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삽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역시나’로 끝나지요. 기대했던 대로 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기대를 버리지 않습니다. 마치 희망과도 같으니까요. 희망은 좋은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절망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라면 희망은 삶으로 인도하는 치료제이기도 하니까요. 한번 두 번 ‘혹시나’가 ‘역시나’로 끝난다 할지라도 우리는 자주 빠져도 됩니다. 돈 드는 일도 아닌데 뭐라 할 것도 없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죽느니 사는 것이 낫다 그 말입니다. 죽은 사자보다 산 개가 낫다고도 하지요. 일단 그냥 사는 겁니다. 살다보면 속된 말로 해 뜨는 날도 있게 마련입니다. 소위 쥐구멍에도 해 뜨는 날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은 어떻게 찾아오는 걸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그래서 사랑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지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니까요. 사람이 다르듯 사랑도 다릅니다. 때마다 사람마다 색깔이 다릅니다. 내가 경험한 것과 또 다릅니다. 그래서 흥미가 생깁니다. 아기자기하기도 하고 속이 타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등등, 하는 이야기마다 다릅니다. 사람이 살아오며 언제 어디서나 일어났던 이야기들입니다. 그럼에도 다릅니다. 그래서 항상 흥미가 있습니다. 소설 드라마 영화 모두가 그래서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망하지 않습니다. 끝나지 않습니다. 이 땅에 사람이 사는 동안 계속 이어갈 것입니다.
함께 자라면서 자연스레 좋아하다 사랑하고 그리워하면서 날을 기다렸는데 그냥 떠나갔습니다. 얼마나 상처가 컸을까요? 그런데 상대방이 그런 사정을 몰랐을까요? 그렇게 쑥맥이었을까요? 아무튼 다른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했는데 바라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마음 고생하다 그만 사고를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감옥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친지들에게는 고국에 돌아갔다고 둘러댔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7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얼마나 서로 보고 싶었을까요? 오빠의 보증으로 사흘 휴가를 받습니다. 위치추적 핸드폰을 가지고 잠시 감옥을 나옵니다. 그리고 고속버스에 오릅니다.
한 동양인 남자가 막 떠나려던 버스를 세우더니 올라탑니다. 그런데 이 남자 버스비도 없나봅니다. 운전기사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 하더니 ‘애나’에게로 다가옵니다. 다짜고짜 버스비 반에 해당하는 만큼을 빌려 달라 합니다. 언제 봤다고?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또 언제 만날지도 모를 사람입니다. 자기는 사흘 안에 돌아와야 합니다. 되돌려 받을 시간이나 있을까요? 아무튼 그리 나쁜 인상 같지는 않은데 어쩌지요? 버티고 서 있는데, 그리고 버스는 어서 떠나야 하는데, 다른 손님들이 기다리는데, 애나는 백을 뒤져 돈을 꺼내줍니다. 일단 버스는 출발하고 남자는 자기 건너편 자리로 와서 앉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인사해도 받지 않습니다.
휴게소를 지나더니 자기 옆자리로 와서 앉습니다. 그리고는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줍니다. 자기에게는 귀한 거라고 돈을 갚을 때 되돌려 달라고 하면서. 안 받겠다고 해도 손목에 채워줍니다. 아무튼 목적지까지 옵니다. 그리고 헤어집니다. 전화번호 달라고 합니다. 없습니다. 자기 명함을 줍니다. 헤어지고 오는 길에 휴지통에 버립니다. 만날 기회도 없으려니 생각했을 것입니다. 돈은 처음부터 되돌려 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겨우 사흘의 여유 가지고 다른 사람 생각할 틈도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 장례식 때문에 잠깐 휴가를 나와서 곧 감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포기하려니 생각했겠지요. 그런데 장례식장에 찾아옵니다.
그 하루 중 잠간의 시간을 데이트합니다. 묘한 기지로 이름을 밝히게 만듭니다. 애나와 ‘훈’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둘이서 놀이동산도 들러 즐거운(?) 시간도 가집니다. 나와 같이 잘래요? 갑작스런 애나의 제안에 놀라지만 뭐 거절할 이유도 없지요. 그래서 훈의 숙소로 함께 갑니다. 그러나 둘이 사랑을 나누지는 않습니다. 애나가 갑자기 물리칩니다. 그러려니 하고 훈도 물러섭니다. 그리고 다음 날 헤어질 시간입니다. 이별의 인사를 하고 애나는 버스에 오릅니다. 그리고 떠나는데 자기 자리 옆으로 훈이 옵니다. 그렇게 동행을 합니다. 그리고 휴게소에 들릅니다. 사정이 있어 조금 시간의 여유를 가지며 여기저기 돌아봅니다. 비로소 깊은 키스도 나눕니다.
그런데 조금 후 갑자기 훈이 사라집니다. 아무리 찾아도 아무리 둘러보아도 훈이 없습니다. 나오는 날 우리 여기서 만날까요? 하고 말해주던 훈이 보이지 않습니다. 무슨 일? 아무튼 애나는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2년 후 애나는 출소합니다. 오는 길에 바로 그 휴게소에 들릅니다. 차 한 잔 앞에 놓고 창밖을 응시합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서는 ‘혹시나’가 ‘역시나’로 끝났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혼자서 말해봅니다. 참 오랜만이네요. 사랑은 그림자처럼 왔다가 안개처럼 사라졌습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날 가능성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추억 속에 머물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영화 ‘만추’(Late Autumn)을 보았습니다. 2011년 작품입니다. 애나 역의 ‘탕웨이’ 표정이 일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