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토리엄
황유원
죽기에 이만한 장소도 없겠다
파도 치는 바다인 동시에
떡갈나무 흔들리는 숲 속
눈 감으면 알 수 없으리
여기가 바닷가인지
숲 속 한가운데인지
풍랑에 배란 배는 죄다 떠내려갈 것 같고
어디 가까운 데 횟집이라도 있어
원통형 수족관 물속에 뜬 생선들이
거의 제자리에 정지한 채
은빛 깃발들로 펄럭이고 있을 것만 같은데
눈 떠 보면 다시 숲 속 한가운데
새소리만 반짝이고
사람은 아무도 없어
마지막 남은 인류가 된 기분으로
나만 죽으면 이제 고요해질 듯한 기분으로
다시 눈 감으면
떠내려간다
떠내려가다
낚시 바늘이라도 삼킨 듯 허공으로 솟구치는
나뭇가지 한 귀퉁이
거기 사뿐히 내려앉는 새처럼 안착해
생각해 본다
곤파스가 이곳을 통과하던 그날 밤
나는 이 숲으로 얼마나 들어오고 싶어 했던가
그러나 못 왔지
죽을까 봐
벼락 맞은 나무에 깔려
죽을까 봐
그러니 죽고 싶었다는 거짓말
사시나무처럼 떨던 거실 창에 분무기로 물 뿌리고선
덕지덕지 신문지나 붙이며 가슴 졸이던 밤 잊지 못하는
나는 아직 죽기엔 자격 미달이고
뽕나무 밭이 온통 푸른 바다가 되어
거기에 실려 새들이 떠내려가고
남겨진 나만 저 멀리
객석으로 밀려나고 있는데
그날처럼
오늘처럼
나는 그걸 멀리서 그냥
듣기만 했지
황유원
울산 출생. 2013년 《문학동네》 신인상 당선하며 시 등단.
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 『초자연적 3D 프린팅』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