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구립극단과 극단 물맑고깊은의 황정원 예술감독 극작 연출의 190326 뚝섬만세운동
공연명 190326 뚝섬만세운동
공연단체 성동구립극단 & 극단 물맑고깊은
예술감독 극작 연출 황정원
공연기간 2019년 4월 13일~14일
공연장소 성수아트홀
관람일시 4월 13일 오후 6시
성수아트홀에서 성동구립극단 & 극단 물맑고깊은의 황정원 예술감독 극작 연출의 <190326 뚝섬만세운동>을 관람했다.
극작과 연출을 한 황정원(1972~)성동구립극단 예술감독은 그 여자의 소설, 갈매기, 퀸에스더, Jesus Jesus, 모정의 세월, 죽기 살기, 어떤 동산 그 외 다수 작품에 출연한 미모의 배우다.
성수동 뚝섬은 1919년 3월26일 저녁,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주민들이 몰려가 일제에 부역한 면서기를 응징하는 등 만세시위를 했던 곳이다. 느티나무 두 그루가 살아남아 30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옛터를 굽어보고 있다. 마차꾼 김완수(31), 소달구지꾼 김일남(28), 노동자 최자근동(26), 짐차꾼 염명석(36)…. 100년 전 노동자들은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으며 거리를 누볐다.
1919년 3월26일 뚝도리 만세시위는 고양군 최대 만세운동이었다. 당시 고양군은 사대문 바깥 지역을 포함하고 있었다. 현재 서대문, 마포, 은평, 도봉, 동대문, 중랑, 잠실 지역까지 모두 고양군에 속했고, 고양군에서 만세운동이 가장 격렬했던 곳이 현재 성동구 뚝섬 지역이었다.”
1919년 당시 고양군은 한지면과 뚝도면 외 몇 개 면으로 나뉘었다. 지금의 성수동 지역은 뚝도 면에서도 가장 번화한 중심가였다.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 수운이 통하는 길목인 덕에 마을에는 술장수와 밥장수, 숙박업소 등이 즐비했다. 면사무소, 우편국, 금융조합, 헌병주재소, 순사주재소 등도 이곳에 있었다. 1919년 3월26일 저녁,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을 시작한 만세 행렬이 1500여 명 가까이 불어나고, 그 가운데 300여 명은 총칼을 들이대는 헌병주재소를 포위해 맞서 싸웠고, 끝내 100여 명이 연행됐으며, 주동자로 지목된 12명의 마을 주민이 서대문감옥에서 복역했다.
현재까지 종로구 태화관과 탑골공원을 중심으로 종교인과 학생들이 주도한 3·1운동에 주목하지만, 뚝섬만세운동은 전 민중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거국적 시위였다. 뚝섬 쪽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은 대부분‘노동자’들이 주도한 운동이었다,
뚝섬은 조선 시대부터 1960년대 말까지 대대로 서울의 땔감과 채소를 공급해온 곳이다. 강원도 삼림지대 등에서 땔감을 싣고 온 뗏목이 뚝섬 나루터에 도착하면, 노동자들은 하역하고 지게와 달구지로 한양, 또는 경성 시가지로 땔감을 옮겼다. 뚝섬 하역꾼들과 지게꾼들, 우마차가 바쁘게 지나다녀 ‘신작로’로 대우받던 길은 이제 오토바이와 화물차가 간간이 지나는 한적한 길로 변했다. 1919년 3월26일 뚝섬 만세 행진은 그 길의 끝, ‘이뭇개’에서 시작됐다.
“뚝도 청년동포형제들아. 근일 삼천리강산 13도 중 2천만 동포가 모두 소동을 하는데, 왜 그런지 뚝도 청년들은 한마디 하지 않는가?” “대한독립을 위해 여러분도 만세를 부르시오.” “우물 앞으로 모여서 만세를 부르되 시간은 오후 7시 30분쯤 되어 부르라.”
1919년 3월23일 뚝섬 여기저기에도 벽보가 붙는다. 3월26일의 만세운동을 도모하는 가지각색 문구가 마을 주민과 노동자들을 움직였다. 현 서울 숲 지구대 앞으로 뻗은 큰길을 따라가면, 길 끝에 무심하게 놓인 바윗돌 4개가 보인다. ‘이뭇개’라 기록된 뚝섬 만세운동의 거점이다.
이문동’과 ‘야소교회’, ‘서뚝도리 밥집’ 앞에서 시위꾼들이 만나 만세 행진을 했다. 성수동에 ‘이문동’이란 지명은 없는데, 당시엔 마을로 들어가는 문을 대체로 ‘이문’이라 했다. 바위 4개가 옛 문기둥을 받치던 돌이었다. 우리말로 ‘이뭇개’라 불렀다.”
