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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리 산 종 주
8월초 골프를 치던중 예상대로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 골프를 더 할 수 없었다. 아쉬움을 막걸리로 달래며 서로 오랜만에 만나 지난 이야기 봇다리를 풀어 놓는다. 특히 자기 나름대로 건강 비결에 대하여 이야길 하는데, 대전 K친구는 ‘요즘 매일 아침 계족산을 오른다’ 며 등산을 권한다. 이에 질세라 김천 C친구도 등산을 자주 한다며 10년전에 나와 함께 했던 지리산 종주에 얽힌 이야길 하며 ‘이번 기회에 우리 함께 한번 더하자’고 부추긴다. 나도 맞장구를 치며 좋다고 했다. 그 당시 산행은 무리한 계획과 앞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는 궂은 날씨속에서 앞사람 뒤 꿈치만 보고 하루종일 걸어 탈진상태까지 갔던 추억이 되살아나 당장이라도 가고 싶었다. 그러나 대전 B친구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 하지 말란다. 내일 모레면 환갑인데 지리산 종주를 어떻게 하느냐? 올라갔다 다시 내려올 걸 왜 가는 지 모르겠다’ 며 가지 말란다. B친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다 갖고 갈테니 몸만 오면 된다, 만약에 가다 못가면 우리가 업고 가겠다’ 고 까지 했으나 헛수고 였다. 결국 K,C와 함께 3명이 2박3일 일정으로 지리산 종주를 했다. 성삼재를 출발하여 연하천, 장터목 대피소에서 숙박하고 천왕봉과 법계사를 경유, 중산리 방면으로 하산하는 33km 종주 길이다.
등산 당일 서울, 대전, 김천에서 각자 출발하여 경상남도 산청에 있는 한국도로공사 산청지사에서 만났다. 배낭을 최대한 가볍게하고 필요물품은 대피소에서 구입하기로 하였지만 줄이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서로 자기 배낭이 무겁다고 엄살이었다.
12시30분 성삼재를 출발했다. 노고단 대피소까지는 산책코스 수준이다. 사람들 표정이 밝아 보인다. 노고단(길상봉)은 천왕봉, 반야봉과 함께 지리산 3대 봉우리로 옛날에 지리산 신령인 산신할머니(노고)를 모시는 곳(단)이라하여 노고단이라고 한다. 이곳부터 본격적인 종주길이다. 입산 시간지정제 제도가 도입되어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이 비박은 안 된다며 대피소 예약이 되었는지 일일이 확인한다. 돼지령을 지나니 묵은 찌거기가 배출되는 듯 땀방울이 떨어진다. 바야흐로 임걸령이다. 목마름을 해소하고 빈 생수통 2개에 물을 가득 채웠다.
삼도봉에 다달았을 때쯤 바람결에 더덕향이 코를 자극한다. 삼도봉에 3명이, 서로 다른 세곳에서 출발하여 올라온 것을 축하라도 해 주는 듯, 더덕향이 걸음을 멈추게하고 보물찾기를 하란다. 해발 1550m 삼도봉 ‘三道를 낳은 봉우리에서 전북, 경남, 전북 도민이 서로 마주보며 天 地 人 하나됨을 기리며.1998.10’ 이란 기념물이 서 있다. 한가로이 떠 있는 뭉게 구름이 좋다. 그간 쌓였던 근심이 날아가는 것만 같다. 홀가분 함이다. 삼도봉에서 화개재를 향하는 길은 유난히 내리막 길이 길다. 내려간 것 만큼 다시 올라와야 본전인데 계속 내려가니 아까운 생각이든다. 역시 앞서가던 K친구가 ‘무슨 내래막길이 이렇게 긴가?’ 라며 투덜대며 조심하란다. 이에 C친구가 ‘인생길도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는 것이 아닌가’ 라며 천천히 걷자고 한다.
화개재를 지나 토끼봉으로 향하는 길에, 뿌리가 송두리째 뽑혀 넘어간 고사목들이 많다. 지난해 태풍 때 넘어간 것같다. 30cm도 안되는 땅속에 뻗어나간 뿌리는 4~5m는 족히 되어보인다. 이런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고 자란것이 존경스럽다. 하지만 누구나 숨기고 싶은 것은 있을텐데, 죽어서도 밑둥을 훤히 다 보이고 누워있는 것을 보니 뿌리라도 덮어주고 싶은 애처러움이 들었다. 요즘 잠시의 고난을 못이겨 피어보지도 못한 채 생명을 포기하는 것을 볼 때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 해가 남아 있을 시각인데도 어스름이 몰려오니 발걸음이 빨라진다. 라면 끓이는 냄새에 군침이 돈다. 오늘 잠자리인 연하천 대피소가 지척에 있다는 것이다.
