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서정주가 밤새워 글을 쓰다 아침을 맞았다.
지친 그가 찬술로 목 축이며 넋두리한다.
'한 수에 오만원짜리 회갑 시 써달라던/ 부자집 마누라 새삼스레 그리워라/
그런 마누라 한 열대여섯 명 줄지어 왔으면 싶어라' (찬술).
가난한 시인의 순진 솔직한 바람에 미소가 솟는다.
요즘 시인 같으면 로또를 떠올렸을 텐데, 복효근처럼.
길몽을 꾼 복효근이 로또를 사야겠다고 맘먹는다.
당첨이 되면 뭘 할까 궁리하자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려운 두 누나 짐도 지어주고/ 자동차를 마꾸고, 아내도/ 아니 아내는 이쁜 두 딸을 낳아주었으니/
남 보는 눈도 있고 하니 좀 더 생각해 볼 것이다./
직장도 바꾸고/ 물론 시도 쓰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쓰지도 못하면서 시인이라는 이름이 버겁기만 하고...'
중학교 선생님인 시인의 상상이 유쾌하되 황당하지만은 않다.
실제 당첨자가 대개 맨 먼저 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2009년 영국 '르또 백만장자' 200명을 조사했더니 84%가 큰 집으로 이사부터 했고 이어 고급차를 샀다고 했다.
ㅇ우리도 흔히 석 달 안에 차 바꾸고 살던 동네 떠난다.
당첨 사실을 숨기고 이혼하거나 애인을 차기도 한다.
라스베가스 카지노에선 잭팟 터뜨린 사람 등 뒤에서 슬그머니 해주는 말이 있다.
"오래 사세요"
우리 경마장에서도 '초짜'가 고 배당을 맞혀 대박 터뜨리는 것을 "쥐약 먹는다"고 한다.
당장에 돈벼락 맞았지만 불행의 씨앗일 수 있다는 경고다.
'로또 패가망신'은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빈털터리 돼 심하면 쇠고랑까지 차거나 목숨까지 끊는다.
5년 전 로또 역대 둘쨰로 많은 당첨금 242억원에서 세금 빼고 189억원을 받은 중년 남자가
지난주 사기 혐의로 체포됐다.
소액 주식 투자에 매달려 살던 남자는 돈을 주식에 쏟아넣었다가 3년 만에 탕진했다고 한다.
그는 당첨금 영수증을 보여주며 억대 돈을 투자받아 날린 뒤 도망 다니다 붙잡혔다.
'횡재(橫財)수가 삐끗하면 횡재(橫災)수.' 재물과 재앙은 통한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는다.
복권 사업자 나눔로또가 작년에 책을 내고 당첨자 투자 요령을 말했다.
시간을 가져라.
전문가와 상담하라.
정리하고 검토하라.
손익을 계산하라.
우선 순위를 찾아라.
돈 간수에 자신 없는 사람은 애초에 연금복권을 사는 것도 방법이겠다.
시인처럼 이것저것 바꾸는 공상 끝에 마음을 바꾸든지.
"내가 부자가 되면/ 화초에 물은 누가 줄것이며 잡초는 어떻게 하고.../ 안 되겠다/
로또를 포기하기로 했다. (로또를 포기했다") 오태진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