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고 나서 화면에 뜨는 글귀를 읽으며 탄식과 분노를 안고 나옵니다. ‘이 사건으로 징벌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내용입니다. 세상에, 그럴 수가 있는 겁니까? 세 젊은이의 인생을 박살내고 나아가 한 경찰관의 앞길까지 망가뜨리고 그 가정까지 어렵게 만들어놓고도 힘 있는 자들은 시시덕거리며 여전히 그 권력을 누리고 살아갑니다. 얼마나 정의로운 사회이고 나라입니까? 뭔가 비뚤어진 모습을 우리는 여전히 보고 있습니다. 일단 지나고 나면 그렁저렁 잊어버릴 것이다, 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힘없는 사람들은 그저 그런 사람들을 위한 지옥이나 그리면서 버텨야지요. 아무튼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일어섭니다.
많이 듣고 보았습니다. 비단 영화나 드라마 속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 우리 사는 사회 속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기에 남 이야기로만 흘려보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다고 뭔 일이 일어나는가? 그건 아닙니다. 그래도 잊지는 말아야지 다짐을 합니다. 당장의 어떤 변화가 없더라도 변화의 소망까지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더딜지라도 이루어지리라, 끝까지 버텨야 합니다. 지구가 끝장나기 전에는 이루어질 것을 소망합니다. 그 전에 우리 자신 이 땅을 떠나있을지 모르지만 후대가 누릴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런 미래를 꿈꾸며 참고 사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억울하고 분하지만 살아남아 버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불의를 보면서도 마음대로 대들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나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고 불행을 당해야 합니다. 도대체 왜? 이유를 밝히기 어렵습니다. 불행을 주도하는 자들이 그 이유를 명확히 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그들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목적은 하나,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를 제거하려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당사자보다는 그 가까운 사람이 당하는 것입니다. 물론 당사자도 불이익을 당합니다. 다만 가족이 덩달아 수모와 억울한 일을 당해야 합니다. 본인은 알지만 그런 사정을 일일이 가족에게 설명해주기도 어렵습니다. 그냥 마음만 아프지요.
악인이라 하는 사람도 두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그나마 양심이 있는 자와 양심마저도 없는 자입니다. 양심이라도 있다면 소위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무지 양심이라고는 쥐 털도 없는 사람이라면 그 말조차 사치일 뿐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저지른 악행을 조금이라도 뉘우치고 끝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언급 없이 끝까지 저 잘났다고 여기며 사라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 실력이면 아마 지옥에서도 상좌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야 죽음 저 편의 일이니 그저 산 사람만 여전히 마음 지지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래 사는 사람이 승리자다 자위하며 남은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사건 발생 1년 후 진범이 전화합니다. 새로 부임해온 수사반장 '황준철'에게 연락이 온 것입니다. 사건은 이미 종결되었고 범인들은 재판 후 감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전임 형사는 영전해 자리를 옮겼고 그 자리에 새로 온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진범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나치려다 사건 기록을 챙겨 훑어봅니다. 아무래도 허점투성입니다.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지요. 당시 증언자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문전박대 당합니다. 재수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상사도 무슨 짓이냐고 삿대질입니다. 당시 수사해서 넘겼던 형사들이 무시하고 깔보고 억누릅니다. 이게 뭔가 숨기고 잘못된 것이 있구나 싶지요. 새파란 소년들의 인생이 걸린 일입니다.
결국 황 반장은 좌천됩니다. 사건은 다시 잠잠해집니다. 16년의 세월이 흐릅니다. 소년들은 청년이 되어 나름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숨죽이며 사는 것이지요. 살인자의 오명을 지니고 있으니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나서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일한 목격자였던 '윤미숙'이 변호사와 함께 찾아옵니다. 재수사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오래 전 거부했던 일을 이제는 나서서 하자는 것입니다. 진범의 친구가 진술한 이야기를 녹음해둔 것을 남겨두었었지요.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우연히 그것을 들은 미숙이 양심의 소리를 들었고 사실 어머니를 살해한 진범이 따로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흔들렸던 것입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는 안 되지요.
당시의 할머니를 살해했던 진범도 실제 살해 의도는 없었습니다. 일종의 사고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공통적으로 도적질하러 들어간 것은 사실입니다. 그 후 진범은 날쌔게 도주하고 어정쩡한 녀석들 셋이 걸려들었습니다. 모진 매와 협박을 견디지 못하고 범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옥살이를 하고 나온 것입니다. 황 반장이 다시 옛날 사건을 뒤지며 수사를 전개하니 윗선에서 다시 난리가 납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도 맘껏 권력을 휘두르며 협박하고 훼방하고 몰아세웁니다. 모두 감내하며 증거들을 모아 무죄판결을 받아냅니다. ‘우리는 살인자가 아니다,’ 청년들의 힘찬 외침으로 막은 내립니다. 그런데 달라진 것이 무엇입니까? 영화 ‘소년들’(The Boys)을 보았습니다.
첫댓글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만연한 나라ㅠ
바로 이것을 바꿔야 하는데 말입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