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제도의 핵심은 진실을 파악하여 양 당사자간에 ‘더함도 덜함도 없는’ 정의로운 결론을 이끌어 내는데 있다. 그런데 사법과정에 거짓말과 조작된 증거가 난무하고, 진실규명을 위한 판사의 명령이 무시되어도 처벌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검찰의 결정과 법원의 판결이 잘못될 가능성이 높아져 억울한 국민들이 양산되고 사법권위가 훼손되며 정의가 무너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거짓말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 사법제도는 허위진술·보고, 증거조작, 참고인과 증인회유 및 출석방해 등을 막는 장치가 매우 미흡하다. 수사단계에서 참고인의 허위진술과 교사행위,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범죄자 자신의 형사사건에 사용될 증거 은닉, 증거조작도 처벌하지 못한다. 위증죄가 ‘선서한 증인’에게만 적용되어 수사단계의 참고인의 허위진술과 교사행위를 처벌하지 못하고, 증거인멸죄가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서의 증거인멸’만 처벌하고 자신의 형사사건 등에서의 증거조작 행위는 처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증거인멸죄는 형사사건 등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민사소송에서의 증거 인멸, 조작, 허위 확인서 제출을 처벌하지 못한다. 심지어 재판에서 증인으로 채택된 사람을 회유하여 증언을 막는 경우도 처벌하지 못한다. 형사 피고인은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헌법상 권리가 있기 때문에 허위진술에 대해 처벌하지 못하지만, 민사사건에서 당사자의 허위진술은 진실 규명을 저해하기 때문에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민사소송법상 당사자가 선서하고 허위진술을 한 경우에만 고작 50만원 이하의 과태료 제재뿐이어서 민사소송은 당사자의 허위진술 경연장이 된 지 오래다. 법원이 공공기관이나 단체, 개인 등에 보내는 사실조사 촉탁이나 감정촉탁의 경우에도 허위보고의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실제로 당사자와 이해관계가 있거나 부정한 청탁에 영향받아 허위보고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도 이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다. 사법 권위를 훼손하는 또 하나의 안타까운 현상은 재판과정에서의 판사의 명령 불이행을 방치하는 현상이다. 정보공개 청구사건에서 문서목록 제출 명령, 금융거래나 통화정보 등에 대한 법원의 제출명령을 해당 기관이 무시하거나 정보를 누락하여 보내는 경우도 제재방법이 없다.
이는 우리의 법정모욕죄가 법정 및 부근에서 모욕하거나 소동한 행위만 처벌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사법의 기능과 권위를 보장하기 위하여 ‘사법방해죄(obstruction of justice)’와 ‘법원모욕죄(contempt of court)’제도를 두고 있다. 사법방해죄는 법집행과 국가기능을 방해하고 지연하기 위한 일체의 형태를 포함하는데, 앞에서 든 각종 사안은 미국에서는 사법방해죄로 처벌된다. 판사의 명령을 불이행하거나 무시하는 경우에는 법원모욕죄로 구속도 한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폴라 존스 성희롱 사건과 관련, 대배심 앞에서 선서후 허위진술을 한 것으로 사법방해죄로 기소되었고, 탄핵소추까지 되었으며, 성희롱 관련 민사재판에서의 허위진술을 이유로 법원모욕죄로 처벌받았고 변호사자격까지 정지되었다.
우리의 사법제도는 제도적 장치보다는 법과 판·검사의 권위가 진실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기대하거나 허위진술이나 조작된 증거가 제출되어도 판·검사들이 이를 가릴 수 있다는 믿음에 더 비중을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쁜 사람은 더욱 교활해졌고, 법의 권위에 복종하여 진실을 말하리라고 기대할 수 없으며, 업무부담이 과중한 판·검사들이 충분한 심리를 통해 지혜롭게 거짓을 가려내는 것도 무리다. 더구나 요즈음은 자기 판결에 번민하면서 종교인의 길을 선택한 효봉 스님처럼 진실로 고뇌하는 법조인의 모습을 보기도 힘들다. 사법피해로 고통받는 억울한 사람들이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판·검사의 오판에 대한 배상책임까지 거론되고 있다. 사법제도가 사람에 의존하는 한, 사법피해는 늘어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 모두에게 돌아간다. 사법방해죄와 법원모욕죄의 도입 등 사법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