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둘째 시간
시간이 많지 않아서 우리는 문제를 끌어와 생명의 현상은 어떻게 오는 것인지 말했는데, 애기하자면 너무나 많습니다. 방금 입태 이전의 삼연화합을 말하면서 ‘무주재’(無主宰)․‘비자연’(非自然)․‘연기성공’(緣起性空)․‘성공연기’(性空緣起) 이런 몇 가지 개념들을 말했는데 듣고 나서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맹목적으로 미신하여 부처님이나 보살 혹은 신이나 하느님에게 구하면 보우(保佑)해준다고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자기가 잘못해놓고는 절에 가서 향을 피우거나 교회에 가서 예배하면 참회 속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웃기는 얘기입니다. 불가능합니다. 생각해보세요, 향 한 갑을 사는 데 돈 몇 푼 들고, 거기다 바나나 몇 개 사 보았자 모두 한 2만원에 불과하겠지요? 불보살님이나 하느님 앞에 꿇어앉아 한참 기도하고는 주식으로 큰 돈 벌고 싶어 하고, 집안사람들도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내 남편 자식들도 잘되도록 보우해달라고 합니다. 뭐든지 다 잘 되게 보우해달라고 합니다. 절 다하고 나서는 또 그 바나나를 애들에게 줄려고 집으로 가지고 갑니다. 설마 불보살이나 하느님이 탐오귀(貪汚鬼)일까요? 뿐만 아니라 탐오도 그렇게 옹졸하게 해서, 절하면 도와주고 참회를 받아주고, 절하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까요? 이런 자를 무슨 보살이나 하느님이라고 부르겠습니까? 보통사람만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도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겁니다! 방금 말했듯이 부처님은 당신에게 삼세인과(三世因果)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자기가 많은 복을 구하는 겁니다. ‘주재자가 없고 자연이 아니기’(無主宰 非自然)때문입니다.
탐욕 · 성냄 · 어리석음 · 교만 · 의심 · 악견
우리들 생명의 내원은 얘기하자면 아주 심오합니다. 간단히 현실적으로 말하면 사람 저마다의 개성과 행위가 지니고 온 것입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이든 지니고 온 개성은 모두 여섯 가지 요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탐욕(貪)․성냄(瞋)․어리석음(癡)․교만(慢)․의심(疑)․악견(惡見)이 그것입니다. 어떠한 생명도 아무리 위대하든 학문이 있는 사람이든 모두 이 여섯 가지 특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탐욕입니다. 사람에게는 탐심이 있습니다. 엄마가 임신하였을 때에 당신의 영혼이 일단 태에 들어가는 것도 이미 탐심이 있는 것입니다. 모태 속에서 어머니의 영양을 흡수하여 자기로 변한 것입니다. 모친에게 모든 것을 제공하기를 바라며 자신이 성장하게 합니다. 이것이 기본적인 탐심입니다. 한 갓난애가 태어났을 때 젖을 주지 않는다면 그 아이는 울 것입니다. 탐심 때문입니다. 점유심이 있기에 쥐어서 자신에게 주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태어날 때부터 하나의 ‘나’(我)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나’의 병폐 속에는 탐욕․성냄․어리석음․교만․의심․악견의 성분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 대 원칙을 말했는데, 이게 바로 사람 자신 마음속의 나쁜 일면입니다.
둘째는 성냄은 어떨까요? 우리들의 심리는 무릇 좋아하지 않는 것이나 싫어한 것들은 버리고 싶어 합니다. 갓난애도 마찬가지입니다. 보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보자마자 웁니다. 원한의 생각․원망을 품음․싫어함은 모두 성냄의 심리에 속합니다.
셋째는 어리석음입니다. 지혜가 없는 겁니다. 예컨대 어려서부터 글 공부할 때 선생님이 가르치는 수업을 보고 이해하지 못하고 배워도 할 줄 모릅니다. 더 나아가 수업을 들어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시험성적도 나쁘고 기억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고 혼란스러운 데다가 쉽게 얼빠져서 정신을 못차리기 때문입니다. 이 어리석을 ‘癡’(치) 자는 어떻게 쓸까요? 병들 疒(녁) 변인데, 일종의 병태로서 사람의 머리가 건전하지 않는 병이라는 의미의 疒(녁) 속에 의심이 많다는 의심 疑(의) 자가 더해져 어리석을 癡(치) 자가 됩니다. 이것이 정자(正字)인데 옛날에는 그렇게 썼습니다. 뒷날 속체자가 있게 되었습니다. 병들 疒 변에 알 知(지) 자를 더해서 痴(치) 자라고 했는데, 바로 무지를 의미합니다. 자기의 지혜에 병태가 있어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전일하지 못하고 냉정하지 못함이 바로 얼빠져서 정신을 못차리는 것입니다.
넷째는 교만인데 무엇을 교만이라고 할까요? 가장 어리석고 가장 학문이 없으며 가장 싹수가 없는 사람이 역시 자신이 제일이라고 스스로 느낍니다. 때로는 공부가 남에게 뒤지면 지난 뒤에 생각하기를, 자신은 운동 면에서 그래도 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사람이 누구일까요? 저마다 아무리 추해도 거울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예쁘고 여전히 아주 사랑스럽다고 느낍니다. 이것이 아만(我慢)입니다. 사람마다 태어날 때부터 하나의 나라는 ‘아’(我)가 있어서 만약 학문이 있다면 더욱 오만해지는데, 이것을 증상만(增上慢)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너희들 젊은이들이 뭘 알아? 내가 수십 년을 살았는데 그래도 너희들만 못하겠느냐?” 이게 바로 노년인들의 증상만입니다. 명성이 있고 지위가 있고 돈이 있으면 아만은 그만큼 심해집니다. 교만(慢)은 교오(驕傲)보다도 밉습니다. 교오의 심리는 어리석음과 교만의 결합으로서 사람 생명의 병태입니다.
다섯째는 의심인데 신임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를 신임하지 않고 남을 누구도 신임하지 않는 것이며 더더욱 어떤 일도 신임하지 않아 영원히 의심을 품고 있습니다. 생명은 바로 의심 가운데 있습니다. 내가 마침내 몇 살 때까지 살고 죽을까? 내일은 어떨까? 모레는 또 어떨까? 언제나 매 분 매 초마다 의심 속에 있습니다.
여섯째는 악견인데, 정확하지 못한 견해와 인지(認知)입니다. 정확한 인지를 갖는다는 것은 아주 어렵고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의 인지는 모두 착오전도(錯誤顚倒)요 사실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탐욕․성냄․어리석음․교만․의심․악견은 심성이 지니고 온 결함으로서 사람마다 갖추고 있습니다. 이 몇 가지를 바르게 고치는 것이 바로 교육문화의 중점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교육문화는 어떨까요? 갈수록 어지러워지고 있습니다. 저는 늘 담소하면서 “오늘날 황제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하고 묻습니다. 있습니다. 바로 돈입니다. 다들 돈을 향하여 바라봅니다. 자기가 아이를 낳으면 아이들이 장래에 악착같이 돈을 벌어야한다고 가르칩니다. 이처럼 그 어떤 것을 추구하는 것도 악견입니다. 일체의 악법(惡法: 나쁜 가르침, 바르지 못한 생활, 유익하지 못한 것―역주)은 모두 이렇게 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