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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박주영 신드롬과 함께 박주영에게는 축구천재라는 별명이 붙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박주영은 스스로 축구천재라고 생각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사진 김재현) |
FC 서울과 대전 시티즌의 경기가 열린 5월 18일 대전월드컵경기장. 한국프로축구 사상 처음으로 200승 신화를 쓴 김호(64) 대전 감독을 축하하기 위해 1만3,726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4만 명을 넘게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이라 빈 자리가 눈에 많이 띄었지만 축구 팬들의 시선을 그라운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한 대전월드컵경기장의 효용성은 이날도 여지없이 빛을 발했다.
축구천재로 불리는 박주영(23,서울)이 경기 초반 분위기를 달궜다. 4-4-2 전형을 쓴 서울의 왼쪽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한 박주영이 전반 4분 이청용(20)과 2대1 패스를 주고받으며 대전의 오른쪽 수비진영을 허물었다.
박주영의 움직임은 효과적이고 위협적이었다. 골키퍼와 맞선 박주영의 오른발 슈팅이 대전의 왼쪽 골대를 맞고 튕겨 나왔다. 박주영은 순간 하늘을 쳐다보며 “아”하는 탄식을 했다.
1분 뒤 대전의 반격이 펼쳐졌다. 역습 기회에서 외국인선수 에드손(28)의 패스를 받은 고종수(30)가 페널티지역 왼쪽 외곽에서 기습적인 왼발 슈팅을 날렸다.
고종수의 슈팅은 서울 김병지(38)골키퍼의 정면을 향했다. 득점 기회를 놓친 고종수가 씩 웃는다.
이날 경기를 중계한 이용수
해설위원의 한마디가 이어졌다. “1990년대 축구천재 고종수 선수와 2000년대 축구천재 박주영 선수가 득점 기회를 한 번씩 주고받았습니다.”
등장
2004년 박주영이 등장했을 때 축구계는 천재의 등장에 목말라 했다. 정윤수 문화평론가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히딩크호가 축구 강호들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조직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개인과 개인의 대결에서는 한국은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눈높이가 높아진 언론과 팬들은 세계 4강에 오른 나라에서 세계 4위급 선수의 탄생을 기대하게 됐다. 그런데 2004년 즈음에 대표팀의 경기력은 실망스러웠다. 그때 19살의 박주영이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2005년의 박주영은 축구천재다웠다. 2004년 10월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19세 이하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6골을 넣었고 석 달 뒤 카타르 8개국초청대회에서는 9골을 터뜨렸다. 박주영이 두 대회에서 15골을 넣는 동안 뛴 경기는 10경기였다.
축구 팬들은 박주영의 플레이 스타일에 더욱 열광했다. 박주영은 세련된 플레이를 했다.
투박하고 거친 일반적인 한국선수와 달랐다. 오른발과 왼발을 자유롭게 사용했고 머리로도 적지 않은 골을 넣었다. 개인기와 스피드로 상대 수비를 따돌렸다. 영리한 두뇌플레이가 돋보였다.
군더더기 없는 문전 플레이로 높은 골 결정력을 자랑했다. 프리킥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2005년 FC 서울에 입단한 박주영은 컵대회를 포함해 30경기를 뛰며 18골을 쓸어 담았다. 신인왕은 떼 놓은 당상이었다.
2005년 여름 울산 현대에 복귀한 이천수(27,페예노르트)와 MVP(최우수선수)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해 서울이 K리그 우승을 차지했다면 박주영은 한국프로축구 사상 처음으로 신인왕과 MVP를 석권하는 선수가 될 수 있었다.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던 국가대표팀에 박주영을 뽑는 문제를 놓고 축구계가 논란을 벌였다.
박주영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그의 청구고 시절 활약상을 재조명하는 현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
박주영 신드롬’은 2005년 한국축구계를 강타했다. 박주영은 어느새 ‘축구천재’가 돼 있었다.
