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내내 바쁜탓에 집안이 엉망이라 하루종일 팔 걷어부치고
일을 하려니, 괜스리 심통스럽기도 하고...
날씨가 너무 후덥덥해 뒷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 제치니
코끝이 싸 해지며 , 아카시아 꽃 향기가 밀려 들어온다.
이미 희디흰 속살이 누르스름하게 변해
반쯤은 떨어져 바닥에 쌓였고. 반쯤은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언제 떨어져 흩어질지 모르면서도, 끝까지 향긋한 내음을
피우며 나의 마음을 어지럽히니....
문득 옛생각에 베란다 창에 팔을 기댄체 꽃향기를 타고 나의마음도
어느덧 15-6년전 젊은시절로 돌아간다.
결혼초 아이는 어리고, 남편도 그때까지 공부를 마치지 못했던시절이라
건평 20여평 남짓한 기역자 집에서 단칸방에 살며, 방 3개는 세를 놓아
남편학비에 보태고, 내가 버는 월급으로 근근히 살던 가난한 시절이였다
지금은 대구에서도 수성구에 속해 엄청 발전하고, 땅값도 비싸졌지만
그 시절엔 일제시대때 지은 낡은 집들이, 그만그만하게 사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며 살던 아주 가난한 동네였기에, 세가 조금이라도 싸면
서로들 방을 얻을려고 혈안이 되어, 젊은 새댁인 내게 아부를 할만큼
어려운 시절이였다.
8M 소방도로를 사이에두고 마주보는 앞집에.. 일년 10만원짜리 달셋방을 살던 택시운전을 하던 남편과 아들하나를 둔 나보다 나이가 한두살 많았던 민수 엄마는 , 성격도 좋고, 마음씨도 털털해서 내가 놀이방에 맞겼던 아이를 미쳐 찾아오지 못하면 데려다 밥도 주고, 놀아도 주었던
정말 지금 생각하면 참 고마운 친구겸 언니같은 그런 사람이였다.
민수네가 살던 곳은 집은 낡았지만 100여평이 넘는 대지에 꽃나무랑 아카시아 나무가 어찌나 많았던지 우리아이들이 도시한가운데서 숨바꼭질을 해도 될만큼 , 아름다운 집이였다...
70이 넘은 노부부가 주인이라, 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쉼터가 되었고
술한잔 거나하게 드신 노인분들의 노랫소리가 길을 건너 우리집으로 들려 올때면 또 한잔들 하셨구나..하며 젊은 나이라 못마땅한 마음도 들었던 ...
민수 외할머니는 특히 목소리통도 크고 노래를 좋아해서 술자리에 어김없이 초대 되었고...단칸 셋방에 살면서도 민수엄마는 늘 따뜻한 밥을 해서
엄마를 정성껏 모시는 효녀였다...
민수 외할머니는 딸맛 셋이있는데, 다들 형편이 어려워
그때 딸들이 십시 일반 거둬서 방을 하나 얻어 아침과 점심은 혼자서 해
드시고, 저녁은 민수네 집에 와서 드셨었는데...
전혀 삶에 찌들린 노인네 같지 않게 풍채도 좋고 , 성격도 활발한 그런 분이셨고...건강하신 분이셨다..
어느날 우리집 문간방이 기한이 다 되어 나가게 되자...
민수 엄마가 ,,민수 외할머니가 그 방을 쓰면 안되겠냐구..
저녁드시고 어두운데, 집 찾아가시기 힘들었는데..잘되었다구....
방도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였기에...
미쳐 대답은 못하고 저녁에 남편과 의논해 보겠단 말을
했었는데...난 머리를 흔들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끄러운 할머니에.....늘 고스톱친구에...
남편의 공부에 방해도 되고...난 가깝게 지내던 미장원 아가씨한테
방이 이미 계약이 되었단 말을 민수 엄마한테 전하면서
미안하기도하고 양심에도 찔려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
나의 이기심으로 인해 할 수 없이 민수할머니는 신천 강둑에 근근히 얹혀진 오막살이같은 방을 얻어야했고...
우린 남편의 졸업과 함께 그집을 팔고,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몇년이 흐른뒤 아카시아 꽃잎이 오늘처럼 떨어지던날
민수 할머니의 죽음을 전해 듣게 되었다..
술에 취해 강둑에 얹혀진 집으로 돌아가다가 발을 헛디뎌 실족사로
돌아가셨단 말을 전해 들으면서... ...
나는 오랜세월이 흐른 지금도 아카시아 꽃잎이 이렇게 떨어지는 계절이 돌아오면 ,민수 할머니를 생각한다.
나는 그 식구들에게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인이 되었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훌륭한 삶은 아니였을지라도...
해 끼치지 않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정신적인 길라잡이가 되게 하기도 했던 부끄러운 내 삶의 한페이지를....
아카시아 꽃향기가 세상을 덮는 이런 계절이 돌아와도 행복할수 없는 시린 내마음의 한장면을 열어보이면서
가끔 본의 아니게...나만 생각하고 살다가...
또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나 않았는지.....
하늘이 쏱아져 내릴것 같은 우울한 오후에...
꽃향기를 바람에 싫어...나의 죄스런 맘을 그들에게 전하고 싶다.
첫댓글 갑자기 컴터에서 아카시아 향기가 나네요. ^^*
그것이 우리들 삶 안닌가요 그 마음이야 어디...^^
이웃을 잘만나야 되는것이거늘 어찌 맘대로......
아카시아꽃 향내음이 잔잔히 흐르는 소설을 한편 읽는 느낌 이네요.....민수네와 아카시아꽃의 아픈 추억..
슬픈기억들은 방방곡곡 가는 산에 다~내삐리고 온나...누구나 직,간접적으로 남에게 본의 아니게 마음의 상처 남기지 않을까..나도 누구에겐가 주지만 또 받기도하지...그런걸 우린 삶이라하지
그런아픈 기억을 아직도 간직하고 사는 한설님은 그래도 마음은 따듯한 사람이네요.
갖가지 꽃들로 가득하던 민수네집 앞으론 4차선 도로가 뚫리고, 그 자리엔 회색빛 높은 빌딩이 들어섰더군요...세월속에 추억도 묻혀가나봅니다...
역시 한설님의 글 솜씨는 알아줘야 한다니까...한설님 우리도 예날에 남의 참외밭 수박밭에 간적이 많은데 지나간 일은 이제 잊어버리세요.
잊을래야 잊을수없는 그악몽 아카시아의추억... 한설님!좋은추억이있으면 나쁜추억도있는법! 인생은 추억을먹고사는게 아닐까요...
지난 날 그리워함은 인생길에 길라가 될 수도 있죠^^
맞아요 마음이 따뜻한 아카시아 향기를 맡아보는 느낌입니다.한설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