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모세 뿐이다. 모세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던 야훼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한, 구약성서는 실상 '보편종교의 절대자'가 갖추어야할 몇가지 모습, 특히 평등(구원기회의 평등)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보편종교의 절대자'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신약의 하나님과 다르다.
그리고 구약은 그토록 예수가 이스라엘에서 성토하던 제사장, 부자 등 상위계층들이 섬기던 종교의 경전이었다. '예수를 영접함'을 최고의 종교적 가치고 삼는 크리스천이, 과연 이런 예수의 행각으로 말미암아 "신약의 하나님 = 구약의 하나님" 이라는 등식을 성립시킬 수 있을까.
3) '유대교의 독창성'에 대하여
사실 이 부분은 건드리기가 무척이나 힘이 든다. 구약의 제일 처음에 기록되어있는 이이기들은 서력기원을 따져볼때 대략 기원전 2000년 전의 일들이고(중세유럽의 암흑기때에는 신학자들이 달려들어 지구창조는 8000년 전에 이루어졌다는 것도 증명해냈다. 물론 이것은 다윈의 '종의 기원'에 의해 무참하게 무너지고 말았지만.) 그것을 증명하는 서적 또한 구약성경을 제외하면 전무한 상황이다. 그와 동시대에 동지역에서 살았을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 유역의 민족들은 지금은 그 기원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며, 그 옆에 있는 이집트는 파라오 역사만을 기록하기 때문에 이민족에 대한 기록을 찾기가 힘들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라는 논문에 의하면 모세는 이집트인이다. 또한, 성서에서 대탈출이라는 뜻의 'Exodus'라는 말을 쓰긴 하지만 성서는 물론 그 어떤 기록에서도 모세가 몇 명을 끌고 나왔는지 찾을 수 없으며 따라서 그가 한 민족을 끌고 나온건지 몇 명을 끌고 나와서 신화를 조작한 것인지 알수 없다고 말한다.
'사람이 정신적인 건강을 찾는데는 새로운 종교나 철학이 아닌 가벼운 식사와 운동이 더 효과적이다.'라는 논조로 주장하는 20세기 최고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에 대해서도 '미친놈'이라는 한 마디로 일축하는 크리스천들에게는 다소 비현실적이고 말도 안되는 논문이긴 하나, 그 논문 안에서 펼쳐지는 '모세가 이집트인인 이유'는 그 근거가 충분하다.
첫번째, '모세'는 이집트어이다. 성서에는 '물에서 건져내어진 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언어학적 분석에 의하면 구약시대의 히브리어에는 수동태가 없다. 따라서 '물에서 건져내어진 자'라고 하는 것은 분명히 모순이다.
'모세'라는 이름의 흔적은 유태가 아니라 이집트에서 찾을 수 있는데, '모세'는 [%#!^ 신의 아들] 이란 뜻이다. 이를테면 이집트 신 중에 한명인 토트라는 이름을 앞에 붙이면 [토트 신의 아들]이란 뜻에서 '토트-모세'라고 기록한다. 마찬가지로 태양신 라가 앞에 붙으면 '라-모세', '세트-모세'등으로 기록한다.
그런데 이집트 기록에는 이 모든 이름을 다 기록하지 않고 '모세'라는 이름만 나와있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는데, 이것으로 미루어 추측하면, 앞의 신 이름은 빼고서 '모세'라고만 부르는 게 당시 이집트의 일반적 관례라는 것이다.
구약의 모세 역시 이 '모세'였을 가능성이 높다.
두번째, 세계 최초의 일신교적 흔적이 보이는 곳은 이스라엘도 중국도 로마도 아닌 바로 이집트이다. 이집트 역사가들의 기록에 의하면, 이집트 제18왕조 아케나톤 파라오는 '태양신'을 유일신으로 섬기는 종교체계를 세웠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아톤'이라 명명했다. 하지만 아케나톤 사후에 이 종교는 기득권 제사장 계층에 의해서 공중분해되었고, 이집트 종교로서 하나로만 남게 되었다는게 프로이트의 논문에서 보이는 주장이다. 그 '아톤'신의 종교가 지금의 '유태교'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이 프로이트 논문의 핵심이다.