정윤수 문화평론가는 “어느 나라에나 축구천재는 있다. 그리고 이런 축구천재는 축구계의 동향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배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울산에서 은퇴한 노정윤은 “(박)주영이를 처음 본 것은 주영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다. 드리블을 하는데 균형이 잘 잡혔다는 생각을 했다. 잘 성장하면 큰 선수가 될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그렇지만 주영이가 축구천재라는 생각은 한번도 안 해봤다. 만약 축구천재가 개인기가 뛰어난 유망주를 말하는 것이라면 한국은 학원축구의 억압적인 분위기를 바꾸지 않는 한 축구천재의 탄생을 기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박주영은 5월 22일 SPORTS2.0과 인터뷰에서 “내 입으로 내가 축구천재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리고 내가 축구천재라고 생각해 본 적도 단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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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은 2006년 독일월드컵이 끝난 뒤 시련을 겪었다.(사진 김수홍) |
축구천재라고 불린 선수들은 노력을 게을리 하는 경우가 꽤 많다. 지나친 자신감 때문인지 훈련을 소홀히 하고 결국 재능을 꽃 피우기도 전에 쓸쓸히 무대에서 내려온다.
울산의 김정남(65) 감독은 “축구천재들도 다른 분야의 천재들과 비슷하다. 관리가 소홀하면 게을러지고 생활 리듬이 깨진다. 훈련을 가볍게 보기 시작하고 그러다가 아예 운동을 멀리 하게 된다. 그러면서 서서히 망가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고 보면 박주영은 노력파에 가깝다. 박주영은 K리그에 데뷔한 뒤 줄곧 따라다녔던 몸싸움에 약하다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 지난 겨울 훈련량을 부쩍 늘렸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팀 동료들과 휴가도 반납한 채 훈련장인 경기도 구리시 챔피언스파크를 매일 찾다시피 했다. 텅 빈 그라운드를 뛰었고 웨이트트레이닝의 강도도 높였다.
강훈련의 결과 70kg이 조금 넘던 몸무게가 시즌 개막을 앞두고 78kg으로 늘었다. 박주영은 몸싸움에 자신감이 붙었다.
김병지는 “(박)주영이가 축구천재라면 여느 천재와는 다르다. 훈련에 소홀한 주영이를 이제껏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중국 충칭에서 열린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허정무(53) 감독은 파주NFC(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서 국내파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꾸려 소집 훈련을 했다.
대표팀의 점진적인 변화가 예고된 가운데 새로운 프리키커가 누가 될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네덜란드 페예노르트로 이적한 ‘프리킥의 달인’ 이천수는 동아시아대회 출전 명단에서 빠졌다.
박주영이 허정무호의 새로운 프리키커 자리에 욕심을 냈다. 팀 훈련이 끝나면 서둘러 숙소로 향하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박주영은 해가 질 때까지 그라운드에 남아 프리킥 훈련을 했다.
한국이 3-2로 이긴 2월 17일 중국전 후반 20분에 터진 박주영의 동점 프리킥 골은 이같은 노력의 결과다.
한 가지 일화가 더 있다. 지난해 1월 8일 서울의 사령탑으로 내정된 터키 출신 세뇰 귀네슈(56) 감독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축구는 쇼(Show)”라며 취임 일성을 터뜨린 귀네슈 감독이 2007년 시즌 서울의 전력에 대해 얘기하면서 “터키에 있으면서 DVD로 서울의 모든 경기를 봤는데 균형 감각이 뛰어난 박주영을 왜 교체 멤버로 활용했는지 의아하게 생각했다. 서울에 와서야 구단 관계자에게 자세한 내막을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귀네슈 감독의 말대로 박주영은 2006년 독일월드컵이 끝난 뒤 후반 교체멤버로 뛴 경기가 부쩍 늘었다.
2006년 시즌 컵대회를 포함해 30경기에 출전해 8골 1도움을 올렸는데 14경기에서 교체로 뛰었다.
출전 시간이 줄자 공격포인트를 올릴 기회도 부족했다. 여기저기서 “박주영이 슬럼프에 빠졌다”는 얘기가 쏟아졌다.
그런데 박주영이 이장수(52) 전 서울 감독의 합숙 지시를 따르지 않아 독일월드컵이 끝난 직후 선발명단에서 제외됐다는 얘기가 돌았다. 한마디로 미운 털이 박혔다는 얘기다.