옛 지도 속 ‘야소교회’는 현 성수동교회와 터가 들어맞다. 1906년 작은 한옥으로 지은 성수동교회는 여러 번 중축하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당시 만세 행렬은 이뭇개와 야소교회를 지나 다시 ‘순사주재소’ 앞을 지나는데, 지금의 서울 숲 지구대 위치와 똑같다. 다시 길을 돌아 지구대 왼쪽 길을 따라 직진하면 당시 관가가 늘어섰던 길이다. 우체국 터와 관사, 금융기관 터, 면사무소(현 성수동 성당)터도 길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다. 벽보로 퍼져나간 3·26 만세운동 약속 장소 ‘우물 앞’은 현재 일반상점가인 ‘우리눈 안경’점이 있는 삼거리다.
.성동구청장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정확한 역사 고증과 실증을 거쳐 마을유적지를 살펴보고 알림판을 설치하는 등, 주민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할 수 있는 동네 유적 보존 방법과 기림 사업 등을 논의하고, 3·1운동 유적을 기념하는 방안을 검토하려 한다”며 “ 지난 3월1일 왕십리광장에서 주민 주도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벌였다며 지난 100년을 넘어 앞으로 나아갈 길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고 발표했다.
무대는 배경에 100년 전 뚝섬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담은 영상을 투사하거나, 독립운동 거사계획이 적힌 문서의 영상을 투사해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배경 가까이 하수 쪽 언덕에 우물을 만들고, 상수 쪽은 등퇴장 로가 된다. 커다란 평상을 이동 배치해 장면변화에 대처하고, 손수레를 끌고 들어와 짚단을 싣고, 어린아이를 태우고 퇴장하기도 한다. 무명 한복을 의상으로 설정하고, 일경과 군인의 의상 그리고 총검이 사용되고, 100년전 서민이 즐기던 떡 같은 음식물이 등장한다.
연극은 도입에 천정에서 늘어뜨린 수많은 목을 매다는 밧줄에 조명이 집중된다. 다시 무대가 밝아지면 당시 뚝섬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재현된다. 3.1 독립만세운동 직후이기에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면서 일제는 조선인들에게 독립의 헛된 꿈을 꾸지 말라며 경계와 감시를 확대한다. 그러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어린아이들까지 만세운동에 나서는 상황이 되자, 일경 뿐 아니라 면서기까지 보내 이를 제지하도록 한다. 그러나 소 달구지꾼, 약초꾼, 지게꾼이 합세한 뚝섬 주민들은 은밀히 만세운동을 계획한다. 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이 태극기를 여러 장 준비해 오고, 임산부까지 만세운동에 마음을 쏟는다. 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이 일경과 면서기에 의해 연행되어가지만 뚝섬사람들의 열의는 식을 줄을 모른다. 여기에 일본여인이 등장하고, 조선인을 하대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여학생 중에는 일제에 부화뇌동하는 가족의 처사가 부끄러운지 우물 속에 빠져 자살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드디어 거사 날이 다가오고, 면서기는 피투성이가 된 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을 끌어다 사람들에게 보이면 경고를 한다. 1919년 3월 26일 거사 시각이 되자 뚝섬사람들은 손에, 손에 현수막을 들고 등장해 우물가에 모여 독립만세를 부른다. 그러자 일경과 헌병대가 등장을 하고 시위대에 발포를 한다. 결국 시위대는..
대단원은 천정에서 늘어뜨려진 수많은 목을 매다는 밧줄에 조명이 집중되는 장면에서 출연자가 모두 등장해 옛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관객이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하고 관객 전체가 일어나 애국가를 함께 합창하면서 공연은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 끝이 난다.
허기호, 나기수, 이광휘, 정경자, 감현란, 이진실, 도영애, 서주진, 주수연, 김희순, 임한호, 오진혁, 박상아, 김휘영, 이주현, 이영서, 이선미, 김도윤, 도용구(해설) 진화순(소리) 오준영(옛날 애국가) 임분순등이 출연해 출연자 모두의 혼신의 열정을 다한 호연과 열연은 관객을 감동시키고 갈채를 이끌어 낸다.
기획 홍보 이정미, 조연출 노수민 정현찬, 조명 김정희, 영상 윤영호, 분장 윤일향, 작곡 김동욱, 음향믹싱 이재원, 캘리그라피 이희선, 의상 마상수수공방 김영해 이재희, 소품 김의경 서혜주, 진행 이미성 최종희 채수원 서성원 김보경 이선이 권종원 이은경 등 스텝진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성동구립극단 & 극단 물맑고깊은의 황정원 예술감독 극작 연출의 <190326 뚝섬만세운동>을 관객의 가슴에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애국연극으로 창출시켰다.
4월 13일 박정기(朴精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