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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
최 인 욱
그저 팔자소관이거니 하고 모든 것을 타고난 운명에만 맡겨버리고 말자고는 하지만 이따금 지내온 스물두 해를 회상할 때나 또 앞일을 생각할 때 연이는 모두가 기막히고 암담한 것뿐이라 절로 한숨이 나곤 하였다.
그는 열일곱에 시집을 갔다. 부모도 없는 농사꾼에게로 시집을 갔다. 먹으나 굶으나 간에 둘이 맞붙어 사는 데가 오히려 마음이 편타고 하여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재 하나만 넘으면 갈 수 있는 이웃마을로 시집을 갔다.
남편은 저희 동네에서도 한다 하는 장정이어서 내외 두 식구 먹고 살기에는 그냥저냥 지내났다.
그러자 시집을 간 이듬해 늦은 여름에 남편은 징용에 뽑히게 되었다. 일본 사람들이 저희들의 전쟁에 이용하기 위해서 강제로 붙들어 간 것이다.
징용을 가던 날, 두 식구 마주 앉아 아침을 먹는데, 남편은 연이의 불룩한 배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조심해야지, 아마 곧 낳게 될걸.”
하였다.
연이는 그때까지도 자꾸만 수줍어서 그 말에는 아무런 대꾸도 못했다.
남편은 어린애에게 타이르듯 자기가 떠나고 나면 어찌어찌할 것을 연이에게 누누이 부탁하였다. 지금 있는 집은 남에게 세를 주고 시숙의 집에 가서 있으란 것과, 농사일은 이웃 사람들에게 보아달래서 추수나 하고 이듬해부터는 자기가 올 때까지 농사도 남을 내주란 것, 그 밖에도 여러 가지 부탁이 많았다. 그중에도 남편이 연이를 자꾸 시숙의 집에 가서 있으란 것은 젊은 여자가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다가 무슨 탈이라도 생길까봐 그것을 제일로 걱정하는 눈치임을 연이도 짐작할 수 있었다.
“시키는 대로 할 테니 내 걱정은 조금도 말아요.”
연이는 고개를 숙이고 코눈물을 훌쩍이며 겨우 한마디 입을 떼었을 뿐이다.
그런 지 일 년 만에 해방이 되었다. 해방이 되자 병정으로 징용에 끌려갔던 젊은이들이 날마다 제 고장을 찾아들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연이가 기다리고 기다리는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꼭 와야 할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연이는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려 몸이 달았다. 그러자 남편과 한날한시에 이 고장을 떠난 젊은이들이 두 사람 꼭같이 돌아왔다. 그들의 부모처자는 죽었던 사람이 되살아온 듯이나 반가운 모양 그저 기쁘고 즐거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연이는 그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자 곧 아이를 등에 업고 부랴부랴 그들의 집을 찾아가서 남편의 소식을 물었다.
“우리 집 그 양반은 안 옵니까?”
연이는 등에서 보채는 어린것을 우쫄우쭐 달래며 무슨 말이든 간에 일분일초라도 속히 그들의 입에서 대답이 나오기만 고대하였다.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갈 때는 세 사람이 갔다가 올 때 두 사람만 오게 되니 아주머니 대할 낯이 없구만요.”
젊은이는 그러면서 짐을 끄르고 흰 보자기에 싸인 상자 하나를 공손히 두 손으로 받들어 연이의 앞에다 내밀었다.
유골이란 그런 유식한 문자를 촌색시가 알 턱이 없다. 흰 보자기에 싼 네모진 상자를 이런 촌에서 연이는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란 것을 연이는 눈치로 벌써 누구보다도 잘 느껴 알 수 있었다. 자나깨나 잊지 못하던 것, 눈만 뜨면 기다리던 것, 인제는 그렇게 아니 기다려도 되도록 다 마련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하룻밤 꿈이 아니요, 엄연한 현실인 데는 연이의 실망은 너무도 큰 것이었다.
