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6일 목요일 맑음 
숙소에서 아침을 먹었다. 호텔에서 제공해 주는 아침이다. 식당은 주인이 다른가보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다. 한국어도 제법 한다. 연속극을 통해 배우고 있단다. 계란과 파파야, 빵으로 식사를 했다. 숙소에 짐을 맡겨놓고 체크아웃을 했다. 술래파야 방향으로 길을 나섰다. 도로는 넓고 가로수도 좋다. 술래파고다는 수리중이라 탑 전체를 천으로 가려놓았다. 탑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좀 아쉬웠다. 
옛 수도 양곤은 높이 48m의 술래 파고다를 중심으로 지어진 계획도시이다. 그래서 술래 파고다를 양곤의 심장이라고 부른다. 약 3세기경 소나와우뜨라는 스리랑카의 승려가 부처의 불발 10여개와 유품을 가지고 남부 떠통으로 가다가 현재 술래 파고다 위치에서 마사후라 라는 승려의 도움을 받았다. 그 후 은혜를 갚고자 떠통 왕의 승인을 받아 부처 머리카락 한 올을 이곳에 모시기 위해 파고다를 지었다. 그러나 이는 미얀마 인들의 주장일 뿐이며, 수차례 재건축을 통해 현재의 높이가 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축조시기를 알 수 없다. 몬(mon)어로 ‘신성한 불발이 안치된 파고다’ 라는 의미인 ‘짜익 어톡’으로 불리기도 한다. 8각형의 술래 파고다는 양곤 시내의 심장부에서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으며 여행자들이 양곤에서 길을 찾을 때 유용한 이정표 역할도 하고 있다. 우리도 처음 공항에 도착해 택시를 탈 때 ‘ 술래파야’ 로 우리 목적지를 기사에게 말했다. 야간에는 조명을 받아 도심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금빛 야경이 아름답다고 한다. 수리중이라 아쉬운 맘을 접어야 했다. 
또한 양곤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가장 중심도로인 삐(Pyay)로드는 이 술래파고다를 기점으로 하여 마일로 표시하며, 양곤의 국제공항도 약 10마일 지점이다. 신호등도 없이 그냥 건너가는 시민들이 위험해 보이지만 건너가려면 우리도 뛰어야했다. 시원한 나무그늘이 있어 좋다. 노란색으로 칠해진 양곤 시청은 수리중인지 철조망 상자가 길게 놓여있어 순경이 출입을 막는다. 의자에 앉아서 마냥 지키고 있는 순경이 처량해 보인다. 주변에는 시청사로 쓰이던 구 총독부 건물 등 영국 식민지 시대 빅토리아 건축물이 몇 개 보인다. 
부지런히 둥근 도시락을 들고 길을 건너는 청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긴 치마를 입고 가는 모습이 특이하게 보이지만 여기에서는 일반적이다. 통치마 형태의 ‘롱지’라는 하의다. 여자용 롱지를 ‘타메잉’, 남자의 롱지를 ‘뻐소’ 라고 한다. 두 종류의 큰 차이점은 허리 부분을 조인 후에 남은 롱지를 처리하는 방법이란다. 남자는 반드시 복부 전면 앞쪽으로 말아서 넣고, 여자들은 허리에 감아 두르고 난 후 왼쪽이나 오른쪽 허리 측면으로 여며서 넣는다. 또한 전통적으로 여자나 남자나 모두 하의인 롱지 속에 속옷을 입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남자들이 운동을 하거나 격한 일을 할 때에는 접어 올려 활동하기 좋게 만든다. 
로타리 동쪽으로 가니 특이하게 교회가 보인다. 제법 크고 오래되 보이는 교회다. 들어가니 안내인이 친절하게 구경시켜준다. 침례교회다. 에어컨이 없어 창문을 모두 열어놓았다. 2층 본당에 올라가니 제법 넓다. 불교의 나라이지만 교회에 대해 별로 반감이 없는 분위기다. 교회를 나와 남쪽으로 내려가니 마하 반둘라 공원이다. 작은 공원 내부에는 독립 기념탑이 하얗게 세워져 있다. 분수대도 보인다. 입구에서 입장권을 받고 있어서인지 공원 안에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다. 그냥 봐도 한눈에 다 들어오는 별 특이한 모습이 없는 공원이다. 약간 덥지만 목적지를 보따타옹 파고다로 정하고 걸었다. 도로명이 스트랜드 거리다. 