세번째, 할례 즉 포경수술의 풍습은 이스라엘의 전통이며 신이 주신 의무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모세가 생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연대에 이집트 주변(사하라에서부터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 유역까지 모두 아우르는)에서 할례풍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이집트 한 곳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할례해요' 라는 기록이 남아있는 곳은 이집트를 제외하면 아무 곳도 없다. 프로이트는, 이를 배경으로 '이집트의 할례풍습을 모세가 세력을 규합(당시에는 유태종족이라고 하는 집단이 없었다.)하며 그들에게 할례풍습을 가르쳐주었다고 주장한다.
4) 창조적 진화론에 관한 논변
이것은 달리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의 6일이 하나님의 6일이 아니다.
이것의 근거가 되는 것은 성서의 번역순서인데, 성서가 한글로 번역되기까지는 히브리어 -> 그리스어 -> 라틴어 -> 독일어 -> 영어 -> 한글 의 순서인데, 번역당시 고대 그리스어에는 'day(하루, 이틀, 사흘, 나흘...)'과 'period(첫번째 기간, 두번째 기간, 세번째 기간...)'의 구분이 없었다. '기간'이 '날'로 오역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5) 미국사에 관한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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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요한 것도 축복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하나일 뿐이죠. 개 같다는 표현은 너무 과격해요. 또 영국에서 미국으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 건너간 청교도는 약 2,300명의 소수입니다. 과연 이들이 가진 힘으로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정복할 수 있었을까요? 코르테스. 아시죠? 청교도들이 건너가기 전 아메리카 대륙은 이미 대항해시대 무렵 유럽의 세력들에 의해 거의 정복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청교도들은 이미 만들어진 영국의 식민지땅으로 건너간 것이죠. 또한 미국을 세운 주체는 청교도가 맞습니다. 미국은 개신교국가입니다.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 영향을 끼치던 세력 중 유일한 개신교세력이 바로 영국의 청교도입니다. 아- 부르주아 계급. 청교도 아닙니다. 청교도들은 종교개혁 운동 후에 성경과 교리의 괴리에서 성경에 기록된 참 진리를 쫓은 집단입니다. 부르주아 계급은 후자죠. 음. 저보고 세계사 공부하라는 분은 처음입니다. 잘난척 하는게 아니라 진짜에요. 느낌이 신선합니다;
딴건 몰라도 신대륙, 아니 미국을 세운 이념은 영국의 청교도들이 개신교 박해를 피해서 신대륙(미국)에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기 위함인데. 육지에 정박해서 가장 처음 예배를 드린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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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건너간 것을 단지 신학적 행위라고만 보는 이런 식의 의견은 수없이도 많이 교회들에 의해서 되풀이되고 왜곡되어왔다. 그리고 그 단면을 이 글들에서 여과없이 볼 수 있다.
정말 분석대상은 세계사공부 다시해야겠다. 코르테즈같은 대항해시대적 사람들이 파괴한 아메리카는 그야말로 아메리카 전체의 '일부 중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그렇다고 이들의 행동이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대항해시대적 사람들은 그것 하나만으로 큰 발견이라 믿고 카리브해, 대서양 연안에서 더 이상 진출하지 않았다. 우리가 흔히 '서부개척'이라고 부르는, 총으로 원주민들을 짓밟은 짓은 청교도 이주 후에 이루어졌다. 자세한 속사정은 '나를 운디드 니에 묻어주오'라는 책에 자세하게 써져있다.
간단하게만 짚고 넘어가면,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으러 온 게' 아니었다. 물론 청교도 박해로 꽤 많은 지식인(특히 공상적 사회주의의 창시자인 토마스 모어가 대표적)이 죽어나간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사회에서 지식인이 몇명이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더군다나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노동계층은 종교따위는 신경쓸 시간도 없었다. 원시자본주의란 그런 것이니까.
더군다나, 영국에서 종교에 관계없이 성공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데 성공했다면 굳이 그 멀미나는 배까지 타면서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대지 미국으로 건너갈 필요가 있었을까. 게다가 배 닿으면 가장 먼저 도착할 수 있는 미국 동부 연안은 그야말로 대항해시대의 세력들에게 다 점령당한 상태인데. 인간은 '자신의 최대 행복과 최소의 불행을 추구하는' 공리功利주의적인 동물이다. 크리스천이라고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결국 그 2300명의 대다수는 영국의 절망적인 노동환경을 이기지 못하고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그 배를 탔던 노동자, 범죄자들이었고, 그 외에 그들을 이끌 수 있는 실패한 지식인들과 '그야말로 분석대상이 말하는' 독실한 청교도신자, 이 세부류로 압축할 수 있겠다. 뒤의 두 부류가 2300명 중에 차지할 수 있는 인원이 몇명이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일반적으로 한 사회에서 지식인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추측하건대 100명을 넘을 수 없다.