초라한 오막살이, 서쪽 하늘에서 초승달이 엿보는 오막살이 썩어가는 지붕에는 하이얀 박꽃이 피어서 너울거리는데 방 안에는 까물거리는 호롱불 밑에서 연이가 두 다리를 뻗어놓고 몸부림을 친다.
“왜 죽었노, 왜 죽었노, 나를 두고 왜 죽었노, 엉이엉이 왜 죽었노.”
가슴을 쥐어뜯는 듯한 애처로운 연이의 넋두리는 어둠을 뚫고 내를 건너 들을 건너 앞산을 건너 아마 하늘에까지 닿았을지도 모르겠다.
연이는 남편이 떠날 때 하던 말, 시숙의 집에 가서 있고 농사는 남을 주라던 그 말을 대수로 알지 않았다. 오막살이에는 낮이면 통이 빈집이었으나 밤이면 언제든 빠안한 호롱불이 켜져 있었고 젖먹이 어린것의 울음소리가 났고 됫들 네 마지기 농사는 그의 손으로 가꾸어놓았다. 악을 쓰고 버티며 남편이 있을 때나 다름없이 논바닥엔 퍼어렇게 나락포기가 서 있었다.
“무정코도 야속해라. 나는 어린 자식하고 누굴 믿고 살란 말고? 엉이엉이.”
어느 날 밤, 그날 밤도 연이는 남편의 유골을 끌어안고 목이 메어 울다가 밤도 이슥해서 인제는 울려야 목이 쉬어 수리도 나지 않고 눈물도 말라버렸을 때, 연이는 와락 자리에서 일어나 윗목에 놓인 궤짝 속을 더듬었다. 궤짝 속에는 그의 몇 벌 옷과 함께 또 하나 들어 있는 것, 궤짝 속에서부터 덜그럭 거리며 마침내 그 연이의 손에 쥐어져 나온 것은 날이 시퍼런 식칼이었다.
이 보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식칼은 남편이 떠나던 며칠 뒤부터 연이의 궤짝 속에 간직함이 되었다.
어느 놈이고 덤비기만 하면 이 식칼이 무서운 효력을 발생할 것으로 알고 연이는 누구보다도 이 한 자루의 식칼을 든든하게 믿어왔던 것이다.
연이의 눈이 언제 이렇게 무서운 빛을 발한적이 있었던가,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독을 품은 듯한 새까맣계 빛나는 동그란 눈알.
연이는 새하얀 보자기에 싸인 상자를 본시대로 궤짝 위에 얹어놓고 그 앞에 꿇어앉아 날이 시퍼런 식칼을 집어들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가슴이, 온몸이……바르르 떨던 칼끝이 갑자기 힘을 얻어 가늘디가는 연이의 목줄기를 겨누고 내려지려는 순간, 궤짝 위에 얹혔던 유골 상자가 삼베적삼 소매에 걸려 뚜그르 연이의 치마폭에 와 굴러떨어졌다. 연이가 식칼을 집어던지고
“으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문을 박차고 마당으로 뛰어나갔을 때, 땀이 밴 그의 등골에는 차디찬 빗방울이 성큼성큼 내려졌다.
악물었던 입술에서 벌겋게 피가 나온 것은 훨씬 뒤에야 알았다. 그런 일이 있은 며칠 뒤 연이는 집을 팔고 시숙의 집으로 옮겨갔다. 시숙의 집으로 옮긴 지 일 년 만에 그는 또 친정으로 돌아왔다.
친정으로 온 지도 어느새 햇수로 쳐서 삼 년, 그동안 사철 연이의 등에서만 곰실거릴 것 같던 복돌이가 벌써 다섯 살째 난다.
내[川] 방천을 따라 쭉 뻗어나간 신작로, 신작로를 내다보고 앉은 초가집, 초가집 돌담 밑에 파란 움이 터져나오는 수양버들 밑에 동네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논다. 아버지 없는 복돌이도 그 패들 중에 한몫 끼어서 논다.