박주영은 “(2006년 시즌에는)출전 기회가 줄었지만 언제라도 경기에 나가면 골을 넣을 수 있게끔 몸 상태를 유지했다. 주위에서 우려했던 슬럼프는 아니었다”며 2년 전 기억을 떠올렸다.
도전
박주영의 올 시즌 활약을 놓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박주영은 지난 시즌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뛰지 못하면서도 14경기에서 6골 5도움의 공격포인트를 올렸다.
올 시즌에는 5월 23일 현재 컵대회를 포함해 12경기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골대만 세 번을 맞췄다.
4월 2일과 13일 열린 수원 삼성과 치른 두 경기에서 모두 골대를 맞췄고 공교롭게도 서울은 모두 패배를 맛봐야 했다. 5월 18일 대전전에서 세 번째로 골대를 때렸으니 골대 징크스 얘기가 나올 만하다.
예전보다 골 결정력이 떨어졌다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최전방 공격수와 왼쪽 미드필더로 번갈아 가며 뛰고 있어 득점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반박할 만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데얀(27), 김은중(29), 정조국(24), 심우연(23), 이승렬(19) 등 공격수가 많은 팀 사정으로 박주영이 왼쪽 미드필더로 투입되는 경우가 꽤 있지만 그렇다고 공격적인 색깔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박주영은 왼쪽에 있으면서도 데얀과 위치를 바꿔 중앙 돌파를 시도한다. 오른쪽까지 활동 반경을 넓혀 이청용과 협력 플레이를 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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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은 축구천재보다 노력파에 가깝다.(사진 김재현) |
박주영은 “골이 생각처럼 터지지 않고 있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전에 비해 경기력이 훨씬 좋아졌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실제로 득점력이 떨어진 것을 빼면 모든 면에서 향상됐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수비 뒷공간을 파고드는 움직임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분석이다.
이영진 서울 코치는 “(박)주영이가 워낙 낙천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만 지난해 부상으로 적지 않게 속앓이를 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올 시즌 육체적으로 훨씬 좋아졌다.
힘이 붙었고 순간 가속도가 빨라졌다. 그러다 보니 볼 관리를 잘 하고 수비 뒷공간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골 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 경기마다 두세 차례씩 득점 기회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늘어난 슈팅수가 달라진 박주영을 설명하고 있다. 압박이 심해 슈팅 기회가 좀체 나지 않는 K리그에서는 공격수의 능력을 재는 잣대의 하나로 슈팅수도 의미가 있다.
박주영은 올 시즌 34차례의 슈팅을 시도했다. 2006년에는 30경기에서 44개의 슈팅을 했고 지난해에는 14경기에서 30개의 슈팅밖에 하지 못했다.
박주영이 현재 페이스대로 정규리그와 컵대회의 남은 경기를 치르면 올 시즌 94개의 슈팅을 해 82개를 기록했던 2005년 시즌 기록을 넘게 된다.
박주영은 “많이 움직이다 보니까 슈팅 기회도 많이 생기는 것 같다. 지난해까지는 완벽한 득점 기회가 아니면 슈팅을 아끼려고 했는데 올 시즌 분위기를 바꿔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보다 과감한 플레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슈팅만 그런 게 아니고 이제는 모든 면에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부딪히려고 한다”고 말했다.
투영
대전을 상대로 시즌 3호 골을 노렸던 박주영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박주영은 5월 18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전과 경기에서 득점 없이 후반 36분 교체돼 나왔다.
서울은 박주영이 나오기 전까지 1-0으로 앞서고 있었다. 전반 41분 김진규(23)가 오른쪽에서 길게 띄운 공을 김은중이 떨어뜨리자 데얀이 아크 오른쪽으로 달려들며 감각적인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서울이 1승을 추가하는 듯 했다.
그런데 전광판 시계가 후반 44분을 가리킬 무렵 부영태(23)의 패스를 받은 고종수가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기습적인 왼발 슈팅을 날렸다.
