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19. 불날. 날씨: 춥다.
아침열기-메주 쑤기-수학-점심-청소-메주 쑤기-마침회-5, 6학년 영어-교사회의-교사 연수-신입생 부모 면접
[메주 쑤고, 곶감 먹고, 수학하고, 눈 벽돌을 찍는다]
메주 쑤는 날이다. 일찍 가서 콩 물을 빼고 가마솥을 앉혔다. 8시부터 줄곧 불을 때야 한다. 노학섭 선생과 한주엽 선생이랑 불린 콩을 세 군데로 나눠 가마솥에 가장 많이 넣고, 부엌에서 두 군 데에 나눠 넣고 삶는다. 아침 걷기는 가을에 깎아 걸어놓은 곶감을 거둬 모둠마다 아침 새참으로 나눠주는 거다. 새들이 곶감 맛을 알아서 서너 개를 먹어치운 뒤라 일찍 반 건시 형태로 먹을 수밖에 없다. 아주 달고 맛있다.
1, 2, 3학년이 같이 메주를 쑤기로 계획한 것이라 9시에 다 함께 모여 메주 쑤는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나라가 콩의 원산지라는 것, 지금은 중국 땅이지만 만주에서 난 콩이니 고구려와 발해, 신라 기록에 콩이 나온다는 것도 들려주고 콩들의 차이, 메주 쑤는 방법, 장 담는 이야기를 간단하게 하고 일을 나눈다. 10시 10분까지 3학년이 불을 때고, 2학년이 11시 10분까지, 1학년이 12시까지 콩을 삶는 일을 하기로 했다. 3학년은 바로 숲 속 작은 집 앞 가마솥 둘레로 모여 할 일을 정했다. 가마솥 눈물이 나면 불을 약하게 조절해야 하는 것 빼고는 큰 일이 없으나 가마솥을 줄곧 지켜야 하고, 학교 부엌도 오가며 봐야 한다. 어제 눈이 오면 이글루를 만들기로 한 계획 때문에 아이들이 장갑을 끼고 준비를 해서 눈 벽돌을 만들기로 했다. 불 때는 걸 좋아하는 윤태가 불을 지키기로 하고 모두 삽을 들고 골목마다 쌓인 눈 뭉치를 담아오기로 했다. 가마솥 옆에서 눈을 쌓아놓고 눈 벽돌을 만드는 게다. 여자 어린이 넷은 빈 종이상자에 눈을 담아오고, 오제는 현우가 가져다 놓은 눈썰매에 눈을 가득 실어나른다. 모두 힘을 합쳐 눈을 나르고, 눈 벽돌을 만드는데 눈 벽돌을 만들 틀을 찾는데 쓸만한 걸 구하지 못하고 있다. 선생이 부엌을 뒤져 찾아온 플라스틱 그릇이 오자 눈 벽돌같은 모양이 나오는데 물기가 적은 눈은 장 뭉쳐지지 않고 금세 부서져 애를 먹는다. 그러다 물기가 있어야 눈이 뭉쳐진다는 걸 알아낸 어린이들이 물을 떠와 눈에 뿌려가며 만드니 단단한 벽돌이 완성된다. 물이 접착제 노릇을 제대로 해내니 응고라는 말이 자연스럽다. 삽으로 틀에 눈을 넣고 물조리개에 물을 떠와 뿌려가며 벽돌을 만드는 손들이 야무지다. 이글루를 만들고 싶다길래 눈 벽돌로 쌓아가면 된다고 했더니 그걸 무척 하고 싶어 하던 어린이들이라 추운 날 콧물을 흘리며 눈 벽돌을 찍어낸다. 일 나누기도 척척, 서로 도와가며 눈 벽돌을 만들어가는 일머리와 감각이 고맙고 놀랍다. 선생이 넌지시 꺼내면 온 힘을 다해 빠져드는 어린이 세상이다. 목표가 100개의 눈 벽돌이지만 짧은 시간에 만들어낼 양은 아닌데 순식간에 35개를 만들어낸다. 만들어낸 개수만큼 이글루를 만들 수 있도록 방법을 찾는 재미가 있겠다. 공간을 창조하는 건축은 많은 상상력과 다양한 감각을 쓰게 한다. 방학 주 재미난 마무리 놀이 활동이 되겠다. 콩을 중간 중간 먹어보는 재미가 있다. 어린이들이 콩이 달다고 한다.