아이들은 자 재먹기, 돌치기, 숨바꼭질로 흥이 겨워 놀다가 자동차 소리만 나면 너나 할 것 없이 귀들이 쫑긋하여 길 아래위편을 두리번거린다.
길 위편에서 재목(材木)을 가득 실은 트럭 한 대가 쭈르르 기운차게 달려오다가 아이들이 둘러선 그 앞에 와서 정거한다. 운전대에서 사람들이 서넛 내린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저희들끼리 뭐라고 시시덕거리며 초가집 마당으로 들이민다.
운전수란 사람은 마루에 놓인 떡 함지박의 보자기를 휘딱 걷어젖힌다. 메밀묵 그릇을 기웃거린다. 그러자 더러는 마루턱 에 걸터앉고, 더러는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이 집과는 아주 무관하다. 무슨 짓을 하거나 별반 허물이 없다.
한나절 두고 파리떼만 웅성거리던 집안이, 빨랫줄에 누더기만 펄렁거리던 집 안이 금시 난리가 난 것처럼 왁자지껄 소란하다.
복돌이 외할머니는 그들이 청하는 대로 묵이면 묵, 떡이면 떡, 음식을 나눠주느라고 두 손이 놀 새가 없다. 얼마쯤 지나서 노파는 구정물이 꾀죄죄 흐르는 행주치마에 손을 쓱쓱 문지르며 한 사나이를 대해서,
“이따 날 좀 보고 가게.”
하였다.
“예!”
사나이는 별로 의아해하는 일도 없이 한마디로 극히 자연스러운 대답이다.
웬만큼 배를 채운 사람들은 잇새를 후비며 끄륵끄륵 트림을 하며 떡집 사립 밖으로 슬슬 나올 무렵 노파는 한 사나이를 데리고 윗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어디나 없이 지절궂다. 그들은 마구 트릭에 엉겨붙어 핸들을 돌려보기도 하고 발동을 만져보기도 하고 별의별 군데 제멋대로 손을 대보며 의론이 분분하다.
“어젯밤에 여기서 자고 간 차다.”
한 아이가 입을 떼니,
“아니라요. 그 차는 앞주둥이가 길던데?”
한 아이가 말을 받았다.
기다. 아니다. 이렇게 의견이 대립되어 서로들 버티는 판에는 누구보다도 확신을 가진 떡집의 복돌이가 나서야 할 판,
“아니라요. 바로 이 차가 기라요.”
돌이가 엉덩이까지 훑어져 내려간 바지춤은 아예 추켜올릴 생각도 않고 손으로 차를 가리키며 앞으로 썩 나서니 아이들은 “그렇다. 그렇다” 하고 돌이의 말에 찬동이다. 뿐만 아니라 곧장 아니라고 버티던 아이들까지도 그제는,
“부러 그랬지 .”
하고 능청스럽게 돌려대버린다.
아이들의 전 인기가 돌이에게로 집중되자 그는 무슨 대단한 일이나 한 듯이 패기만만한 중에, 떡집을 나온 사나이들은 저희들끼리 얘가 그 애니 쟤가 그 애니 하고 숙덕거리다가 그중의 한 사람이 마침내 돌이를 보고,
“저 사람이 누구냐?”
하고 이제 막 떡 집에서 뒤쫓아나오는 사나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돌이는 가리키는 대로 빛 낡은 중절모를 쓰고 다 해진 가방을 든 사나이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섰으려니 그 옆에 섰던 사람이,
“너희 아버지다. 너희 아버지.”
하였다.
돌이는 자그마니 팔짱을 낀 채 사뭇 그 말이 의아스러워 입을 뗀 사나이의 얼굴만 말끄러미 쳐다보는데, 사나이는 또 어른답지 않게 킬킬 웃기까지 하여 그만 모여 섰던 아이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까르르 웃어 댔다.
트럭은 중절모를 태워가지고 휘잉 떠났다. 길바닥에 먼지를 뿌옇게 날리며 차가 떠나자 아이들은 돌이를 마구 놀려댔다. 중절모를 쓰고 가방을 든 흉내를 내며,
“저 사람이 누구냐?”