또한, '예배를 드렸다'라는 항해일지 정도로는 그 예배의 분위기가 실제 어떠했는지 그 누구도 할 수 없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은 인디언 죽이고 하지 않는다. 청교도적 삶을 살거나 자기도 핍박을 당한 경험이 있기에 남을 핍박하려 들지는 않기 때문에. 문제는 나머지 대다수. 그들은 핍박당한 것을 거기서 풀었다. 이 것은 청교도들의 서부팽창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로 나타났으며 발전된 무기기술에 밀린 원주민들은 몰살, 지금은 원주민 보호구역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이 되어있다. 분석대상은 '어떤 힘'이라고 반문하고 있는데 이 힘은 '엽총'의 힘이었다고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겠다. 인디언들은 그때까지도 활만으로 모든 사냥을 처리하던 때였다.(미개한 것이 아니라 자연주의적인 행동으로 해석되어야 옳다.)
또한, 현재에도 미국의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은 청교도이념을 표방하며 전쟁을 자행하고 있다. 지금의 공화당 정권이 이들의 지원을 받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온실효과가 성경에 없다'라는 이유로 환경협의에 반대할 정도로 성경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5) 기독교와 자본주의
'인구론'이라는 명저서로 '가난한 자들은 싸그리 다 죽어야한다'라고 열변을 토하고 다녔던 맬서스는 목사다. 또한 칼뱅은 구원의 기회평등과 함께 '경제적 행복의 평등'을 강변했던 예수의 종전 입장을 싸그리 뒤집어엎고 '직업신수설'이라는 얼토당토않은 가설을 세워서 부르주아들의 폭력적 착취를 종교적으로 정당화시켜주었다.
당시의 노동상황은 분석대상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참혹했다.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을 읽어보면 한 층이 1.5미터인(다락방은 더 좁다) 조그마한 방에서 원단에서 나오는 먼지를 한껏 들여마셔가며 환풍기도 없는 곳에서 재봉틀을 돌리는, 5,10년씩 일하면 진폐증이나 결핵등의 질병에 걸려 죽어가고 70년대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모습이 자세하게 묘사되는데, 원시자본주의가 횡행하던 당시 영국, 아니 유럽 전체는 이 것보다 더 심했다.
이런 착취는 루터도 용서하지 않았다. 그는 성서해석독점권을 '성서의 독어 번역'이라는 대사건을 벌여 민중들에게로 돌렸고 이것은 독일 농민반란의 뿌리가 되었다. 루터는 직업신수설 따위의 말도 안되는 부르주아적 가설을 세운 적도 없고, 농민반란에 대해 '비폭력적으로 하셔야 합니다'라고 반란세력에 일침을 놓긴 했지만 이것은 지주들의 악행은 분명히 있는 것이라고 인정한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직업신수설로부터 시작되는 '직업적 부'와 '신앙심의 깊이' 사이의 비례공식은 폐지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부유한 것이 축복 중의 하나다'라고 말하는 것 역시 잘못이다. 예수는 그렇게 말 한 적이 없다. 또한 현재 일부 크리스천들의 이런 발언은 추진혁군의 말대로 '샤머니즘적 경향과 강하게 결합' 한 것이라고 추측이 가능하며, 이것은 종교사적 관점에서 볼때 타당하다.
만약, 직업신수설을 예수가 실제로 주장했었더라면, 그렇게나 많은 로마의 빈민들이 그 종교를 그렇게 따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치부를 정당화하는 종교를 합리의 극을 달리던 로마인들이 굳이 따를 필요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구원의 기회평등'에 '정치적 평등'과 '경제적 평등'까지 포함되어 있어야만 가능한 역사다.
