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正見] (195) 새 술은 새 부대에
과거의 기억·관계에서 벗어나기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은 마음공부에서도 통용되는 표현이다. /셔터스톡
성경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헌 술을 새 부대에 담으면 새 부대조차 묵은 냄새에 오염된다는 뜻입니다. 마음공부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즉 깨어남의 체험이 있었다면 그걸 내가 유지하고 기억하는 게 아닙니다. 나란 생각과 느낌 자체가 헌 술이기 때문입니다. 바른 체험이라면 과거의 나(생각)대신에 그 자리엔 텅 빈 채 충만감으로 빛나는 새 의식만 있게 됩니다.
이것이 새 술입니다. 이 새 술을 보림하며 과거의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라는 감정과 기억의 굴레 속에 갇히지 않는 것이 바로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깨어남의 체험과 과거의 은원관계를 동시에 그대로 다 갖고 유지하는 사람이 자주 있습니다.
이는 자기도 모르는 새 나란 아상을 부활·유지시키는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헌 술을 새 부대에 담아 새 부대마저 망치는 실수로 연결됩니다. 그렇게 되면 깨어남의 체험은 분명했는데 지금은 생각 속에나 있는 해오(解悟)가 됩니다. 그럴수록 깨어남의 순도는 미약해집니다.
지금 내 의식 속에서 나란 몸과 마음의 현상은 있지만 그것들이 대상화되고 하나의 정보체계(생각+느낌)로나 있다, 없다 할 뿐 진짜 나란 이런 현상을 지켜보며 아는 [앎]그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 앎 속에선 뭘 알고 모른다는 생각들 자체는 분명하게 보이지만 그걸 보고 아는 자신은 [모를 뿐]입니다.
과거의 내가 정보들의 묶음으로서 희미해지고 지금 거듭난 새로운 나는 그저 이렇게 일체를 보고, 알고, 느끼며 체험하는 이것(생명)자체일 뿐입니다. 이것이 새롭게 거듭난 참나(새 술)이며 이것은 전체와 개체들 속에서 오직 하나로서 유일신처럼 홀로 빛나고 있습니다.
이 새 술을 [온 세계가 하나로서 스스로 깨어있는] 각성 속에 담아두십시오. 이것이 바로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것]입니다. 이 새 술부대안에서는 모든 과거의 존재들은 있는 듯 없는 듯 희미해지고 내가 의미를 부여하여 있다고 명령할 때만 창조되는 피조물(정보현상)이 됩니다.
그렇지 않고 어떤 좋거나 미운 사람이 이 자리밖에 여전히 따로 있다거나 한다면 그것은 아직 완전히 깨어난 게 아닙니다. 진리는 불이법이며 오직 하나이기에 그 어떤 것도 이 자리밖에 예외로서 따로 있을 순 없습니다. 공부인은 부디 이점을 항상 수시로 확인하셔야 합니다.
글 | 김연수 한양특허 대표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