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압량주 연병장
김성문
신라는 외세에 의해 서기 642년까지 많은 성(城)을 빼앗겼다. 선덕여왕은 서기 643년 가을 9월에 외세를 막기 위해 사신을 중국 당나라에 보내 군사 파견을 요청했으나 도움이 없었다. 김유신 장군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사력을 길렀다. 오늘은 8월 초순이다. 화창한 하늘은 뭉게구름을 피우고 있다. 바람도 살랑거린다. 답사하기에 알맞은 날씨이다. 현재 경산시 압량읍과 진량읍에 있는 그 당시 신라 연병장에 가 보았다.
현재 경산시는 신라 파사 이사금(서기 102년)에 항복한 압독(押督) 또는 압량(押梁) 소국이 있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한다. 『삼국사기』 권34에는 신라 지미 이사금(서기 112년~134년 재위) 때 압량 소국을 쳐서 군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압량 소국이 멸망한 시기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멸망한 압량 소국에 선덕여왕은 서기 642년 압량주를 설치했다. 신라에 소속된 압량주에 김유신 장군이 48세(서기 642년) 때, 겨울에 압량주(押梁州) 군주로 왔다.
김유신 장군은 외세를 막아내고 나아가 삼국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압량주에 군사 훈련장 3개소를 설치했다. 그 당시 군사를 모아 심신을 연마하고 무술을 훈련하던 훈련장이 보존되어 있다. 각기 비슷한 형태를 이룬 소규모의 연병장들이다. 이들을 경산병영유적(慶山兵營遺蹟)이라 한다. 이 유적은 서기 1971년 국가 사적 218호인 압량유적으로 지정되었다가 서기 2011년 경산병영유적으로 변경되었다.
제1 연병장은 압량읍 압량리 179번지에 있다. 압량읍 시가지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고 자동차로 10분이면 닿는다. 연병장을 멀리서 보니 야트막한 야산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갔다. 가까이 들어서니 높은 언덕 위에 잔디로 조성한 연병장이 커다란 운동장처럼 보인다.
제1 연병장은 넓이가 13,924㎡(약 4,200평)이고, 높이가 7m이다. 지름은 90m이고 둘레가 약 300m이다. 동남쪽에는 높이가 약 10m 되는 토루(土壘)가 있는데 지름은 약 11m이다. 이 토루에서 김유신 장군이 직접 군사들을 지휘했다는 생각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토루에 올라가 보았다. 내가 장군이 된 것처럼 큰 소리로 고함을 질러 보았다. 듣고 있는 군사들이 한 동작 같이 움직여 준다.
제2 연병장은 압량리에 있는 제1 연병장으로부터 약 1.2km 떨어진 압량읍 내리 389번지에 있다. 제1 연병장 바로 옆에 있는 느낌이 든다. 가는 길도 자동찻길이라서 쉽게 도착된다. 연병장 입구에는 안내판이 있어서 감사하다. 제1 연병장과 비슷하다. 역시 잔디로 조성했다. 관리가 잘되고 있는 느낌이다.
제2 연병장은 면적이 15,987㎡(약 4,840평)로 제1 연병장 보다는 약간 더 넓다. 연병장의 정상 부분은 자연적인 형태이며 토축으로 지름 80m, 둘레 270m의 광장을 마련했다. 광장의 동남쪽에 높이가 약 9m이고 지름이 13m가량의 토루를 쌓았으나 동남 부분이 크게 파괴되어 토루의 모습을 잃고 있다. 이 연병장은 둘레가 제1 연병장과 비슷하다. 토루의 파손으로 토루에 올라갈 수가 없어서 연병장을 한 바퀴 돌았다. 땀이 흐른다. 연병장 가장자리에 있는 울창한 소나무 그늘에서 잠시 땀을 식힌다. 그 당시 군사들이 나라를 지키겠다는 마음 하나로 똘똘 뭉친 모습이 떠오른다.
제3 연병장은 내리에 있는 제2 연병장으로부터 약 3.2km 떨어진 진량읍 선화리 948번지에 있다. 자동차로 약 10분 정도 달렸다. 연병장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답답하다. 연병장에는 온통 소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사유지이다. 소유자가 매도 의향이 없어서 최소한의 관리만 되어 아쉬움이 남는다. 면적은 11,263㎡(약 3,410평)로 세 군데 중 제일 작다. 연병장 말단부에서 높이 10m 정도의 토축으로 지름 80m가량 원형 광장을 구축했다. 토루는 연병장 중앙 북쪽에 치우쳐 있고 높이 2m, 윗면 지름 13m 정도다.
세 군데 연병장 중 제1 연병장에서는 기마병을, 제2 연병장에서는 궁술을, 제3 연병장에서는 보병들을 훈련했다고 전한다. 경산병영유적이 있는 곳을 다른 표현으로 두룩산이라 부른다. 두룩산이라는 말은 두리산으로 두리두리한 산, 즉 둥근 산의 지형에서 온 말로 두리산(豆里山=圓山)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세 군데 연병장은 서로 1.2km~3.2km 떨어져 삼각형의 배치 모양을 하고 있다. 모두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를 잡고 있다. 자연 구릉 위에 흙을 쌓아 올려서 마치 성(城)처럼 보이지만 성으로 보기에는 규모가 작으며, 윗면이 평탄한 광장으로 되어있다. 광장은 군사들이 무술을 익히고 심신을 연마하던 장소였다.
경산시 압량면 부적리에는 마위지(馬爲池)라는 연못이 있다. 마위지는 신라 김유신 장군이 압량주 군주로 있을 때 훈련한 기마들에 물을 먹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축조한 저수지이다. 이곳 일대의 아낙들은 저녁때가 되면 온종일 훈련에 지친 말을 이 못으로 몰고 나와 귀를 씻는다. 아낙들은 말에게,
“전쟁터에 들어서면 적군의 화살과 창칼을 민첩하게 피해 달라.”
는 주문과 함께 남편과 아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했다고 전한다. 이후 이곳을 마이지(馬耳池)라 칭하기도 했고, 마을 지명 또한,
‘지아비가 적진으로 출정한다.’
라는 뜻을 담은 지아비 부(夫)에 나아갈 적(適)을 써서 부적리라 전한다. 경산시는 서기 2014년 신화랑 풍류 체험 벨트 조성사업으로 마위지를 경산 마위지 근린공원으로 조성했다.
유비무환이다. 모든 일에는 준비를 잘하면 성과를 낼 수 있다. 세 군데 연병장의 군사들 훈련 소리가 공중에서 들려온다. 그 소리가 나라를 지켰다. 내가 태어난 진량읍에 김유신 장군의 연병장이 있었다니 가슴 뿌듯함을 느낀다.
첫댓글 유적지도 알고 가면 감회가 새롭지요.
연병장에서 장군처럼 고함을 질러도 보시고 대단하십니다.
기회를 만들어 저도 한번 답사해 보고 싶네요.
조 선생님!
기회가 있을 때 같이 가요!
읽어 주셔서 댕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