6) 언쟁에서 취한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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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논쟁은 철없던 중학생 시절에 자주 즐기던(?)..;; 요즘은 성경에서 하지 말라고 해서 안한답니다. 제가 답변단 것은 논쟁 하자는 것이 아니고요. 그냥 정민이한테 태클 건 거에 잘못 건 부분만 재대로 걸라고 답변단거에요;; 오해하지 마시길.. 아- 그리고 오프라인 상에서도 정민이 만나면 자주 태클거세요. 간식 가지고 놀리는 나쁜 이정민..메롱^ㅠ^
어제도 얘기했지만 정말 논쟁은 하기 싫어요. 이 게시물에 대한 답글이나 개인적인 궁금증, 혹은 하고 싶은 말은 저한테 메일 보내주세요. jeskin27@hanmail.net입니다.
또한 성경의 말씀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1장 1절. 이렇게요.
추의 카페를 통해 글을 올리지는 말아주세요. 자신의 카페가 살아있는 카페다, 활성화되어있다 하면서 이상한 말 합니다-_- 추는 만날 때마다 괴롭혀줘야 재밌습니다.-_-
아울러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에 대한 논쟁은 이제 그만해요. 문학카페가 이상하게 변질되어가는 느낌. 저는 문학 그 자체를 즐기고 싶어요.
이젠 어떤 종교적인 글이 올라와도 이 곳에선 답변 안할꺼에요.
재밌다고 했잖아요. 신선한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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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발언들은 분석대상이 이 언쟁에 어떤 태도로 임하였는지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꼬리말들이다. 분석대상의 글 '처음부터 끝까지'에는 '철없는 어린것들을 타이르는 논조'가 살아있다. '중학생'이라는 단어나, '철없는 짓' 등의 단어들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언쟁의 주역중 한 사람이었던 이정민군과 함께 크리스트교를 '사람의 범위로는 건드려서는 안되는 성역'으로 올려놓고 있다. 이는 종교의 탄생과 일신교의 출현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종교는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일체의 이론(미학적 철학적 인식론, 종교철학사, 정신분석에 의한 종교탐구)을 '쓰레기'라고 치부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매우 위험한 사상이라 하겠다.
4. 분석대상의 인문학적 소양을 위한 추천도서
토마스 모어 : '유토피아' - 미국의 가짜청교도들 말고 이 사람의 책을 읽어보면 청교도의 진면모가 보일 것이다. 또한, 이 책은 공상적 사회주의의 시초가 된 책으로써 공상가로부터 길게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까지 그 정신이 관통하는 부분이 있다.
디 브라운 : '나를 운디드 니에 묻어주오' - 그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청교도다.
유시민 '거꾸로 읽는 세계사'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 거꾸로 읽는 세계사 말콤 엑스 부분에서 느끼는 게 좀 있으리라 믿는다. 또한 목사가 어떻게 '인구론'같은 저서를 쓰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내가 풀어놓은 썰들을 이해하려면 저 책 정도의 경제학 이해는 필요할 것이다.
크리스티앙 자크 '람세스' -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종교의 기원'을 토대로 써진 이집트사학자의 람세스 일대기. 람세스의 시각에서는 모세가 어떤 이였는지 잘 그려지는 소설이다.
박원순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 세계의 명재판들을 한 권으로 묶어놓은 책. 종교에 관한 것으로는 예수 재판, 잔 다르크 재판, 토마스 모어 재판, 마녀 사냥 등이 수록되어있다.
박노자 '당신들의 대한민국'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 앞의 책은 한국의 총체적 문제점에 대해서 짚어낸 책으로 베스트셀러이니 한권쯤 사두면 편할 것이다. 물론 교회의 문제점도 있다. 뒤의 책은 크리스천이 인구의 80%가 넘는 북유럽 국가들에 대한 이야기로, 그들의 사회민주주의에 대해서 분석하고 그것이 어느정도의 행복과 야만성을 띄며 우리에게는 어떻게 다가와야 하는지 분석한 책.
홍세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이 책이 화두로 던져주는 '관용'이란게 뭔지 좀 생각해 보라고 추천한다. 참고로 프랑스는 인구의 60% 이상이 카톨릭이고 전국에 있는 학교의 반 이상이 카톨릭 학교지만 종교수업을 하는 학교는 단 한군데도 없다.
5. 結 : Worshiper 분석결과
그는 이정민군보다 더한 '인문학적 바탕이 결여된 골수교회분자'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