하면 다른 아이가 있다가,
“너희 아버지다. 너희 아버지 .”
제법 어른들의 말투를 따서 찧고 까부는 데는 돌이는 아무래도 견딜 수 없었다. 아까부터 얼굴이 뻘겋게 달아서 두 볼이 불퉁해진 돌이는 그만 길바닥의 조약돌이며 흙이며를 사정없이 움켜쥐어 아이들에게 끼얹었다.
아이들이 우우 골목 안으로 줄달음을 치자 돌이는 슬그머니 손에 쥐었던 것을 놓고 집으로 발을 떼어놓았다.
“돌이냐!”
외할머니가 마루 양지쪽에 장죽을 물고 앉았다가 부르는 말에는 들은 체도 않고 돌이는 코를 훌쩍 마시면서 윗방 문을 열었다.
“엄마야!”
돌이는 한동안 우두커니 바람벽을 지고 섰다가,
“엄마, 아까 우리 집에 왔던 사람 거 누고?”
하였다.
때마침 헌 옷을 꿰매던 연이는 그만 바늘 끝에 손가락을 찔리고 말았다.
연이가 아무런 대꾸도 없으니 돌이는 재차 묻는다.
“아까 안 왔나, 왜 모자 쓰고 가방 들고 온 사람, 엄마 모르나 왜.”
연이는 자기도 모르는 새 그만 얼굴이 붉어져서,
“돌아!”
하고 한번 불러보다가 아이의 코를 앞치맛자락으로 훔치며,
“할매한테 밥 달라고 먹지 왜.”
하였다.
친정도 넉넉지를 못하니 허턱 친정만 나무랄 것은 못되는 일이 아닌가. 모두가 연이 자신의 허물이라면 허물이요, 운명이라면 운명이었지, 남을 걸어 한탄할 일은 아니라고 지금 와서는 연이 자신도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그저 이래야 옳은 것인지 저래야 옳은 것인지 자기로서도 자기의 일에 갈피를 잡을 수 없었고 자신이 서지를 않았다.
그런 중에도 이번에 친정에서부터 대두되는 개가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더 그러 했다.
“평생을 홀몸으로 늙을 양이면 말할 여지는 없지만서두 아까운 청춘에 그것도 안 될 말이고, 또 혼자서 늙자니 무얼 먹고 어떻게 살더란 말인가. 다 헷소리지 헷소리, 장담 못할 바엔 일찍 조처하는 게 상책이지, 그만 했으면 시가에 대해서도 인사치레할 만치는 했고, 아 요새 세상에 과부 서방 얻어가는 게 무슨 허물이람. 기왕 사람을 얻을 바엔 그만한 사람도 없소 없어. 그이도 상처를 했으니께 말이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림이나 있소. 재산이 먹을 만해, 남자 그만하면 아무데 내세워도 외양이 의젓해, 바른말이지 나무랄 건 열에 하나도 없지요.”
주막집 노파가 벌써 몇 차례나 드나들며 떡집 노파를 녹여댔다. 그러면 떡집 노파는 또 주막집 노파의 말을 그대로 딸의 귀에 옮겼다.
“대관절, 늬 마음이 어떤지, 내가 낳은 딸이지만 자식도 품안의 자식이지, 에미가 억지로 권할 수야 있나. 모두가 제 맘에 달렸지.”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행여나 싶어 곁눈으로 딸의 기색을 엿보았다. 연이는 언제나와 같이 다소곳하고 가부간 말이 없었다. 그럴라치면 주막집 노파는,
“어째 그런 일을 당자가 좋으니 싫으니 하고 나설 수가 있소. 그러니께 이런 일에는 중매가 있는 법이지. 제 일 제 알아 할밖엔 중매고 뭐고 옛날부터 있을 턱이 없지라.”
두 노파가 마주 앉아 서로 주거니 받거니 연이 문제로 몇날 며칠을 두고 회담이 잦았다. 그런 어느 날 주막집 노파는 나이 한 사십오륙 세 되어 보이는 사나이를 데리고 떡 집으로 들어왔다.
