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조각
가끔 기억들이 조각조각 흩어진 채로 떠오른다. 떠오르는 장면 중에 어떤 것은 희미하게, 어떤 것은 생생하게 찾아온다. 또 다른 것들은 바람처럼 휙 지나가기도 한다. 붙잡으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오랫동안 머무는 것도 있다. 난 그런 장면을 눈앞에서 그린다. 사진도 없고, 글도 없어, 기억의 장면들이 소중하다.
오늘은 두리 밥상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이다. 저녁이면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할아버지가 계실 때만 해도, 작은 밥상에 따로 독상을 해 드렸다. 밥을 다 먹고, 행주로 밥상을 닦으면, 책상이 된다. 작은 방에 책상이 있지만, 가끔은 밥상에 둘러앉아 이야기도 하고, 문제도 푼다. 아버지의 우스운 이야기로 잘 웃는다. 가끔은 겪은 일을 말씀하기도 했다.
내가 분수 때문에 끙끙대는 것을 알고는, 오늘 저녁엔 분수에 약한 날 위해 보충수업을 해 주신다. 나는 아버지가 어떻게 하시나를 지켜보고, 아버진 계획을 하신 듯 꺼내 온 연습장을 내 앞에 두었다. 설거지를 마친 어머니도 뒤에서 구경하신다. 머리 좋은 동생은 휑하게 잘 알고 있다. 내가 주눅 들까봐서, 너거 방에 가 있으라고 하신다. 어머닌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애가 타는 모습으로 날 지켜고 있다. 부담스럽다.
아버지는 공책에 네모 그림을 그렸다. 그리곤 4 등분하였다. 그림이 마치 인쇄한 듯 반듯했다. 난 그림에 빠져 딴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한쪽을 1/4이라 적어 놓고, “네 개 중에 하나니까 얼마라고 하면 될까?” 묻는다. 난 뭔가 되지도 않는 엉뚱한 말을 한 것 같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생각이 나지 않아, 그냥 있었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셈이다. 생각만 해도 얼굴이 벌겋게 되는 느낌이다. 이번엔 사과를 그리셨다. 입 안에 침이 고였다. 왜 그땐 그렇게 어려웠을까. 그림에 답이 있었는데,
난 아버지의 설명보다 그림이 더 보기 좋았다. 자로 잰 듯 반듯하고, 글자도 참 아름답게 쓰여있었다. 아버진 지도나, 약도나, 도형이나, 뭐든 이처럼 보기 좋게 잘 그리셨고, 잘 썼다. 그런 생각에 빠져 4분의 1이란 개념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닌 속이 탔다. “머리가 탔긴 탔구나!” 답답해서 한마디 하신다. 그 한마디가 기억에 새롭다. 아버진 어머니를 돌아보면서, 그렇게 하지 말라는 무언의 눈길을 주었다. 내가 바본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 머릿속에는 뿌연 안개가 끼어 있어 개념이 들어올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그림 설명이 기억에 생생하다. 그 그림 하며, 그 글씨 모양이 그랬다. 나중에 알았지만, 고등학교 때 수학 선생님의 글씨와 흡사했다. 2차 함수나 인수분해 등을 설명할 때 칠판의 그 글씨체하고 너무나 닮아 있었다. 대부분의 수학 선생님의 판서 글씨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형태다. 그렇게 아담하면서, 분명하고, 깔끔하게 잘 써시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누군가의 그런 글씨를 보면, 글씨의 친근함에 아버지와 수학 선생님을 떠올린다. 오늘은 눈앞을 스쳐 가는 조각하나를 건졌다. 끝. 2026.7.29.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