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 사직상소(辭職上疏) 하다
사 : 사바세계 영화로운 벼슬자리 얻었으나
직 : 직분의 무거움에 마음 또한 지쳐가네
상 : 상소문 붓끝마다 충정 어린 눈물 맺혀
소 : 소슬바람 궁궐 지나 임 향한 뜻 남기누나
[九雲夢] 46.사직상소(辭職上疏)하다
이 무렵 천하가 태평하여 사방 변경(邊境)에 일이 없고 백성들은 안락히 살며 곡식이 잘되어, 승상이 나아간즉 친자를 모시고 상림원(上林苑)에 사냥하며, 돌아온즉 대부인을 받들어 당상에서 잔치를 베풀어 노래와 춤 속에서 세월을 보내는데, 흥진비래(興盡悲來)라 함은 예나 이제나 의례히 있는 일이라, 유부인이 우연히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니 연세가 아흔아홉 살 이더라. 승상이 비통해서 예를 갖추어 안장할새 두 전궁(殿宮)에서 내시를 보내어 조문하시고 왕후(王后)의 예로써 예관(禮官)을 보내어 장사를 치르시더라.
정사도(鄭司徒) 내외가 영화를 누림은 말할 나위도 없겠거니와 오래 살다 별세하매 승상이 슬퍼하는 정경은 정부인에 못지 아니하더라.
양승상의 여섯 아들과 두 딸은 다 부모의 모습을 닮아서 사내아이는 용호(龍虎)같고 계집아이는 항아(姮娥:월궁선녀) 같은지라, 맏아들 대경(大卿)은 정부인의 소생으로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오르고, 둘째 아들 차경(次卿)은 적경홍의 소생으로 경조윤(京兆尹)의 벼슬을 살고, 셋째 아들 숙경(淑卿)은 가춘운의 소생으로 어사중승(御史中丞)의 벼슬을 살고, 넷째 아들 계경(季卿)은 난양공주의 소생으로 병부시랑(兵部侍郎)의 벼슬을 살고, 다석째 아들 오경(五卿)은 계섬월의 소생으로 한림학사(翰林學士)의 벼슬을 살고, 여섯째 아들 치경(致卿)은 심요연의 소생인데 힘이 남보다 힘이 남보다 뛰어나도 지략이 귀신 같은지라, 천자께서 매우 사랑하시어 금오상장군(金五上將軍)을 삼아 군사 십만 명을 거느려 대궐을 호위케 하시며, 맏딸 부단(傅丹)은 진채봉의 소생으로 월왕의 아들 낭야왕(瑯琊王)의 왕비가 되고, 둘째 딸 영락(永樂)은 백능파의 소생으로 첩호(婕好)가 되었느니라.
하루는 양승상이 비유(比喩)로써 말하되,
“너무 성하면 쇠하고, 너무 가득하면 넘치기 쉽다.”하고
이에 상소하여 벼슬에서 물러가기를 비니 그 글에 씌였으되,
<승상 신 양소유는 돈수 백배하옵고 황제폐하께 말씀 드리나이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소원이 장상공후(將相公侯)를 지니지 못하고 벼슬이 장상공후에 다달으면 나머지 소원이 없사오니,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공명부귀(功名富貴)를 축원하나 몸이 공명부귀를 이루면 나머지 소망이 없사옵니다. 그러하온즉 장상공후의 영화와 공명부귀의 즐거움이 어찌 인심의 흠모하는 바와 시속(時俗)이 다투는 바가 아닐 수 있겠나이까? 세상의 영화와 부귀가 어찌 흡족함을 알며 화를 스스로 만드는 줄을 헤아릴 수 있겠나이까? 신이 재주가 적고 능력이 부족하되 높은 벼슬을 차지하고 있으며, 공이 없고 명망(名望)이 낮되 한 자리에 오래도록 머무르니, 은혜가 신에게 이미 극진하오며 영화가 부모에게 이미 미치었나이다. 신의 처음 소원은 이의 만분이 일이었는데 외람되이 부마(駙馬)가 되어 예로 대접하심이 모든 신하와는 다르고, 은혜로 상을 주심이 격외로 각별하시와 채소를 먹고 자라난 몸이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삽고, 미천한 신분으로 감히 궁중에 출입하여 위로는 성군께 욕되며 아래로는 신의 분수에 어긋나오니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사오리까? 일찍이 자취를 감추고 영화를 피하며, 문을 닫고 은덕을 사양화와 그로써 참람하고 몰염치한 죄를 들어 스스로 천지신명께 사죄하고자 하오나, 워낙 베푸시는 은덕이 융숭하시매 갚을 길이 아득하옵고, 또 신의 근력이 아직은 말을 타고 달릴만 하옵기로 부득히 도로 주저앉아 다못 만분의 일이라도 우러러 천은을 갚사옵고, 곧 물러가 선영(先塋)을 지키며 나머지 세월을 마치고자 하였삽는데, 이제 각별하신 은덕을 갚지 못하고 천한 나이 이미 높아, 정성읋 펴지 못하고 모발이 먼저 쇠하오매, 비록 이제 다시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하여 태산 같은 은덕을 갚고자 하오나 사세는 이미 글러 어찌할 도리가 없나이다.