“뭐 요기할 게 있는가 모르지, 좀 시장해서 그러는데 술이사 우리 주막에서도 먹었지만.”
주막집 노파는 이렇게 수선을 떨며 일변 떡집 노파의 귀에다 대고 뭐라고 숙덕숙덕하였다. 그러니까 주인 노파는 또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나서 그들은 서너 발만큼 갈라졌다.
그러자 주막집 노파는 이내 또 컬컬한 목소리로,
“날이 쌀랑하니께 방에 좀 들어가서 어한*을 해얄까부다.”
하니,
“저리 저 방으로 듭시다. 이 방은 메누리 방이고 저 방엔 우리 딸이 있지만서두 요새 어디 내외가 있는가베. 자아, 추운데 들어갑시다. 내 술 한잔 받아 올게.”
주책없는 늙은이들이란 하는 수가 없어 하나는 곧 들어가라고 등을 밀고 하나는 또 염치도 없이 들어가란 대로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자아, 이리 좀 들어오시지, 날이 추워서.”
주막집 노파는 사나이의 양복 소매를 잡아당겼다.
바느질을 하던 연이는 암말도 않고 일감을 들고서 밖으로 나가려하니 노파는 한사코 만류하였다.
“요샛사람답지 않게 뭘 그러노, 늬가 나갈 바엔 내가 나가야 옳지, 암말도 말고 게 앉아라. 주인이면 손 대접을 해야 옳지, 너 없는 방에 그래 손만 앉았으란 말가?”
연이는 퍽 노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무언지 분하기도 하였다.
“자, 만난 김에 서로 자세히들 보시지. 색시도 이만하면 훌륭하고 신랑도 횰륭하고…….”
노파는 벌써 술이 한잔 된 모양 갈수록 주책없는 소리만 지껄였다.
연이는 아무리 참고 견디려고 하여도 속이 자꾸만 뒤틀려서 들고 앉았던 일감을 동댕이치고 밖으로 뛰쳐나오려다 마악 술상을 차려가지고 들어오는 어머니와 마주쳤다.
“어델 가노.”
그러나 연이는 들은 체도 않고 그만 밖으로 뛰쳐나와 부엌으로 들어갔다. 연이의 두 볼에는 자기도 모르는 새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무엇 때문에 이다지도 서러운 것인지 눈물은 그칠 새도 없이 줄곧 솟아났다. 연이는 그만 치마폭으로 얼굴을 감싸고 아무렇게나 부엌 바닥으로 쓰러졌다.
요새 올케는 무엇에 그렇게 속이 틀어졌는지 연이만 대하면 눈살이 샐쭉해서 곧 쥐어뜯기라도 할 것처럼 구는 것이었다.
“사람이 나이 이십이 넘었으면 제 요량 제가 해야지, 이건 천치도 아니고 바보도 아니고, 허구헌 날 놀고만 먹으니께 천하태평인 모양이지, 끌끌.”
연이가 부엌에서 저녁 설거지를 하는데 올케는 방에서 무엇을 하는지 내다도 보지 않고 한단 소리가 시누이의 험담이었다. 이것은 물론 연이가 들으란 듯이 일부러 하는 소리기도 하지만 또 한편은 딸자식을 끼고 도는 시어머니에 대한 일종의 화풀이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남구에도 돌에도 댈 데 없는 것을 갑자기 어쩌란 말가?”
노파는 마지못해 한마디 입을 떼었으나 행여 며느리의 비위를 건드릴까 싶어 조심이었다.
