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 구긴 中 ‘반도체 굴기’… “최근 3년 6개 프로젝트 실패”
WSJ “정부지원금 등 23억달러 투입… 칩 생산 못한채 폐업-영업중단”
선봉장 칭화유니 파산, 국유화 추진
자급률 17%… 美제재로 더 하락
중국이 세계 수위를 다투는 한국과 대만 반도체 기업을 따라잡기 위해 최근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2018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반도체를 사람 심장에 비유하며 ‘반도체 굴기(굴起)’를 선언했지만,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해 자급률을 높이겠다는 계획이 사실상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 기업 발표와 중국 관영매체 보도, 지방정부 문서 등을 분석한 결과 중국에서 최근 3년간 적어도 6개 반도체 제조 프로젝트가 실패했다고 전했다. 이들 프로젝트에는 최소 23억 달러가 투입됐는데 대부분 정부 지원금이었다. 이 같은 투자에도 일부 기업은 반도체 칩 하나도 만들지 못했다.
대표적 실패 사례는 허베이성 우한의 훙신반도체제조(HSMC)와 산둥성 지난시에 있는 취안신집적회로(QXIC)다. 두 회사는 삼성전자와 대만 TSMC가 지배하는 14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제품 생산을 목표로 했다. 이를 달성하고 몇 년 후 최첨단 7nm 제품도 개발한다는 포부였다. 이를 위해 HSMC와 QXIC는 대만 TSMC 출신 임원과 엔지니어들을 거액의 연봉으로 스카우트했다. 하지만 두 기업은 지금까지 상업용 칩을 생산하지 못하고 투자금을 날렸다. HSMC는 지난해 6월 문을 닫았고 QXIC는 영업을 중단했다.
반도체 굴기 선봉장으로 주목받던 칭화유니(淸華紫光)그룹도 공격적 인수합병과 과도한 투자로 부채만 쌓다가 2020년 10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지난해 말 채권단은 파산구조조정안을 통과시켜 칭화유니그룹은 사실상 국유화의 길에 들어섰다.
중국 반도체 프로젝트 실패는 연구개발 투자는 물론이고 관련 기술 축적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QXIC는 반도체 칩 생산기술은 확보했지만 이를 통합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고 전 직원은 밝혔다. 기술 개발에 계속 실패하자 지난시 정부는 QXIC를 인수하고 직원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HSMC 프로젝트는 첨단 반도체 생산자금 부족이 발목을 잡았다. WSJ에 따르면 중국 반도체 자급률은 17%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프로세서 등에 들어가는 최첨단 칩 개발 능력은 미국 제재로 더 떨어졌다. ‘2025년 자급률 70%’ 목표 달성은 요원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일본은 반도체 등 중국 첨단기술 산업에 대한 새 규제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10일 미일 정부가 반도체 제조장치, 양자암호,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의 중국 수출을 규제하는 새로운 다국 간 협의체 구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냉전시대 옛 소련 등 공산권에 대한 서방 국가의 기술 유출을 막은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코콤)의 현대판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베이징=김기용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