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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율리아나 팔코네리아 설립자(6.19)◀
1. 가톨릭 굿 뉴-스 성인록 ▷
성인명: 율리아나 팔코네리아(Juliana Falconeria)
축일: 6월 19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설립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270-1341년
같은이름: 율리안나, 줄리아나, 쥴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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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설명 :
•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열심한 신자인 부모의 외동딸로 태어난 성녀 율리아나 팔코네리아는 마리아의 종 수도회의 설립자 중 한 사람인 숙부 알렉시우스 팔코니에리(Alexius Falconieri)와 어머니로부터 교육을 받고 성장하였다. 그녀의 부모는 피렌체에서 안눈시아타로 불릴 정도로 교회 일에 헌신적이었다. 그러나 율리아나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집안사람들은 그녀를 결혼시키려고 하였다.
그녀는 이 결혼을 완강히 거부하였다.
· 그 후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성녀 율리아나는 자신의 영적 지도자였던 필리푸스 베니티우스(Philippus Benitius)의 권유에 따라 사촌인 요안나와 필리푸스의 누이와 함께 마리아의 종 수도회의 제3회원이 되었다.
또한 이들은 함께 병자들을 돌보고 소녀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공동체를 설립하였다.
1304년에 교황 베네딕투스 11세(Benedictus XI)는 그녀가 설립한 공동체를 정식 수녀회로 허가하였다.
성녀 율리아나는 처음에는 사양하였으나 결국 초대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 사망하기 전의 얼마 동안 그녀는 위궤양으로 절실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영성체조차 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그녀의 청을 받고 한 신부가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가슴 위에 성체를 올려놓아 주었는데, 그 순간 성체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리고 1341년 6월 19일 성녀 율리아나가 사망한 후, 그녀의 살갗에 어떤 표지가 새겨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1678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Innocentius XI)는 율리아나에 대해 행해지던 공경을 정식으로 허가하였다. 그리고 1737년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는 그녀를 성인품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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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 재속프란치스코회 성인록 ▷ <6월19일 성녀 율리아나 팔코니에리 동정>
..... (안젤라 | 2010.06.17 Ud.)
▷ 축일:6월19일
< 성녀 율리아나 팔코니에리 동정 >
- St. JULIANA FALCONIERI
- Santa Giuliana Falconieri Vergine
- Born:1270 at Florence, Italy
- Died:12 June 1341 at Florence, Italy of natural causes
- Beatified:26 July 1678 by Pope Innocent XI
- Canonized:16 June 1737 by Pope Clement XII
- Giuliana = appartenente alla 'gens Julia', illustre famiglia romana, dal latino
• 플로렌스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성모의 종 수도회 창설자(Seven Founders of Servants of Mary)중의 한분인
알렉시오 팔코니에리와 어머니의 교육을 받고 성장하였다.
그녀의 부모는 플로렌스에서 안눈시아따로 불릴 정도로 교회 일에 헌신적인 분들이었다.
그러나 율리아나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집안 사람들은 그녀를 결혼시키려 하였다.
그녀는 이 결혼을 완강히 거부하고, 15세 때 성모의 종 수녀회의 3회원이 되었다.
그녀는 거의 20년 동안이나 자기 집에서 재속 수도자로서 기도와 자선활동을 하며 살았는데,
1304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4세의 율리아나는 기도와 자선활동에 헌신할 수 있는 일단의 복장을 하였으므로, "망토 수녀회"란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그녀의 수도회가 정식으로 승인받은 것은 120년 후이다.
그녀는 71세의 일기로 선종하였고, 1737년에 시성되었다.
ㅡ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ㅡ
*성 알렉시오 팔코니에리 축일:2월17일.게시판1623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 성녀 율리아나 동정녀는
성모의 종이라는 수도원의 일곱 창립자들이
플로렌스에 남자 수도원을 세웠을 때,
같은 목적하에 여자 수도원을 시작한 분이다.
그녀는 1270년 이탈리아의 귀족 팔코니에리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때까지 오랫동안 자녀를 얻지 못하던 양친은 기쁨에 넘쳐 하나의 훌륭한 성당을 세워 그리스도교에 봉헌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지금도 율리아나의 묘소로 알려져 있는 성모 영보의 성당인 것이다.
· 율리아나는 외동딸이었으므로 양친에게 금이야 옥이야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으며
교육도 특별하게 정성을 들여 교회의 정신을 따라 베풀어졌는데,
16세를 맞이하자 양친은 그녀에게 적합한 배필을 맞아 들여 가문을 계승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본래 신심이 두텁고 현세의 재물이나 쾌락을 찾는 마음이 없었던 율리아나는 일생을 예수의 배필로서
봉헌하겠다고 마음을 다해 간청했으므로 양친도 상의한 끝에 드디어 그녀의 뜻을 들어주기로 했다.