며느리는 전에도 그렇기야 했지만 연이가 친정으로 오고 난 후로 어느 하루 상판을 바로 펴는 날이 없었다. 그도 따져보면 통히 며느리만 그르달 수도 없는 것이, 남편이라고 일 년내 가야 집에는 한 달을 옳게 있는 일이 없이 사철 바람개비처럼 예가 퍼떡 제가 퍼떡 떠돌아다니다가 집이라고 들면 손 하나 까딱하는 일 없이 낮잠이나 늘어지게 자다가는 며칠이 못 가서 또 어느새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게 휘딱 없어져버리는 위인이라 남의 자식 데려다가 고생시키는 것만 해도 안타까운 노릇인데, 게다가 속을 썩이기까지야 될 말이 아니라
그래 노파는 아들 걱정, 딸 걱정, 며느리 걱정 한날한서도 그에겐 속 편할 날이 없었다. 연이는 부엌일·빨래일·삯바느질, 심지어 들일까지라도 도맡아가지고 치러내는 형편이라 식모 겸 머슴 겸 지내는 처지건만 올케에게는 무언지 모르게 자꾸만 눈치가 보였다. 돌이가 밥투정을 해도 올케가 쳐다보였고 춘이(올케의 큰아들)와 돌이가 싸움질을 해도 그렇다. 준이는 돌이보다 두어 살 위라 학교에라도 다닌답시고 걸핏하면 돌이를 곯려 댔다.
“이놈 새끼 너희 집에 가라.”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준이는 곧잘 돌이의 덜미를 쥐어 누르고 발길로 엉덩이를 걷어차면서 이렇게 소리소리 지르면 돌이는 이잉 울면서 한마디 항거도 못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유일한 보호자 연이의 얼굴만 찾는 눈치였다.
“왜 때리노. 커다란 게 동생을 때림 쓰나, 그러지 말아 응.”
연이는 속으로 눈물을 지그시 깨물며 돌이의 머리를 쓸어주고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어주고 할라치면,
“걘 별나기도 하다. 건드리기만 해도 우는구나.”
올케는 덮어놓고 빈정거렸다. 그뿐이면 하지만 떡 함박에서 시루떡을 싹둑 잘라 준이를 쥐여주며,
“넌 너대로 가서 놀아라. 뭘 한다고 밤낮 그애하고만 야단이냐.”
하고 말마다 꼬챙이가 있는 소리만 골라가면서 하였다.
그러면 그럴수록 준이는 자기의 우월감에 떡을 손바닥에 놓고 보란 듯이 이죽거리고 하면 돌이는 그만 힘없이 돌담 모퉁이에 기대서서 부러운 듯 손가락이나 빨고 하는 것이 모두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연이의 가슴에는 못이 하나씩 더 박히는 것이었다.
낮에도 연이가 부엌에서 빨래에 잿물을 내다 하니 골목에서 돌이의 우는 소리가 났다. 설마 내버려둔들 죽이기까지야 하랴고 하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놓이지를 않아 마침내 쫓아가보았다.
“이놈 새끼 콱 뒤어져라.”
준이는 돌이를 길바닥에 넘어뜨려놓고 옆구리며 허벅지를 발길로 마구 사정없이 걷어차고 있었다.
“왜 그러노? 제발 그러지 마라. 남이 때려도 말리긴새레* 동생을 패면 으떡 하노.”
연이는 그만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하마터면 눈물이 펑 쏟아질 뻔한 것을 꿀꺽 참고 있는데,
“엄마야 엄마야, 준이가 내 팽이 뺏어갔다. 구길이한테 얻은 거 뺏어갔다. 엉엉엉엉.”
지난밤인가 싶다. 연이가 바느질을 하느라고 오래도록 자지 않고 있는데 구들목에서 쌕쌕 자던 돌이가 잠결에 벌떡 일어나더니 그길로 무엇을 두리번거리며 찾다가 주머니를 더듬어보고는 도로 픽 쓰러지는 것이었다.
“돌아! 왜 그러노, 응.”
연이가 수상쩍어 물으니,
“내 팽이……”
하고 돌이는 주머니 속에서 팽이를 꺼내 연이의 앞에다 내밀어 보였다. 그러면서 돌이는 빙 레 웃었다.
연이는 웃는 아이의 얼굴에다 제 뺨을 대고 비비면서,
“거 웬 거고?”
하니 ,
“구길이가 주었어.”
하였다.
구길이란 이웃집의 아이다.