고종수의 발을 떠난 공은 반대쪽 골포스트를 향했다. 공은 다이빙을 하며 두 손을 쭉 뻗은 김병지 골키퍼를 스치고 지나가 오른쪽 골대 밑을 때리며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박주영과 같이 골대를 때린 슈팅이었지만 고종수에게는 행운이 따랐다. 드라마틱한 동점골에 격렬한 골 뒤풀이를 선보인 고종수는 쥐가 나는 바람에 그라운드에 쓰러졌고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이날 경기는 1-1로 끝났다. 1990년대 축구천재 고종수가 2000년대 축구천재 박주영에게 판정승을 거뒀다.
고종수는 경기가 끝난 뒤 “김호 감독님의 200승을 축하하는 잔칫상을 차려놓고 안방에서 서울에게 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전반전이 끝난 뒤 라커룸에서 후배들을 독려했고 나 또한 경기가 끝날 때까지 죽기 살기로 뛰었다”고 말했다.
후반 36분 교체된 박주영은 고종수의 동점골 장면을 보지 못했다. 보지 못했으니 알지도 못했다.
박주영은 “라커룸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경기가 끝나고 돌아오는 동료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물으니 경기 막판에 동점골을 내줬다고 했다. 이길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상대팀이긴 하지만 (고)종수형의 동점골은 그만큼 극적이었다”고 말했다.
고종수는 한때 ‘게으른 천재’로 불렸다. 한때 훈련을 게을리 했고 적지 않은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고종수의 개성을 받아들이는 지도자는 많지 않았다. 축구를 하고 싶었으나 여건이 안 돼 경기장 주위를 겉돌아야 했다. 운도 따르지 않았다.
고종수는 부상으로 2002년 한일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면서 큰 상처를 받았다. ‘게으른 천재’ 또는 ‘비운의 천재’로 불리는 고종수를 박주영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박주영은 “(고)종수 형과 특별한 친분이 있지는 않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에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박주영은 축구선수 고종수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경기장에서 만난 (고)종수 형은 공을 다루는 기술과 감각이 뛰어났다. 이런 능력을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동안 운동을 쉬었는데도 그런 감각적인 패스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노력을 한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한 가지 기술을 선보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흘리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SPORTS2.0 제 105호(발행일 6월 2일) 기사
김덕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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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박주영 보면 볼수록 참 진국임...속깊고 사려깊고 말한마디를 해도 신중하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 말처럼 진짜 노력파! 언젠가는 꼭 성공할것임!!
제목에 낚일뻔했지만 좋은 기사네요~박주영 화이팅~~!!!
박주영같은스타일은, 예를들어 맨유 같은 최고의 팀에 갔을때 정말 폭팔할것같음...하지만 그런팀에 가기위해선, 엄청난 활약을 해야하는데, 이를 받쳐줄
우리나라에선 천재 맞다 해외나가서도 꿀릴것도 없고
발끈해서 들어왔다 ㅋㅋㅋㅋ
222 나두 ㅋㅋㅋㅋ
3333ㅋㅋㅋ
웨이트를 더 키워서 몸빵이 되어라
이 기사의 요점은 박주영은 천재고뭐고 그 이전에 엄청난 노력파다!!라는 말!
222222222222222
주영군. 세레모니는 정말 재미없지만 정말 보고싶어.
왜요~ 성남전엔 제일 먼저 수호신한테 달려가던데~~~ ㅎㅎ
그래도 올스타전 같은 경기에서는 박주영 세레모니가 제일 재밌어요 ㅋㅋ
아이 트러스트 유 ...... 그날 경기는 흑흑 ......
ㅇㅇ천재
ㅋㅋㅋㅋ 네이버에서는 사람들이 다 기자욕하던데
기사 내용은 안읽고 제목만 읽더군요
김덕중 기자 사람낚는법을 좀 알아..ㅎㅎ
"박주영, 정말 축구 천재인가" 내용에, "아니다." 라고만 써있으면 정말 참신한 낚시가 됐을 듯... 흠... 하지만 박주영은 잘 하지요.
기사제목이 애매모호하네;; 정말 축구천재아냐?이런뉘앙스로도 들리고 쟤가 정말 축구천재맞나? 이렇게도들리고
그냥 관심끌기용 낚시죠 ...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듯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