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규 제랄드 신부
대림 제2주일
이사야 40,1-5.9-11 2베드로 3,8-14 마르코 1,1-8
쟤 탓이오? 제 탓이오!
미사를 봉헌하며 참회 예식을 할 때 각자가 가슴을 치며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내 탓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살아가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내 탓이 아니라 남 탓을 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모든게 내 탓일 수는 없습니다. 분명 다른 사람의 탓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부 다 남 탓일 수만은 없습니다. 아무리 상대방의 탓이 크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내 탓, 내 잘못, 내 부족함이 있기 마련이지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시기에 특별히, 대림2주간을 맞이하는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는
'듣는 마음' 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 하는 예언자 사람들을
회개시키기 위한 노력, 성경에서 전해주는 말씀을 잘 듣고 지키기만 했다면
죄를 짓거나 잘못을 저지르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보다 내 것이 더 커지면서 하느님이 자리할 곳이 사라지게 되었고
우리는 점점 죄로 기울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보내어 회개하라고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계십니다.
회개란 듣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남 탓할 필요도 없고, 합리화하고 정당화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들으려 하지 않는 내 마음에서부터 발생합니다.
잘 듣기 위해, 경청하기 위해 상대방을 향해 몸을 기울인다면 마음이 통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상대방을 향해 몸을 기울이기보다는 상대방이 나에게 숙이고 들어오기를
바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툭툭 내뱉으며 상처와 아픔을 주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서히 죄로 물들어 가고 내 내면의 소리를 듣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아기 예수님을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이 시기에 조금만 더 들으려고 노력하며 살아간다면
성탄을 준비하는 우리의 마음은 예년과는 분명 달라질 것 입니다.
죄로 물들어져 있는 내 모습을 직면하고 성찰함을 통해 부족하고 죄 많은 나의 모습을 성실히
고백하여 죄 사함을 받아 성탄을 잘 맞이하시면 좋겠습니다.
늘 매번 똑같은 대림시기가 아닌, 그저 시간에 흐름에 따라 맞이하는 판공시기가 아니라
정말로 부족하고 죄 많은 나를 위해 탄생하시는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주님의 자녀로서
천천히 지난 시간을 반성하고 고백하는 성실한 자녀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쟤 탓이 아닌 제 탓이 되고, 나의 내면의 소리와 상대방의 말을 잘 들음을 통해
주님을 맞이하는 충실한 종이 되게 하소서.
원주교구 이진규 제랄드 신부
2023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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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 프란치스코 신부
대림 제2주일
이사야 40,1-5.9-11 2베드로 3,8-14 마르코 1,1-8
회개하여라!
우리는 지금 성탄을 준비하는 시기에 머물고 있습니다. 성탄은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어 우리 곁에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여정에 있는 것이지요. 특별한 만남이지요. 만남에는 언제나 준비가 따르기 마련이지요.
옷을 곱게 차려입어야 하는 만남도 있고, 자료를 잔뜩 안고 가야하는 만남도 있으며,
편안한 몸과 마음만으로 충분한 만남도 있지요.
그럼 예수님과 우리 자신과의 만남에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교회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세례자 요한을 통해서 예수님과의 만남에 있어서
중요한 준비중의 하나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네요. 그것은 무엇일까요? 네, 회개입니다.
우리는 왜 회개해야 할까요? 회개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나 필요한 것이지,
우리처럼 믿는 이들에게는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회개에 대한 좁은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회개의 필요성은 사랑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사랑이 가득한 사람은 종종 회개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사랑이 부족한 사람은
회개의 필요성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이는 마치,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내가
잘해 주어도, 돌아서면 늘 부족함을 느끼며 다음에 더 잘 해 주어야지 하며
마음 다짐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회개는 마음에서 시작하지만, 밖으로 드러나야 진정한 회개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 시기에 회개의 외적 표지로 고해(판공)성사를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고해성사 준비는 나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먼저 생각하면서 시작하는게 좋습니다.