연이는 어젯밤의 일이 생각나자 비실비실 달아나는 준이를 뒤쫓아가서 팽이를 도로 빼앗아 돌이의 손에다 쥐여주었다. 돌이는 그제야 손등으로 눈물을 씻고 울음을 속으로 추스르며 연이의 뒤를 따라왔다. 돌이는 연이가 일하는 부엌에까지 따라와 한쪽 곁에 쪼그리고 앉아서 종시 아무 데도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준이가 그대로 있을 턱이 없다. 그는 누가 때리기나 한 것처럼 엉엉 울면서 저희 어머니에게 고모가 이러고 저러고 하더란 말을 고해바치면서,
“돌이새끼 밥 주지 마라. 저희 집에 보내라.”
고 집이 떠나가게 야단이었다.
“아니꼼게시리 자식 편은 무던히도 들더라. 그꼴 저꼴 안 보고 속 편히 살려면 뭣 때문에 친정에 와서 저러고 있을꼬?”
올케의 빈정거리는 말이 봉창을 통해서 연이의 귀를 찔렀다.
“별수 있나, 그저 내가 이 집을 떠나야지.”
연이는 입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뭐라고 하든 종시 못 들은 체 한마디의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재목상을 한다는 사나이는 사흘돌이 트럭을 타고 연이의 집 앞을 지나쳤다. 그는 이 길을 지날 때마다 과일이며 비누며 장난감 같은 것을 사가지고 와서 연이의 환심을 사려고 들었다. 그리고 또 운전수며 조수며를 데리고 와서 음식을 팔아주기도 하여 연이 어머니에게는 다시없이 고마운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런 어느 날 저녁때, 꽤 어두워서다. 사나이는 약주를 한 병 사들고 연이의 집을 찾아왔다. 그는 마루턱에서 두어 번 헛기침을 하다가 마침내 윗방 문을 바라보며,
“돌아!”
하였다.
사나이가 두번째 아이의 이름을 불렀을 때 큰방에서 올케의 소리가 났다.
“거 뉘가 왔나본데 좀 내다봐요.”
때마침 연이 어머니는 돌이를 데리고 이웃집 신행잔치에 가고 없었는지라 연이는 어쩌는 수 없이 문을 바스스 열고 가느다란 소리로,
“어서 오십시오.”
하고 주인 노릇을 하였다.
“미안합니다.”
사나이는 덜그럭 거리며 구두를 벗고 방으로 들어왔다.
연이는 얼마 전부터 벌써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있었는지라 사나이가 방으로 들어와도 그 언제와 같이 노엽거나 분한 생각은 나지 않았다. 그는 다만 기구한 운명의 장난을 저주할 따름이었다.
한동안 침묵이 지난 뒤, 사나이는 입을 열었다.
“그저께 어머님을 통해서 대략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마침 그럴 생각이 당자로부터 있단 말을 듣고 나도 퍽 마음이 기뻤습니다.”
사나이는 담배를 피우면서 말을 계속하였다.
“나 역시 팔자소관으로 작년에 상처를 하고 아직까지 홀애비로 지냅니다만 소생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시부모도 없고 단 두 식구 살림이니 별로 고되거나 할 바는 없지만 내가 나이 좀 많아서 마음에 어떨는지.”
사나이는 말끝을 흐리면서 연이의 손을 가만히 쥐었다. 주무르기도 하였다. 연이는 그저 가슴이 두근거렸을 뿐 창졸히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 뒤 사나이는 언제나와 같이 트럭을 타고 연이의 집 앞을 자주 드나들었으며 때로는 연이의 방에서 하룻밤씩 쉬어가는 일도 없지 않았다.
그로부터 석 달이나 지난 오늘 연이의 뱃속에는 또 하나 작은 생명이 커나고 있음을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돌이가 연이를 찾아오는 사나이를 누구냐고 묻던 일이 있은 지 훨씬 뒤에 사나이에게서는 돈 오천 원과 연이가 입을 옷감 한 벌어 왔다. 그러면서 음력으로 삼월 열이렛날이 그가 연이를 데려갈 날이라고 하였다.