대로변에는 기찻길이 있는데, 기차가 다닌 흔적이 없고 공사 중이다. 커다란 시멘트 덩어리를 웃통 벗은 젊은이가 올라가 해머로 힘겹게 부수고 있다. 언제 저걸 다 깬단 말인가? Myanma Port Authority 건너편 강으로 가보니 페리 선착장이다. 이곳이 양곤 강이다. 커다란 배에서 사람들이 가득 내린다. 사람들이 피난민 같이 많이 내리는 모습이 재미있다. 선착장 사무실 앞에는 Mazda 회사의 작은 트럭이 귀엽게 줄 서 있다. 오래된 차들이다. 장난감 같다. 여기의 운송수단은 참 다양하다. 자전거부터 전부 있다. 도로에는 여러 종류의 운송수단이 달린다. 마차, 자전거, 오토바이, 오래된 트럭, 작은 택시들, 삼륜차도 보인다. 
큰 길 따라 걸어가다가 또 강으로 갔다. 작은 배들이 머무는 선착장이다. 모타를 단 작은 배들이 무척 많다. 강물도 바로 밑에서 흐른다. 황톳빛 흙탕물이 거칠고 빠르게 흘러간다. 배들이 쓸려가지 않으려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힘겹게 선착장으로 들어온다. 선착장이라고 하지만 그냥 진흙 언덕에 판자 몇 개 가 전부다.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곳이니 계단 위에는 포장마차, 식당 등이 있고, 떡 장사, 음료수 장사, 튀김 장사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 전화기 하나 놓고 영업하는 사람도 간간히 보인다. 
흙 먼지를 날리며 대형 트럭이 지나가면 짜증이 난다. 대로변을 따라 공사로 파헤쳐진 흙더미위로 맨발의 꼬마승이 머리통보다 큰 보시 그릇을 들고 걸어간다. 붉은 승복에 빡빡깎은 머리의 3명의 동자승이 아주 귀엽다. 웃을 때는 앞 이빨이 없어 더욱 귀엽다. 가장 작은 동자승은 코를 질질 흘린다. 뭐를 알고 승복을 입었을까?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함께 걸어가다 보니 우리의 목적지인 보따타웅 파고다에 도착했다. 
파고다 입구에는 커다랗고 싱싱한 바나나와 야자열매, 꽃으로 구며진 바구니를 많이 팔고 있다. 절을 방문한 사람들이 사들고 가는 것 같다. 파고다 앞에는 외국인들에게 입장권을 파는 작은 가건물이 있다. 이 파고다는 약 2천 년 전에 인도로부터 군인 1000명이 부처의 유품을 가지고 와 이곳에 안치하여 ‘군인 1000명의 파고다’라는 뜻의 보따타옹 파고다(군인 bot +1000명 tataung)라고 한다. 2차 대전 중 연합군의 폭격에 파괴되었다가 다시 복구했다. 당시 보수공사를 하는 중 부처의 치사리 와 성발을 비롯한 수많은 보물들이 발견되었다. 중앙 탑 내부는 40m 정도를 미로 같은 분위기로 만들어 당시 발견된 보물들을 진열해 놓았다. 정 중앙에는 부처의 머리카락을 안치시켜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파고다의 서쪽에는 민돈왕 시기에 만들어진 부처상을 모신 당이 있으며, 북쪽으로 호수와 조각상들이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고 있다. 또한 정문 남쪽으로 선착장이 있는데 양곤 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쉴 수 있다. 절 입구에는 계란 메추리알을 파는 사람들이 있다. 왔던 길을 걸어서 다시 숙소로 향했다. 제법 많이 걸었다. 버스들이 많이 보이지만 대부분 일제 중고차다. 
돌아오는 길에 중국집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좀 있어 보이는 젊은 중국인 사장은 폼만 잡고 있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미얀마 직원들은 바쁘다. 이곳에서도 상권은 중국인들이 잡고 있는 것 같다. 유면을 시켜 먹었다. 국수종류다. 