마을 도서관에 간 2학년이 늦어 예정보다 늦게 교실로 올라간다. 날이 추워 어린이들이 애를 많이 썼다. 한참 쉬면서 몸을 녹이고 11시에 수학 공부를 시작했다. 수학 공책에 눈 벽돌을 저마다 만든 개수를 적어 모두가 만들 때 몇 개인지 곱셈 문장 문제를 만들어 보며 두 자리 수 곱하기 두 자리 수, 세 자리 수 곱하기 두 자리 수, 세 자리 수 곱하기 세 자리 수 문제들을 차례로 공책에 쓰면서 가로셈, 세로셈, 선긋기 곱셈, 세 가지 방식으로 답을 찾아본다. 구구단이 바로 튀어나오지 못하는 어린이 몇 몇은 구구단을 자꾸 처음부터 반복하는 재미가 있고, 익숙한 어린이들은 높은 자리 수 곱셈을 푸는 도전이 있다. 셈 수업을 하다보면 모두 머리에서 열이 난다고 한다. 곱셈을 익히고 분수의 덧셈과 뺄셈을 기억하도록 돕는다. 모두 한 것이지만 자꾸 쓰는 게 아니니 수업 때마다 다시 설명하고 익히도록 하는 셈이다. 한주엽 선생이 함께 사는 주라 수학 연산을 다룰 때 모습을 보여주려는 뜻도 있다. 겨울방학과 2월까지면 곱셈과 나눗셈, 분수 연산, 도형까지 계획한 진도를 갈무리할 수 있겠다. 준비한 새 수학 문제집 책이 익히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어린이들은 할 게 많다고 선생을 원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꾸준히 활동 수학을 해온 어린이들이라 놀라운 문제해결력과 규칙을 찾아내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자신하지 못하게 하는 연산, 셈을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는 일이다. 셈이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그러나 셈은 생활에서 아주 쓸모가 있다는 걸 연결하고 통합교과를 끌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셈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 스스로 수학을 못하는 어린이로 생각하도록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자연수의 사칙 연산을 능숙하게 하는 스스로를 보고 어린이들은 수학을 잘한다는 자신감을 지닐 수 있음을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목표를 세우고 학습의 단계를 뚜렷하게 밟는 과정은 늘 자연 속에서 일과 놀이로 자라는 어린이들에게 초등과정에서 인지교과로 대표되는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줄 수 있다. 그러니 연산은 부지런히 익히도록 돕는다. 이야기가 있고, 일놀이를 바탕으로 수학으로 연결하는 공부에서 셈은 소홀히 할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신비한 수의 규칙을 찾아내고 셈하는 과정의 즐거움을 어느 순간 느끼도록 다양한 방법을 찾아내고 꾸준히 익히도록 수업 시간을 구성하는 몫이 선생에게 있다.
틈나는 대로 불을 보고 콩의 상태를 확인하는 일이 메주 쑤기다. 지난해에는 높은 학년들과 만들었고 올해는 낮은 학년과 만드는 지라 일의 진행과 살필 게 또 다르다. 세 군데서 삶은 콩을 한 데 모아 섞은 다음 세 모둠으로 나뉜 어린이들에게 나눠주니 절구를 찧기 시작한다. 절구통이 없으니 대신 큰 스텐레스 대야에 삶은 콩을 넣고 으깬다. 삶은 메주콩을 많이 먹어도 맛있다며 줄곧 먹은 어린이들이다. 하기야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드는 학교가 우리나라에서 아주 많지는 않다. 대안학교에서도 흔한 풍경은 아니다. 그러니 밭에서 농사를 지어 기른 콩으로 메주를 쓰는 경험을 지닌 어린이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지난해는 우리가 밭에서 거둔 콩으로 메주를 쑤고, 올해는 새들이 다 먹어버린 탓에 하동에서 뽑았던 콩을 사서 메주를 쑨다. 한 말에 메주 5-6개가 나오는데 한말보다 1-2키로 많아서 그런지 여덟 개 메주가 나왔다. 지난해 애써 만든 메주 틀 두 개가 잘 쓰이니 좋다. 하기야 누룩 틀에다 누룩을 만들어본 어린이들이라 메주 틀에 넣고 모양을 잡아 단단히 밟는 것도 잘 안다. 낮은 학년이지만 누룩처럼 황국균이 메주에도 낀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동안 줄곧 발효를 공부해 온 힘이다. 토종벼 농사를 지어 나온 볏짚에 올려 말리고 있는 잘 생긴 누룩 여덟 개를 보니 모두 뿌듯하다. 겉을 잘 말려서 새끼줄을 꽈서 걸어놓으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