대피소에서 간단한 절차를 밟고 침상을 배정 받았다. 야외 취사장은 만원이다. 식사 전에 돼지족발에 소주 한 잔하기로 했다. K친구가 비닐 장갑을 한 벌씩 건넨다. 비닐장갑을 끼고 뜯어먹는 것이 이집 특징이란다. 맛이 일품이다. 앞으로 산에 갈 땐 꼭 챙겨야 될 필수 품목이 될 것이다. 갖고 온 밑반찬을 하나하나 꺼낸다. C친구는 어머니께서 직접 농사지은 것이라며 깻잎, 상추, 고추, 양파를 꺼낸다. 9순에 가까운 어머니께서 직접 농사 지은 것이라니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뭉클함이 다가 온다. K친구는 찐 호박잎과 강된장에 고구마 줄거리 찌개을 꺼낸다, ‘호박잎을 쪄왔다고? 산에 호박잎을 쪄온 사람은 난 처음 본다’ 고 했더니 민망했던지 일단 먹어보라고 한다. 성찬이다. 배낭이 왜 무거운지를 알았다. 9시면 소등이다. 내일 산행을 위한 배려다. 잠을 청하려 뒤척이나 쉽게 잠이 오질 않는다. 귓전에 부엉이 울음 소리, 황소개구리 우는 소리, 기차가 가고 있는 것 같은 소리, 푸~푸 하는 소리 등.... 코고는 소리도 다양하다. 피곤한 모양들이다. 옆 친구에게 ‘부엉이 잘도 운다’ 고 했더니 일행과 함께 옆에 있던 사람까지 파안대소를 하며 킥킥거린다. 새벽 3시경에 눈을 떴다. 화장실을 가기위해 숙소를 나와 쳐다본 하늘은 티하나 없다. 오직 빛나는 별들 뿐이다. 고요함, 맑음, 빛남, 꾸밈 없이 보여주는 순수함 뿐이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지난해 설악산 희운각 대피소에서 보았던 그 광경이다. 내년 초에 태어날 손주 겨울(태명)이 눈빛도 살아가면서 저랬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아침은 3.6km 떨어진 벽소령 대피소에서 하기로 하고 6시40분 연하천 대피소를 출발하였다. 우리일행만이 이 넓은 산야를 고즈넉이 걷는다. 햇살에 이슬이 영롱하다. 풀벌레 소리만이 귓전에 와 닿는다. 자연의 경건함에 묻힌 것일까? 모두 말이 없다. 언제부터 이 길이 생겼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거닐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가롭다. 얼마를 지났을까, K친구가 웃으개 소릴 한다. 야유회 때 동료아들에게 ‘산에서는 아버지를 형’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했더니, 아들이 앞서가는 아버지에게 ‘형!’이라고 하여 한바탕 웃었던 이야기를 했다. 어느덧 벽소령이다. 물 사정이 그리 좋지 않다. C친구가 초급장교 출신 아니랄까 봐, ‘벽소령은 계속 소령이냐며 대령으로 진급시켜 주면 물 사정이 좋아지지 않겠냐’ 고 한다. 실로 물 사정이 그리 좋지 않다. 조촐한 아침과 함께 커피한잔에 달콤함을 간직할 때 연하천 대피소를 출발한 등산객들이 도착했다. 세석대피소로 향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쾌청한 날씨다. 전망 좋은 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따사로운 햇살이 좋다. 장엄한 산이지만 부드럽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놓고 짜증을 부려도 다 받아 줄 것만 같은 엄마 품 같다. 코앞엔 성질 급한 녀석들이 벌써 붉은 색으로 몸치장을 했다. C친구가 ‘우리 이곳서 단풍들 때까지 가지 말자’고 한다. K친구도 ‘그러자’고 한다. 여유! 여유를 갖고 있다는게 축복이다. 초가을 바람은 배낭를 가볍게 해 주는 듯하다.
