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 김기성
살얼음판 걷는 달걀 깨지고 금가고 아슬아슬한 시간의 연속 새 생명 병아리를 꿈꾸지만 느닷없는 바위 치기로 박살 나기도 일쑤 내 어머니 삶이 그랬다 천국 오르내리던 어느 날 서툰 발음으로 목사님 따라 아멘 하신 어머니 알밤이 떨어지던 가을 바로 오늘 하늘길 오르시던 날 큰아들 집에서 삽시정저한 음식 드실까 주님이 챙겨주는 말씀을 드실까 어떠한 욕심에도 입 맞추지 못하시던 분 병아리 부화에서 곤달걀이 나오듯 쌀쌀한 길목에 모로 서서 우왕좌왕하고 계시지는 않는지 순간순간 온전한 정신 돌아오면 로뎀나무 숯불처럼 끈질긴 아들 생각에 대문 향하시던 어머니 찾아가는 길 잃어 머무는 딸의 집에서 엉겁결에 접한 믿음 주님은 이유나 과정은 묻지 않고 그 나라 백성으로 받아 주셨으리라 믿는다
― 시집 『뒷짐의 가계도』 (등대지기, 2023.10) ----------------------
* 김기성 시인 전북정읍 입암 출생 , 중앙대 미래교육원 시창작 과정 수료 2014 『한맥문학』 등단 토닥토닥 시 발전소 회원 제5회 詩끌리오한국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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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얼음판’과 ‘달걀’의 공통점은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깨지기 쉽다는 것이다. 언제 금이 갈지 몰라 ‘살얼음판’을 딛는 심정은 조마조마하다. ‘달걀’은 병아리를 꿈꾸지만 느닷없이 바위에 부닥쳐 박살이 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는 손해만 보는 어리석은 일을 일, 또는 불가능하고 무모해서 승산이 없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니 어머니의 삶은 깨지기 쉬운 달걀처럼 위태한 삶이었을 것이다. 달걀이 병아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껍질을 깨고 나오는 부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기서 부화란 ‘의식의 변화’를 뜻한다. 변화가 없는 고정된 삶에서 어머니가 벗어날 때는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죽음을 눈앞에 둔 때였다. 무엇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컸을 것이다. 서툰 발음으로 목사님 따라 ‘아멘’ 하신 어머니는 그때야 ‘하나님’을 받아들이신 것이다.
알밤이 떨어지던 가을이 다시 돌아오고 어머니의 기일, 큰아들 집에서 차린 제사상에서 “삽시정저한 음식을 드실까, 주님이 챙겨주는 말씀을 드실까”에서 알 수 있듯이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은 없다. 병아리 부화에서 ‘곤달걀’이 나오듯 쌀쌀한 길목에 모로 서서 우왕좌왕하고 계시지는 않는지 딸은 염려한다.
생전에 순간순간 온전한 정신 돌아오면 로뎀나무 숯불처럼 끈질긴 아들 생각에 대문을 향하시던 아들 사랑이 극진한 어머니였다.
척박한 사막의 구릉이나 암석지대에 높이 2~3m의 관목으로 자라는 대싸리 모양의 로뎀나무는 팔레스타인 사해 부근에 자생한다. 그늘이 없는 사막에서 그나마 그늘이 되어주는 소중한 나무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타는 숯은 로뎀나무 뿌리로 만든 숯이다. “초막절에 로뎀나무 숯불이 타는 것을 보고 간 사람이 유월절에 돌아왔는데 그 숯불이 여전히 타고 있었다.” 는 탈무드에 나오는 속담도 있다. 뿌리에 숯불을 피우고 부지깽이로 뒤집어 보면 여전히 불씨가 남아있는데 족히 사흘을 탄다고 한다.
쉽게 꺼지지 않는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로뎀나무 숯불’처럼 끈질기다. 아들을 찾아가는 기억은 흐려지고 잠시 머무는 딸의 집에서 얼결에 접한 믿음이지만 주님은 이유나 과정은 묻지 않고 그 나라 백성으로 받아 주셨으리라 시인은 믿고 싶다.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편애를 통해 그 당시의 ‘남아선호 사상’을 짐작할 수가 있다.
- 마경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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