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민수기 9 : 25-23)
민수기 9장 15-23절에서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라는 표현이 6회나 반복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요구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훈련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 광야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훈련시키신 기간은 40년이었습니다.
출애굽한 사람들은 광야에서 지내던 40년 동안 거의 다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40년은 성인이 된 사람들의 평생입니다. 하나님은 평생토록 훈련을 받게 하셨습니다. 의식과 생활습관이 하나님의 백성다워지는 데는 이 기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인생은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광야’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광야는 넓은 들입니다. 그곳은 물이 없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입니다. 사람을 찾을 수 없는 곳입니다. 황폐한 곳입니다. 고독하고 외로운 곳입니다. 나무가 없습니다. 쉴 곳이 없습니다. 그런 삭막한 곳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인생은 그런 곳을 지나가는 나그네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광야훈련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광야의 훈련에서 낙오자가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광야는 우리를 죽이는 곳이 아닙니다. 더리어 우리를 강하게 하고 우리는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인 것입니다. (신 8:1-10)
예수님도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며 그 동안 사탄의 시험을 받으시고 승리하시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이루셨던 곳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먼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간 훈련을 받았습니다.(갈 1:17-18)그렇습니다. 광야는 단순한 들이 아닙니다. 시험의 장소 훈련의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들을 연단하여 사용하시기 위해 먼저 광야 훈련장으로 보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훈련장으로 들어가도록 하실까요?
1. 광야는 순종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훈련장입니다.
(신 8:1)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신 8:1)
하나님은 간혹 순종을 시험하십니다. 그 시험에 합격된 자가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은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 8:16)“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신 8:2)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아들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지 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를 시험하시고 계실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이 얼마나 순수하고 진실한지를 보시기 위함입니다. 마귀는 자기의 권위와 이익을 나타내기 위해서 우리에게 절대복종을 요구하지만 우리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기 위해서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순종하는 이들에게 역사하십니다. 광야훈련장에서 고난 과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불평이나 원망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민수기 11장에서 보면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리들이 집단으로 모세를 향해 원망하기를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틈만 나면 원망을 했습니다. 결국 멸망을 받게 된 것입니다. (고전 10:10)
2. 광야는 겸손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훈련장입니다.
(신 8:16) 광야는 자신의 힘으로 어떤 일을 했다고 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장소입니다. 광야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고서는 불가능 한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불신앙과 불순종의 삶을 경건한 삶으로, 순종과 감사의 삶으로, 교만을 겸손으로 바꾸시기 위해서, 낮추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광야 생활의 고난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이 교만한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겸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기 위해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신 8:2)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신 8:16) 교만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 잘된 줄 아는 것이고, 겸손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고, 하나님을 잊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감사할 줄 아는 것입니다.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신 8:14)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신 8:12-13) 사람은 뭔가 잘되고 형통하고 풍부할 때, 하나님을 잊어버리기가 쉽습니다.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신 8:17) 자기가 잘나서 잘된 줄로 생각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내가 잘나서 잘된 줄 알고 교만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신 8:18)하나님의 은혜로 형통하게 된 줄로 알고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로 너무나 고생했기 때문에 속히 저들에게 안정된 땅과 집을 주고 농사를 짓게 해서 편안한 나날을 보내게 할 수 있습니다. 당장 가나안을 주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만해 질 수 있기 때문에 겸손의 훈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이 중요합니다.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정착 생활 하지 않고 광야의 행진을 계속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끊임없는 광야의 삶이 계속된다면 믿음의 눈을 떠서 하나님의 그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광야 훈련의 강도가 크면 클수록 하나님의 돌보심과 역사하심은 더욱 큽니다.
3. 광야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드시는 훈련장입니다.
(신 8:3) 광야는 아무 것도 없는 곳입니다. 광야는 농사도 지을 수 없는 곳, 목축도 할 수 없는 곳 의식주조차도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희망이 조금도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사십 년 동안이나 그곳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광야 훈련장에서 하나님은 먹이시고 입히셨습니다.
하나님은 40년 동안 그들의 의복이 해어지지 않게 하셨고, 그들의 발이 부릍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광야에서 우리 인생의 주인, 목자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광야 훈련장에서 우리가 할 일은 자기 자신을 의지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의지하는 것입니다. 가장 어리석은 것은 자기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만 그렇습니다. 전적으로 의지하게 만드시기 위해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사람이 떡으로만 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존재임을 아는 사람은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광야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듭니다.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의 쓴물로 모세를 원망 할 때 모세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 때 눈이 열려 한 나무를 발견했습니다. 그 나무를 쓴 물에 던지니 물이 달았습니다.
광야는 우리로 답답하여 기도하게 하시고 기도하다가 눈이 열리게 하시고 눈이 열려 십자가를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발견한 사람들에게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인생의 질병도, 인생의 모든 문제도 쓴물이 단물로 변하게 하십니다. 광야 훈련에서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날마다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광야는 하나님에 사람의 훈련장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재미있는 훈련이란 없습니다. 어떤 훈련도 힘듭니다. 하나님의 훈련은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시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강한 하나님의 사람들이도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해 내셨습니다. 여러 가지 이적을 보이시며 하나님이 바로보다 강한 분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보지도 못했습니다.
이집트에서 사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오직 바로의 종으로 사는 데만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바로의 명령에 복종하고, 바로를 위해 일하는 것이 삶의 원칙이요, 목적이었습니다. 이집트를 떠나지 않으면, 이스라엘의 의식에 자리 잡은 노예근성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다워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어 광야에서 생활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집트가 아니고 바로가 없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기하기 위해 광야훈련을 결정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광야에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과 함께 행진 하는 것입니다.
민수기 9장 15-23절에서 행진이라는 단어가 9번이나 나옵니다.
광야를 통과 하기위해서는 하나님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다라 행진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광야에서 움직여야 살아남을 수 있고 광야 훈련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광야의 훈련장입니다. 상황과 배경만 다를 뿐 우리는 수많은 광야의 훈련을 받으며 평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광야의 훈련 후 정금 같은 믿음으로 나아올 수 있다면 모든 고난이 결코 헛되지 않아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복되게 할 뿐만 아니라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하늘의 상과 면류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벧전 1:6-7)
명심하십시오. 광야는 하나님이 준비한 훈련 장소입니다.(행 7:23-29)
모세는 40세에 애굽의 왕자가 지닌 힘으로 민족의 고난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살인죄를 범한 채 미디안으로 도주합니다. 이는 모세가 참다운 구원자가 되기 위해서는 애굽이라는 배경에서 왕자의 신분이 아니라 거친 사막에서 나그네 신분으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가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록 애굽에서 위대한 왕자로 또는 장군으로 정치적 훈련과 군사적 훈련을 잘 받았지만, 아직 하나님을 아는 일에는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광야에서 이 훈련을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도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훈련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광야로 이끄실 때가 있습니다. 혹시 험하고 어려운 삶의 길에 있다면 이것을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광야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여호와의 입"을 보는 것입니다. 그 분이 무어라 말씀하실 지 기다리고 기대하는 것. 모든 상황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기다릴 줄 아는 겸손함이 우리 삶에 자리잡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불기둥으로 보호 하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찾는자가 부족함이 없습니다. 오늘도 주안에서 승리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가장 좋은 때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규모가 가장 좋은 규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