이제 천자의 신명함을 힘입어 변방이 항복하매 병혁(兵革)을 쓰지 아니하오며 만백성이 편안하매 북채와 북이 놀라지 아니하오며, 하늘의 상서(祥瑞)가 더 이르매 삼대(三代:하은주)의 화락한 다스림을 이루게 되올지라, 비록 신으로 하여금 조정에 머무르게 하실지라도 녹봉(祿俸)한 허비하고 격양가(擊壤歌)만 들으실 뿐이요, 신기한 계교를 낼일이 없겠나이다. 예로부터 인군(人君)과 신하는 부자 같다 하와 부모의 마음에 비록 미흡한 자식이라도 슬하에 있은즉 기꺼워하고 밖에 나간즉 염려하는 법이오니 , 신이 엎디어 생각하옵건데 황상폐하께서 필연 신을 가리켜 늙은 몸이고 옛 물건이라 불쌍히 여기시어 차마 하루아침에 물러가지는 못하게 하시겠사오나, 사람의 자식으로서 부모를 생각함이 어찌 그 부모가 자식을 사랑함과 다를 수 있겠나이까? 신이 폐하의 은덕을 입음이 이미 갚사오니, 신이 어찌 멀리 하직하고 산속에 엎디어서 요순(堯舜) 같은 인군을 영결할 수 있겠나이까? 이미 물이 가득찬 그릇은 아무래도 넘치게 하지 못할 것이며, 이미 엎어진 멍에는 아무래도 다시 타지를 못하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신이 많은 일에 견디어 내지 못할 것을 헤아리시고 신이 높은 자리에 있기를 바라지 않음을 살피시어, 특별히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여 남은 세월을 편안한 마음으로 마치도록 허락하시고, 신으로 하여금 성덕을 노래하며 은덕을 감격케하옵소서.>
황상이 이 상소를 보시고 친히 붓을 들어 비답(批答)을 내리시되,
<경의 큰 업적은 조정에 우뚝 높고 또한 백성들에게는 두텁게 덮히니, 큰 국가의 주석(柱石)이요,짐은 팔다리로다. 옛날의 강태공(姜太公)과 소공(召公)은 나이가 거의 백세로되 오히려 주나라를 도와 능히 치적(治績)을 이루었는데, 경은 아직도 예경(禮經)에 이른바 벼승을 돌려 보낼 나이가 아닌즉, 경은 비록 일을 사례하고 지레 물러가려 하나 짐은 아무래도 허락지 않을 것이요, 경의 풍체가 요즈음은 오히려 새로워서 옥당(玉堂:한림원)에서 조서를 내던 날에 견주어 손색이 없으며 , 정력도 여전히 왕성하여 위교(渭橋)에서 도적의 무리르 섬멸할 때나 다름이 없으매, 비록 늙었다 일컫으나 짐은 이를 진실로 믿지 아니하니, 모름지기 기산(箕山)이 높은 졸개를 돌이켜 그로서 당우(唐虞:요순)의 선정을 베풀도록 도와주기를 짐이 바라는 바이다.>
승상의 연세는 비록 많으나 그 육체는 아직도 쇠하지 아니하여 사람들이 다 신선에 비하는 고로, 비답에 이와 같이 말씀하였느니라.
승상이 다시 상소하여 물러가기를 매우 간절히 바라니 상이 불러들여 만나보시고 전교를 내리시기를,
“경이 사양함이 이에 이르니, 짐이 어찌 힘써 경의 뜻을 이루게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마는 경이 만약에 봉(封)한 나라로 나아가면 국가 대사를 가히 상의할 자가 없을 뿐 아니라, 이미 태후가 승하하셨으니 짐이 어찌 영양과 난양의 두 공주와 멀리 떨어져 있으리오? 남문 밖 사십리에 이궁(離宮)이 있으니 곧 취미궁(翠微宮)이며 옛날에 현종황제께서 피서하시던 것이라, 이 궁이 고요하고 깊으며, 외져서 그윽하고 넓으니 가히 늙어서 소일할 만한 고이므로 특별히 경을 주노라.”하시고,
곧 조칙을 내려 승상 위국공(魏國公)에 태사(太司) 벼슬을 때 봉하시고, 다시 상급으로 오천 호(戶)를 더 내리시면서 아직은 승상의 인수(印綏)를 지니고 있으라 하시더라.
출처: 구운몽
첫댓글
사직서를 제출하려 걷는걸음
직장생활 종지부를 찍는날에
상상할수 없이착잡 무겁구나
소소한일 큰일겪고 지난세월
하염없이 내리는물 없는눈물
다잊으리 이제부터 행복시작
사랑나누며
직장보다 가정 중심
상상봉 오르며
소소한 것에 행복을
하루하루
다정다감하게 살아간다
사회생활의 끝자락 사직서를 제출함은
직장에서 희비애락 추억으로 남는구료
상처받지 아니하고 환영받고 퇴직하면
소슬바람 맞이하듯 시원섭섭 하더군요.
지루하셨죠?
이제 서너편이후면 구운몽도 끝을 맺습니다.
행시방을 재미있게 꾸며 볼라고 이야기를 주제로 행시도 만들었지요.
그동안 성원해주신 분 모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