환전을 해 가야 할 것 같아서 보족 시장에 갔으나 평균 830짯이다. 욕심이 나서 술래파고다로 이동했다. 길거리 환전상에게 바꾸면 좀 더 받을 것 같았다. 더위를 무릎 쓰고 걸어갔다. 길거리에서 200$을 흥정해서 940짯에 바꾸었다. 아내는 돈이 맞는지 포장마차 뒤에 가서 세어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사기를 당한 것 이었다. (10장씩 묶어 있는 폼이 쉽게 셀 수 있었다. 밑에서 보면 1뭉치는 10개인데, 실제로 한 뭉치는 6~5개 정도 밖에 없었다. 실제로 셀 때는 10개씩 떨어진다. 10개씩 10묶음에서 우리가 보는 앞에서 6장을 뺀다. 94장이다. 94장 이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58장이다. 낱개로 풀어서 세어본 것이 다음날 바간에 도착해서 따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확인한 후에야 알았다)그 당시에는 9400짯 인줄 알고 흥분되어 성공 감을 만끽하며 용감하고 부지런하게 걸어왔다. 얼마나 의기양양했는지 모른다. 
숙소에 와서 짐을 찾고 기차역 방향으로 향했다. 1시간 정도 역에서 쉬었다. 무척 뜨거운 날이다. 2시 40분에 버스티켓 사무실로 갔다. 뒤 창고에서 앉아서 픽업 차를 기다린다. 젊은 아이하나가 평상에 누워 낮잠을 자다가 일어난다. 
오후 3시경에 트럭버스가 도착 한다. 버스는 낡고 불편했지만 함께 탄 사람들은 친절하다. 짐 반 사람 반 이다. 이 트럭 버스를 타고 거의 한 시간을 갔다. 길거리에서 통에 담긴 연료를 차에 넣는다. 이것이 미얀마식 일반적인 주유소다. 다행히도 망사를 대고 연료를 넣어준다. 작은 골목도 들리며 짐도 주문받고 사람을 태우기도 한다. 드디어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무척 복잡하다. 혼자와서 표를 갖고 버스를 찾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개인사업자들이라 사무실 앞에 버스들이 한 대씩 있다. 그런 사무실이 엄청 많다. 개인이 차를 갖고 운영하는 형태다. 친절하게 트럭 조수가 우리 표를 보더니 따라오라며 우리가 탈 버스 사무실을 안내해 주었다. 회사 이름도 버스에 쓰여 진 글씨도 모두 미얀마어라 도무지 알 수 없다. 
작은 사무실에 들어서니 외국인 몇 명이 기다리고 있다. 일본인도 한 팀 보인다. 현지인들도 있다. 에어컨이 있어 좀 시원했다. 거의 30분을 기다린 후에 차는 출발을 한다. 오후 5시 20분이다. 차는 출발하려는데, 일본인 가족같이 생긴 사람들이 탄다. 우리 뒤에 앉았다. 들려오는 말소리가 한국말이다. 너무 반가워 인사를 했다. 차는 복잡한 시장 겸 터미널을 힘들게 빠져 나온다. 도로 사정이 별로 좋지 않다. 힘들게 덜컹거리며 버스는 달린다. 에어컨이 너무 강해서 춥다. 휴게소에 내려서 한국 가족과 서로 통성명을 했다. 한 가족으로 아이 이름이 은겸이였다. 가족 모두 감물을 들인 헐렁한 바지를 입고 있다. 반가움 속에서 얘기를 나누다가 환전상에게 사기를 당한 일로 양곤에서 실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잠시 후에 다시차를 타고 간다. 달리는 차는 별로 없지만 이제는 도로사정이 좋아 보인다. 저녁 8시가 넘어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어섰다. 현대식 휴게소다. 촌스럽지만 네온사인도 번쩍이고 식당도 대형이다. 물건도 제법 많다. 국수를 사서 먹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화장실이 엄청 크다. 
이제는 어두운 밤길을 달린다. 고속도로의 쾌적함도 이제 끝나고 다시 덜컹거리는 1차선 도로를 달려간다. 언제나 도착 할 런지....... 주변은 가옥도 없고 칠 흙 같은 밤이다. 그래도 밤이 깊어가니 잠이 온다. 졸린다기보다 눈을 감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다. 이렇게 내일을 향해, 바간을 향해 버스와 시간에 몸을 맡기고 정신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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