선비샘에 도착했다. 선비샘 유래는 이렇다. 이곳 샘 인근 덕평골에 화전민 이씨라는 노인이 생전에 주변으로부터 온갖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살아, 죽어서라도 남에게 존경을 받고 싶은 맘에 자식들에게 샘 위쪽에 묘를 써달라고 하여 이곳에 묘를 썼다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물을 먹기위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어 죽어서라도 존경을 받게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 돌무덤이 존재한다. 나도 노인께 고개숙여 갈증을 해결하고 칠선봉을 거쳐 세석대피소에 도착한다.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하고 장터목 대피소를 향하여 출발했다. 촛대봉으로 향하는 길목에 늪지가 있다. 세석대피소 물맛이 좋고 수량이 풍부했던 것을 알 것 같았다.
장터목 대피소에 드디어 도착했다. 10년전 추억 (당시 먼저 도착한 사람과 나중에 도착한 사람의 시간차이가 3시간 났음)이 이번 산행을 이끌었지만 그때 채우지 못했던 지리산의 장엄함과 부드러움을 맘껏 느끼고 보고 했으니 한결 기분이 좋았다. 대피소를 증축공사 중이다. 장터목 대피소는 옛날 산청군 중산리(시천면)와 함양군 백무동(마천면)주민들이 이곳까지 올라와 서로 물물교환하던 곳이었다고 하여 장터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저녁은 진공포장으로 갖고 온 생 목삼겹살을 삶고 굽기로 했다. C친구가 갖고 온 야채가 오늘은 일품이다. 옆 팀과 자연스레 어울려 오리로스와 교환하여 먹는 맛은 장터에 의미를 더한다.
내일 천왕봉 일출은 6시 5분경이다. 4시30분에 출발하기로하고 일찍 잠을 청했다. 내 코고는 소리로 웃음을 선사하는지도 모르고 골아 떨어졌다. 4시경에 잠에서 깨었다. 천왕봉까지는 한시간 남짓 걸린다. 랜턴에 의지하여 출발했다. 새벽 공기는 싸늘했지만 좋은 날씨다. 제석봉을 거쳐 통천문을 통과하니 천왕봉이 바로 앞이다. 통천문! 하늘과 통한다는 문이다. 장터목 대피소에서는 통천문을 통과해야만 천왕봉을 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이다. 5시 55분 천왕봉에 도착했다. 염려와 달리 바람 한 점 없이 평온하다. 표지석에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 ‘지리산 천왕봉 1915m’로 쓰여있다. 지리산 천왕봉일출은 3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데 조상님 덕이다. 2013년 9월10일을 알리는 일출이다. 거침없이 솟구치는 한국인의 기상이다. 이 기상에 주죽이 들었는지, 경건함속에 파 묻힌 것인지, 탄성은 잠시 왁자지껄함은 고요함으로 변한다. 전율을 느낀다. 나를 돌아보고 앞을 생각해 본다. 이 순간을 포착하려 카메라 셧터를 누른다. 빨간 한 점이 한 줄기 햇살을 뿜어내며 점점 커져 온다. 쳐다 볼수 없도록 밝은 날이되니 하나 둘 하산길에 오른다. 우리도 6시50분에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바위 틈에서 솟구치는 천왕샘과 마주쳤다. 남강 발원지이다. 시원한 냉수 한 모금하고 내려오다 짐을 짊어지고 올라오는 인부들과 마주쳤다. 장터목 대피소에 쓰일 재료라고 한다.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에서 그 무게가 느껴진다. 이번 등산 배낭이 무겁다고 한 내 생각이 얼마나 엄살이었나 싶다. 그 땀방울을 보니 한켠에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요즘 몇 천억을 부정축재하여 환수한다고 난리인데 그들은 저 소중한 땀의 의미를 알기나 하는지.
법계사에 들렀다. 이곳은 우리나라 사찰 중 제일 높은 곳(1450m)에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아침 공양 시간이 지났다고 보살님께서 참외와 메론을 깍아 우리에게 권한다. 꿀 맛이다. 사찰 경내에 퍼지는 햇살은 부처님 자비심 같이 따스하다. 사찰 일주문이 없어 건립 할 계획이라고 한다. 겨울이의 안녕을 바라는 예비 할아버지 욕심에서일까. 일주문 건립에 동참하기로 했다. 맘이 한결 뿌듯하다.
10년후 3대가 함께 이 길을 다시 걸어야 되겠다는 다짐을 한다
속세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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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무박과는 다른 감정과 느낌으로 산행 기행문을 잘 읽고 갑니다
어떻게 다녀왔는지 모르겠습니다. 10년후에 또 갈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라는 맘.
축하. 작가 탄생....
작가 탄생? ㅎㅎㅎㅎ. 과찬에 말씀.
추카!! 숨은 실력이 있었네요.
기록으로 남겨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종주 그 느낌 아니까~~~ ^^*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