이리하여 그녀는 동정의 서원을 발해 성모의 종 수도원의 총장인 필립보 베니시오로부터
제3회원으로 입회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그후부터 율리아나는 그대로 가정에 있으면서 베니시오에게 지시 받은 규율을 따라 수도 생활에 노력해 왔는데, 1304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20년이 지났을 무렵, 같은 의사를 가지게 된 동정녀들과 함께 비로소 공동체 수도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는 언제나 자매들의 말석을 차지하려고 했으나 그들의 간청에 못 이겨 마침내 원장의 중책을 맡아 어머니로서 모든 수녀들을 돌봐주고 실천함으로써 그들에게 좋은 표양을 주고,
어떤 때는 종과 같이 행동하며 그들을 위해 힘썼다.
또한 율리아나는 성모의 종 수도회와 비슷한 복장을 했으므로 "망토 수녀회(Mantellate)"란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그녀의 수도회가 정식으로 승인 받은 것은 120년 후이다.
율리아나는 자선의 행위를 매우 존중하여 규율속에도 이를 첨가했으며 때로는
그 자신이 틈이 없을 때에는 동료 수녀를 보내 플로렌스 시의 병자를 위문했다.
고행에 대해서도 비상한 열심을 드러내 단식재를 지킴에 있어서도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은 전연 음식물을 취하지 않고 토요일에는 음식물을 아주 조금밖에 취하지 않음으로써 철저히 이를 행했다.
그리고 기도에 대해서는 회칙에 정해진 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자진해 여러 가지의 기도를 바치는 것이었다.
· 이같이 극기 수도하기를 37년, 71세의 노령에 도달한 율리아나는 위염을 앓게 되어 중태에 빠졌는데
토사가 심했으므로 영성체도 허락되지 않았으나 그녀의 뜻이 간절해 사제는 어떻게든 그녀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누워있는 그녀의 가슴에 성체포를 깔고 그 위에 지극히 거룩한 성체를 모셔 놓았다.
율리아나는 경건히 그를 조배하고 영적으로 성체의 주 예수와 일치하여 화색을 띠며 고요히 숨을 거두었다.
그것은 1341년 6월 19일의 일이었다.
후에 사람들은 성녀의 유해를 씻으려고 했을 때, 그 가슴에 뚜렷이 성체의 형제가,
거기에 그려져 있는 십자가까지도 명백히 찍혀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ㅡ (대구대교구홈에서) ㅡ
▷ 마리아의 종 수도회는 1233년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 에서
교회역사상 유일무이(唯一無二)하게 일곱명의 성인들에 의해서 설립된 수도회이다
다양한 신분을 살고있던 성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모든 것을 버리고’
예루살렘 초대 공동체 처럼 완전히 ’한 마음 한 뜻’으로 공동생활을 하면서,
성모 마리아를 주보로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에 전 생애를 바쳤다.
마리아의 종 대 수도회는 남자 수도회, 관상 수녀회, 활동 수녀회,
재속회로 구성된 10,000여명의 회원들이 전 세계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같은 영성을 살지만 창설자의 설립 목적의 차이에 있어서 수녀를 구분 짓기 위해
설립지명을 명칭에 연결시킨다.
ㅡ (마리아의 종 수녀회홈에서) ㅡ
*성모의 종 수도회 창설자 7성인 축일:2월17일.게시판1623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 청소년 상담가들은 자녀들이 잘못했을 때 부모들이 나서서 벌을 주는 것보다
자연적인 결과로 주어지는 고통을 받아들이게 하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저녁밥을 먹기 싫어하면 먹으라고 잔소리를 하고 벌을 주는 대신
배가 고픈 채 잠들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율리아나는 금욕 생활을 지나치게 한 결과 소화기에 이상이 생겨 어떤 음식도 소화시킬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금식을 시작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자기 몸을 학대한 셈이 되고 만 것이다.
율리아나는 죽을 때까지 잘못된 선택의 자연적인 결과인 고통을 받아들여야 했다.
때로 하느님은 현명한 부모처럼 우리를 양육하신다.
직접 오셔서 간섭하시기보다는 자신의 그릇된 판단과 행동으로 인해 빚어진
당연한 결과를 감수하게 하시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부모의 마음이 누그러질 때까지 졸라 대는 아이들처럼 그분께 매달리곤 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자초한 고통에서 구해 달라고 부르짖는 것보다는 아직 선택의 여지가 있을 때
지혜롭게 행동하는 것이 더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스스로 자초한 고통을 부당한 벌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가?
내가 만든 고통 속에서 구해 달라고 기도하기보다 현명한 선택을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겠다.
ㅡ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 ㅡ
♬11.A Solis Ortus Cardine-베네딕도수도원
Catholic Christmas Songs
https://youtu.be/pGLkcr-k4kw
ㅡㅡEnd.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