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런드 러셀 자서전 표지에 있는 문구입니다.
얼핏 보면 과장뿐인 헛소리, 자의식의 과잉에서 나오는 편집증적인 말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말이 나온 배경을 알게 되면 진실로 러셀이라는 인물이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 알 수 있죠.
궁금하신가요?
그렇다면 당신도 학자의 기질이 있습니다. 재미를 위해 빙 둘러서 말씀을 드리죠.
'화창한 6월의 어느 날, 나는 순간순간을 마음껏 즐겼는데, 저녁 무렵에 윌리엄 할아버지가 펨브로크 로지에 오셨다. 내가 밤 인사를 해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그분이 내게 엄숙하게 말씀하셨다.
"즐거움을 누리는 인간의 능력은 해가 갈수록 줄어든다. 너도 지금은 저무는 하루를 즐기고 있지만, 오늘 같은 여름날의 즐거움은 두 번 다시 맛보지 못할 것이다"라고.
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려버렸고 잠자리에 든 후에도 오랫동안 훌쩍거렸다. 그러나 그분의 말이 잔인했을 뿐 아니라 진실도 아니었다는 것을 그후의 경험이 내게 가르쳐주었다.'
자서전의 유년기에 나오는 부분이죠. 이 부분을 기억하면서 전체를 읽다 보면, 그가 어떤 자세로 평생을 살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당연하게도 이후에 직접적으로 저 부분을 다시 언급하면서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의 행적이 그런 종류의 답을 찾아가는 모습을 드러낼 뿐이죠.
러셀은 귀족(백작)가문에서 태어나서 일찍 부모님을 잃고 조부모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어려서부터 수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그는 학자의 길을 택해서 나아가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생활하면서 그는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고 교제의 폭을 넓히면서 학문에도 파고들죠. 흔히 알만한 그의 친구(?)라면 경제학자 케인즈 정도가 나오는군요. 나중에 나이가 들면서는 조지프 콘레드나 아인슈타인과도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되죠. (피츠제럴드도 나오긴 하지만, F.Z 피츠제럴드인지 다른 인물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ㅡ_ㅡ)
러셀은 평생 3번의 결혼을 하는데, 중간에 몇 번 사랑을 했지만 결혼에 이르지 못한 여인들도 있습니다. 이건 어떻게 보면 난봉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자서전을 다 보기 전에는 그런 판단은 미루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양 철학사를 보면 버트런드 러셀이 '수리 철학'을 가지고 등장하기도 합니다.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러셀이 어렸을 적부터 갖고 있던 삶에 대한 탐구적인 자세와 진실을 추구하려는 학자의 자세가 어우러져서 그런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았나 합니다.
네.. 끝까지 진실을 추구하려는 자세. 제가 보기엔 그것이 바로 러셀의 가장 중심이 되는 모습이었습니다. 진실을 추구하고, 알게 된 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그의 삶이었죠. 그가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학자로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고, 정치에 나서기도 하며, 이후에는 반핵 운동을 줄기차게 펼친 것 역시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에 따라 행동하는 현실참여적인 자세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 보면 짧은 생각으로 무모한 행동에 나선 경우도 있었지만, 그의 신념과 행동력은 그런 실수를 덮을 수 있을 것 같군요.
그가 3번을 결혼한 것 역시 같은 관점에서 보면 납득할 수 있는 것이죠. 진실을 추구하고, 알게 된 대로 행동하는 것(어쩌면 결혼이란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현을 막아서 사회를 유지하게 만드는 수단일 뿐일지도 모르죠. 이건 아나키즘인가?).
첫머리의 저 문구는 러셀이 그의 형에게 보낸 편지 속에 있는 문장입니다. 아마도(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1차대전, 혹은 2차대전 중이었던 걸로 생각하는데요, 저것만큼 극단적으로 삶에 대한 그의 자세를 드러내는 말이 없죠.
"거짓과 더불어 제정신으로 사느니"라는 말은 자신이 이제까지 살던 세계를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서전 초반에 그는 빅토리아시대에 대한 환멸을 자주 드러내죠. 기존의 것들에 안주하고 관성으로 살아가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것들이 존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답답해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대전이 벌어지면서 그런 관성이 깨어지고 사람들이 전에는 속에 감추고 있던 욕구를 있는 그대로 드러냅니다. 사람의 진실이라는 게 얼마나 허울 좋은 것인가가 밝혀지죠.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쪽을 택하고 싶습니다."
한없이 잔혹하고 견디기 힘들지만 - 마치 '매트릭스'의 네오가 현실의 실체를 알게된 것과도 같지만, 다시 사이퍼처럼 매트릭스에서 안주하려 하지 않고 현실과 맞서는 - 진실을 추구하려는 그의 모습에.. 경의를 표합니다.
To Edith
Through the long years
I sought peace
I found ecstasy, I found anguish,
I found madness,
I found loneliness,
I found the solitary pain
that gnaws the heart,
But peace I did not find.
Now, old & near my end,
I have known you,
And, knowing you,
I have found both ecstasy & peace
I know rest
After so many lonely years.
I know what life & love may be.
Now, if I sleep
I shall sleep fulfilled.
첫댓글 버드런트 러셀 참 글을 아름답게 쓰는 사람이죠.
호오~ 보고 싶네요. 추천 감사합니다.
러셀,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