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박사 지우기’ 논란, 美손녀 급거 귀국... 유한양행에 무슨 일이?
주총 앞둔 유한양행, 28년 만에 회장직 신설 놓고 내분
국내 1위 제약 업체인 유한양행이 15일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내홍에 휩싸였다. 주총에서 정관을 변경해 회장과 부회장 직제를 신설하려는 회사 방침에 일부 직원들이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현 경영진이 신규 직제를 이용해 회사를 사유화하려 한다”고 주장하며 본사 앞에서 트럭을 동원한 시위까지 하고 있다.
반면 회사는 “회장·부회장직 신설은 회사 성장에 따른 조치일 뿐, 특정인을 선임할 계획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유한양행 창업주 고(故) 유일한 박사의 하나뿐인 직계 후손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13일 “유한양행이 할아버지의 창립 원칙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 우려된다. 좋은 기업 지배 구조의 빛나는 예시였던 회사가 직원들의 신뢰를 잃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고 했다.
유 이사는 주주총회 참석을 위해 최근 귀국했다. 유일한 박사의 사회 환원과 선구적인 전문 경영진 체제 도입으로 한때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꼽혔던 유한양행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28년 만의 회장직 부활
1926년 창립한 유한양행 역사에서 회장에 올랐던 사람은 유일한 박사와 그 측근인 연만희 고문 등 두 명뿐이었고 연 고문이 회장에서 물러난 것은 1996년으로 28년 전이었다.
회장과 부회장직이 정관에 명시된 적도 없었다. 정관 개정에 반대하는 직원들은 이정희 현 이사회 의장이 회장직에 앉기 위해 직제를 신설한다고 주장한다. 이 의장은 지난 2015년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해 연임에 성공, 6년간 유한양행 사장을 역임한 후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이전 대표들은 사장 임기가 끝나면 모두 은퇴했다.유한양행 측은 직제 개편에 대해 “글로벌 제약 회사로 나아가기 위해 직급을 유연화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한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회사의 양적·질적 성장에 따라, 향후 회사 규모에 맞는 직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특정 인물을 선임할 계획이 전혀 없고, 주총에서도 직제만 개편할 뿐 회장 선임은 예정되어 있지 않아 적임자가 나타날 때까지 공석일 것”이라고 했다.
유일링 이사는 회사 입장에 대해 “공석으로 남길 자리라면 왜 만드느냐”며 “회장직 신설은 ‘기업은 사회와 직원의 것’이라던 할아버지 유지에 어긋난다”고 했다. 회사 방침에 반대하는 직원들은 지난 11일부터 유한양행 본사 앞에서 트럭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트럭은 직원들의 익명 모금으로 마련했는데 전 직원의 6분의 1인 300여 명이 모금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직원은 “매출 2조도 안 되는 회사에 의장·사장 두 명과 부사장 여섯, 수십 명의 임원이 있는 지금 구조도 이미 지나치다”고 했다.
재단 사유화 논란도
시위 참여 직원들은 ‘유일링 이사 유한재단 이사직 재선임’도 요구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공익 재단인 유한재단이 최대 주주(15.77%)로 회사 이익이 재단에 배당으로 돌아가는 구조다. 유일한 박사가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이유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면서 만들어진 지배 구조이다. 그런데 지난 2022년 이정희 의장이 재단 이사가 되고, 유일링 이사는 재선임되지 않으면서 재단 또한 사유화됐다는 것이 직원들의 주장이다. 회사 측은 “공익 재단에 회사 특수관계인이 20%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정희 의장과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가 포함되는 과정에서 유일링 이사의 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안다”며 “코로나 시기 미국에 있던 유씨가 이사회에 참석할 수 없는 물리적인 문제도 있었다”고 했다.
제약 업계 안팎에서는 10여 년간 국내 제약사 매출 1위를 달성하고, 신약 ‘렉라자’ 개발에 성공한 현 경영진의 성과를 인정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유일링 이사는 “회사에 이윤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진실성(integrity)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며 “진실성이 없는 기업이 어떻게 최고의 인재를 모으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겠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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