자신의 죄에 대한 비참함, 부끄러움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나의 무관심과 냉랭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은총으로 나를 감싸주시며, 나를 구원으로 이끌고
계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먼저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그분의 사랑에 상응하지 못한
나의 모습이 보일 것이며, 그 모습 안에서 나의 부족함, 죄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의 죄는 나를 움츠러들게 하거나 숨기는 그런 부끄러운 죄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나를 하느님께 향하게 하는 “복된 죄”로 보일 것입니다.
이런 복된 죄를 어찌 숨길 수 있겠습니까? 어찌 고백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과의 특별한 만남을 준비하는 복된 대림시기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광주대교구 정윤수 프란치스코 신부
2023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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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기 바오로 신부
대림 제2주일
이사야 40,1-5.9-11 2베드로 3,8-14 마르코 1,1-8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이사야 예언서 40,1)
모든 인간은 '존엄’합니다. 하느님의 모상인 우리는 모두가 평등하며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권'입니다. 하지만 문명이 시작된 이래 인간 세상은
항상 계급을 나누고, 보다 크고 강한 것을 본능적으로 추구했습니다.
이러한 경쟁에서 '약한 이들은 항상 배척당하고 무시당하며 버림받았습니다.
그야말로 '출신, 성별, 지위, 재산, 학력' 등 여러 배경에 의해 인권을 빼앗긴 사람들이 항상
존재했던 것입니다. 성 라자로 마을의 한센 가족들도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살아온
과거가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한센인의 날' 행사 참석 차 마을 가족들을 모시고
소록도에 다녀왔습니다. 그곳 전시관에서 본 한국 한센인들의 역사는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1916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소록도에 세워진 '자혜의원은 훗날 '소록도갱생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는데, 그 확장공사 과정에서 한센인들은 불편한 몸으로 강제노역과 폭행,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이후 많은 이의 노력으로 한센인들의 인권문제가 대두되기 전까지
한센인은 소록도에서 세 번 죽는다.’라는 표현이 있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한센병이 발병하면서 모든 꿈과 희망에서 죽게 되고,
두 번째는 강제로 생체 실험을 당하여 죽으면 시신 해부를 당하며 죽게 되고,
세 번째는 장례 후 강제 화장을 당하며 죽게 된다.'라는 의미입니다.
병의 증세만으로도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강제노역을 시켰고, '유전된다.'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한센인 부부를 분방시키는 것은 물론, 강제 단종 수술과 강제 낙태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내용이 전시관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감금실' 벽에는 한센 환우가 쓴 시가 붙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죄가 없어도
불문곡직하고 가두어놓고 왜 말까지 못하게 하고 어째서 밥도 안 주느냐 억울한 호소는
들을 자가 없으니 무릎을 꿇고 주님께 호소하기를 주님 말씀에 따라 내가 참아야 될 줄 아옵니다.
내가 불신자였다면 이 생명 가치 없을 바에는 분노를 기어이 폭발시킬 것이오나
주님으로 인해 내가 참아야 될 줄 아옵니다. 이 속에서 신경통으로 무지한 고통을 당할 때
하도 괴로워서 이불 껍질을 뜯어 목매달아 죽으려 했지만
내 주님의 위로하시는 은총으로 참고 살아온 것을 주님께 감사하나이다.
이렇게 철저히 인권이 무시당하고 말도 안 되는 처우를 받으며 살아온 한센인들에게도
요한 세례자 같이 '주님의 길을 마련하고, 그분의 길을 곧게 내신'(마르 1,3)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마가렛 선생님, 마리안느 선생님, 강칼라 수녀님, 이경재 신부님, 엠마 프라이싱거 여사 등 입니다.
이분들은 한국한센인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이사 40,1)이라는 제1독서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신 분들이셨습니다.
수원교구 한영기 바오로 신부
2023년 12월 10일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
가톨릭 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