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동학교당] -신앙 공간이자 거주 공간…동학교도로 이루어진 마을공동체의 중심지

[이장희]

1894년 11월, 남쪽에서 충청도 감영 소재지인 공주로 진입하는 길목에 있는 우금치 고개에는 무장한 병력 사이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넘치고 있었다. 
공주를 거쳐 서울로 북상하려는 동학농민군의 앞길을 관군과 일본군 연합 부대가 막아섰던 것이다. 
숫적으로는 농민군이 단연 압도적이었다.
선봉에서 선 주력 부대 1만을 포함하여 약 16만에 이르는 농민군들이 우금치 고개를 향해 천천히 진군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겨우 3천 정도의 관군과 일본군 부대가 고개 위에 포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기 면에서는 천양지차가 있었다.
농민군들은 대부분 죽창이나 농기구를 무기라고 들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군과 관군은 서양식 신무기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특히 다연발 기관총을 보유하고 있었다. 

우금치 고개를 힘겹게 올라오는 농민군을 향해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농민군들이 썩은 짚단처럼 쓰러졌다.
1차 접전이 끝난 후 선봉에 섰던 1만의 주력 부대 중 살아남은 사람은 절반인 5천에 불과했다. 

전열을 재정비한 농민군들이 다시 고개를 오르자, 일본군은 다시 기관총 세례를 퍼부었다. 
2차 접전에서 살아남은 농민군은 5백을 넘지 못했다.
처참한 패배였다. 
일부 농민군은 전열을 지어 퇴각했지만, 대부분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위해 이리저리 흩어졌다. 

◆상주 동학교당의 창건 내력 

상주 동학교당은 동학 접주 김주희 선생이 교세 확장을 위해 1924년 건립했다.
상주, 문경, 예천 등 경북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일제의 눈을 피해 교세 부흥에 많은 역할을 했다.
건물은 초가집 형식으로 지방문화재 민속자료 제120호로 지정돼 있다.

훗날 상주 은척 우기리에서 동학교당을 창시하는 김주희(1860~1944)도 우금치 전투에 농민군으로 참전하고 있었다.
36세의 혈기 왕성한 나이였다. 
충청도 공주에서 태어나 아버지 김윤집의 영향으로 일찍이 동학에 입도했던 김주희는 왜와 서양 오랑캐를 물리치고 봉건사회의 모순을 척결하여 후천개벽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동학의 가르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가 1894년 동학의 남접과 북접이 합심하여 한양으로 진격하기 위한 농민군의 2차 봉기에 앞장서서 참여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왜적을 쳐부수려는 의기만 높았던 농민군들이 일본군의 기관총과 신식 무기 앞에서 속절없이 쓰러지는 모습을 현장에서 목격하면서 그는 무력으로 관군과 일본군을 이기기란 불가능함을 절감하였다.
흩어지는 농민군 틈에 섞여 김주희도 전장을 벗어났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동학농민전쟁이 막을 내린 후 조선에 대한 일본의 입김이 더욱 강해져 갔고, 동학교도와 농민군 잔여 세력에 대한 탄압도 점점 심해졌다.
전장을 벗어나 계룡산 갑사로 피신했던 김주희도 탄압을 피해 논산과 영동, 속리산 등지로 다시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피신하는 와중에도 그는 수도에 매진하여 동학의 대도(大道)를 깨치게 되었다. 

1904년 무렵 김주희는 십승지(十勝地)의 하나로 알려진 상주군 화북면 장암리로 들어가 동학의 교리를 따르는 경천교를 창시하여 교당을 세우고 포교활동을 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일제의 감시 대상으로 지목되어 있었으므로 공개적인 활동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정수기를 교주로 세워두고 자신은 낮에는 속리산에 들어가 은신했다가 밤이 되면 하산하여 교리를 가르치고 교당의 사무를 처리하는 등 경천교를 실제로 주도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정수기와의 사이에 교단의 운영을 두고 의견 대립이 생겼다. 
정수기는 동학의 예배 의식인 헌성(獻誠) 진설식(陳設式)을 진법(陣法)으로 바꾸어 교단을 군대로 만들어 항일의병 활동을 전개하려고 하였다. 

이에 대해 김주희는 동학 교리에 충실한 본연의 신앙생활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의견 다툼으로 1907년경 두 사람은 결별하였고, 김주희는 다시 속리산에 은거하여 수도 생활을 계속해 나갔다.

김주희가 떠난 후 정수기와 경천교의 활동은 일제의 탄압을 불러왔고, 정수기는 1912년 보은 의병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어 참형을 받아 세상을 떠났다. 
그리하여 경천교도 해산되고 말았다.

김주희는 속리산에서 수도하면서 다시 동학의 도를 크게 깨닫고 하산하여 상주, 안동, 청송 등지로 다니면서 비밀리에 포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교당을 세우고 동학교를 재건할 뜻은 간절했으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던 1910년 무렵 그는 상주 이안에서 후일 부교주가 되는 평생의 동지 김낙세를 만났다.

두 사람은 다시 동학교를 설립하기로 뜻을 모으고 김낙세의 재정지원으로 교당을 세울 부지를 매입하였다.
그곳이 바로 현재 동학교당이 자리잡고 있는 상주 은척 우기리였다.
1915년에는 북재와 서재를 건립하여 교당의 기본을 갖추었으며, 1919년까지 점차 전체 교당을 완성하였다.

