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백암산白巖山(순창, 장성), 741m 】 「암석이 모두 흰색을 띠어 '흰 바위'라는 이름이 붙은 산」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조선 초기 명망가 정도전 등의 자취와 한반도 내륙에서 유일한 천연기념물 비자나무 군락지, 또 다른 천연기념물 백양사 고불매, 그리고 고생창연한 누각 쌍계루, 흰 학과 같은 백학봉이 조화를 이룬 절경 단풍과 설경….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장면들이다. ‘대한 8경’에 포함될 뿐만 아니라 한국 최고의 명당 터에 자리 잡은 운문암과 신비의 샘물 영천수도 이곳에 있다. 역사적 자취와 자연경관 모두 어디 내놔도 손색없다. 이 모든 걸 아우르는 산이 장성 백암산白巖山(722m)이다.
백암산 들어가는 초입, 백제시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백양사 입구에 있는 누각 쌍계루雙溪樓가 방문객을 맞는다. 모두들 여기서부터 발길을 뗄 줄 모른다. 연못에 비친 쌍계루는 한 폭의 그림이 아니라 실화다. 이보다 아름다울 수 없는 자연경관이다. 출사가들의 주요 출사지이다. 이 장소의 숱한 사진들이 여기저기 떠돈다. 그 누각의 족보를 알면 정말 예사롭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다. 1370년 무너져 1377년 복구했으며, 고려 말 충신 정도전·이색이 기문을 남겼다. 고려 수도는 개성이다. 개성에 있던 인물이, 아니 관리가 오죽 유명했으면 이곳에 왔을까. 그리고 기문과 기록까지 남겼을까. 그 인물 자체가 충신으로 한국에 상징적으로 남아 있는 인물 아닌가. 뿐만 아니라 남한에 목은과 포은이 동시에 기록을 남긴 장소가 몇이나 될까.
이색의 <백암산정토사쌍계루기>에 ‘쌍계루는 두 계곡의 물이 합쳐진다고 해서 명명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토사淨土寺는 중건 당시 명칭이며, 조선시대 들어 백양사로 바뀌었다. 631년(무왕 32) 승려 여환이 창건 당시에는 백암사라고 불렀다. 고려시대 들어 중연中延이 중창한 1034년(덕종 3) 정토사라 개칭했다. 이어 조선시대 환양선사가 절에 머물면서 설법과 염불을 하자 흰 양들이 몰려오는 일이 자주 발생해 이를 보고 사찰 이름을 백양사로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흰 양을 구했다는 유래가 절 이름을 바꾸게 했다는 것이다. 백암사→정토사→백양사로 바뀌었다. 그때가 1574년(선조 7). 이후 백양사로 굳어져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목은과 포은은 기문과 더불어 빼어난 경관을 감상한 내용의 시도 남겼다. 조선시대 문신 이민서의 시문집 <서하집>에 ‘백암산 정토사에서 벽에 걸린 포은의 시를 차운하다. 白巖山淨土寺次壁上圃隱韻’가 전한다.
‘산수를 좋아하고 중도 좋아하는데/ 두루두루 유람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로세./ 다리 힘 해마다 줄어들어 탄식하건만/ 그윽한 정은 가는 곳마다 더해짐을 깨닫누나./ 돌구멍의 신령한 샘물 천고의 명승이요/ 찬 연못의 조각달 한 곳에 맑구나./ 훗날 혹시 은거할 계획 실현한다면/ 아침저녁으로 이 누에 뜻을 다해 오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