교당이 세워진 자리는 풍수적인 형국으로는 “엎드려 누운 소의 배꼽(牛腹)”에 해당하는 명당이라거나 “봉황의 혈(穴)자리”라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지세를 관찰하면 사방에 높은 산이 둘러싸고 있는 상당히 넓은 분지의 중간 지점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방의 재를 넘지 않고서는 10리를 못 간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교당이 세워지기 전에는 마을들이 모두 분지를 에워싼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분지 한가운데에 동학교당이 세워진 후 교인들이 점차 교당 주위에 모여 살게 되면서 새로운 마을이 형성되었다.

◆소장 유물과 쇠락     

상주 동학교당 입구 현판과 주련. 전국 유일의 동학과 관련된 건물과 유물이 보존돼 있다. 

사랑채 툇마루에 할머니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상주 동학교당을 찾으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마을의 집들 사이로 난 고샅길이다. 
담장과 담장 사이로 난 길은 사람 한 명이 등짐을 지고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좁다. 

더구나 이리 꼬불, 저리 꼬불, 방향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미로이다.
마을 안길이 이렇게 미로처럼 만들어진 이유는 모두 일제의 탄압 때문이었다. 
외부 사람이 마을로 들어와도 교당에 이르기가 어렵도록, 또 시간이 걸리도록 의도적으로 고샅길을 미로처럼 만들었다.

왜경이 감시하러 오면 미로를 헤매는 동안 교당에서는 감출 것은 감추는 등 충분한 대비를 할 시간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또 교당 앞의 마당에서 멀리 고개를 넘어오는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혹시라도 수상한 사람이 고갯길을 내려오면 교당에서는 사전에 대비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교당의 위치와 마을의 구조만으로도 일제의 탄압에 대응하는 동학교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동학교당은 원래 6채의 초가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당을 가운데에 두고 동ㆍ서ㆍ남ㆍ북 방향에 각각 1채의 건물이 있어 북재ㆍ남재ㆍ동재ㆍ서재라고 불렀다.

북재에는 제를 올리는 헌성실이 있었고, 또 교주의 가족이 거처하는 공간도 있었다. 
동재는 주로 교주 김주희가 사용했고, 서재는 그의 가족들이 거처하였다. 

남재는 부교주 김낙세와 남자 교인들이 사용했다.
그리고 서재 뒷편의 별채는 경전이나 가사를 간행하는 장소였으며, 곳간이 따로 있었다. 

경내에 화장실을 만들지 않았던 점이 특이하다.
이렇게 동학교당은 신앙 공간이자 거주 공간이었으며, 동학교도들로 이루어진 우기리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특징을 높이 사서 동학교당은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20호로 지정되었다. 

동학교당도 성쇠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초창기 1914년경까지 교당에 모이는 동학교도는 12명 정도였다고 한다. 
1915년부터 교인들이 증가하기 시작하여 1920년에는 76명이 되었고, 1922년에는 447명으로 불어났다.
이 무렵에는 교당에 2~30명이 상주하였으며, 헌성제에 참여하는 숫자는 거의 5백에 가까웠다고 한다. 

인쇄와 제본에 쓰인 용구.

목활자로 제작된 동학관련 서적.

목활자판.

이렇게 교당이 융성하는 가운데 경전과 가사를 간행하는 사업이 추진되었다.
1922년 동경대전과 궁을경을 석판인쇄로 출판되었고, 창덕가를 비롯한 많은 동학가사가 목판본, 목활자본 등으로 간행되었다.
이렇게 상주 동학교당에서 간행된 전적들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11호로 지정되었으며, 다시 289종 1,425점이 국가기록물로 지정되었다. 
최근에는 상주동학문화재단(이사장 김문기 경북대 명예교수)이 중심이 되어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 등재를 추진 중에 있다.

이러한 전적 자료와 함께 소장하고 있는 동학 관련 유물들도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1966년 교당의 지붕을 초가에서 기와로 바꾸는 공사 중에 초가지붕 아래에서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교기(敎旗)ㆍ의기(儀旗)ㆍ기두(旗頭)ㆍ깃대 등 가치높은 유물들로서 현재 전적자료와 함께 유물전시관에 보관ㆍ전시되고 있다.

상주 동학교단은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조선총독부의 인가를 받아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동학교리가 가진 반외세ㆍ반봉건적 성격은 일제의 주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1936년 일제는 동학교당에 대한 공인을 취소하였고, 호시탐탐 탄압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1943년 음력 10월28일 새벽 교조 최제우의 탄신일을 맞아 교당은 헌성대제를 올리기 위한 준비로 분주했다. 
제사를 마치고 아침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4~50명의 교인들 앞으로 긴 칼을 찬 검은 제복의 왜경 수십명이 들이닥쳤다.
가혹한 진압작전이 이어졌다. 
교인들은 줄줄이 포승에 묶여 상주경찰서로 끌려갔다.

동학 남접주 김주희 선생 초상화와 유품.

교주 김주희와 부교주 김낙세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수감 중에는 구타와 고문이 이어졌다.
크게 몸을 상한 김주희는 이듬해 병보석으로 풀려났지만, 결국 개벽 세상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이와 함께 동학교당도 서서히 기울어 갔다.
교주의 남은 가족들이 겨우 명맥을 이어 왔을 뿐이다.

 

이문기  
경북대 역사교육과 교수 

[松崗/鄭萬浩]

잘 봤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