연이가 두번째 시집을 가야 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밤 사나이가 또 연이를 찾아왔을 때,
“연이! 그전에 대구 와본 일 더러 있나?”
하고 물었다. 연이가 잠자코 고개만 가로저어 보이니,
“참 좋지, 이런 데 살다 첨 가보면 깜짝 놀랄걸, 하하하.”
연이는 그 말에는 아무런 대꾸도 않고 벌써 언제부터 마음속에 벼르던 말을 이판에 한번 속 시원하게 물어보리라 하였다.
“돌이는 어떡하기로 할 작정입니까? 으레 데리고 가야지요?”
“돌이라니?”
“내 아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나이는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없다가,
“그애는 이 댐에.”
할 뿐이었다. 연이는 그만 가슴이 뭉클하여 미처 무어라 더 말도 못하고 있는데,
“그애는 외조모한테 더 두었다가 이댐에 학교 다닐 나이나 되거든 데려가지.”
하고 사나이는 아주 말끝을 맺어버렸다.
돌담 담장 너머로 개나리가 노오랗게 핀 어느 날, 돌이는 돌담 밑에서 놀고 있었다. 그는 준이가 공부할 때면 곁에서 한두 마디씩 들은 것이 기억났다. 그래 그는 지금 글공부 놀이를 하는 참이다.
“제삼십일과, 고드름. 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 고드름 따다가 발을 엮어서 각시방 영창에 달아놓아요.”
돌이는 이리저리 거닐면서 커다란 소리로 글 읽는 흉내를 내고 있는데 거기 구길이가 왔다.
“돌아!”
“응?”
“돌이 너희 엄마 시집 간다데?”
“응, 우리 엄마는 시집간다.”
실상 돌이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구길이가 그러니까 괜히 덩달아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너도 가나?”
“응, 나도 간다. 할매도 간다.”
“애…… 거짓 말.”
“참말이요. 삐…….”
돌이는 구길이 보는데 입을 한번 삐쭉하고 나서 이내 또 글공부에 대한 흉내를 내며 저 혼자서 신작로 저편으로 걸어간다.
“각시님, 각시님 안녕하십쇼, 낮에는 해님이 문안 오시고, 밤에는 달님이 놀러 오셔요.”
돌이는 준이도 말고 구길이도 말고 저 혼자서 이렇게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며 노는 것이 마음 든든하고 좋았는지도 모른다.
돌담 담장 너머로 개나리가 노오랗게 핀 어느 날, 한낮이 훨씬 겨웠을 때 돌이네 집 앞 신작로에 재목을 가득 실은 트럭이 한 대 정거하였다. 운전대에서는 예의 사나이가 다 해진 가방을 들고 나와 돌이네 집으로 들어갔다. 얼마쯤 지나서 사나이는 두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한 연이를 앞세우고 나왔다.
연이는 차에 올라서야 비로소 눈으로 돌이를 찾았다.
“복돌아!”
목멘 소리로 한마디 불렀으나 돌이는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돌아, 할매하고 있으면 내 꼬까옷 사가지고 올게.”
하고 눈물을 머금고 타이르던 돌이, 돌이는 어디로 갔는가. 차가 마악 떠나려 할 무렵 연이가 불러도 대답이 없던 돌이는 어느새 그렇게 재빠르게도 올라탔는지 차 짐 위에 올라가 자그마니 앉았는 것이 그제야 발각이 되어 이내 조수의 손으로 끄집어 내려졌다.
차가 위잉 떠나자 돌이는 기를 쓰고 트럭의 뒤를 쫓아갔으나 거리는 점점 점점 멀어질 뿐이었다.
연이는 번연히 그런 줄도 저런 줄도 알면서, 알면서도 간다. 차가 가는 대로 몸을 맡겨야만 하였다.
『백민』 14호(1948. 5); 『최인욱센집』 (선일문화사 1974)
최 인 욱
최인욱(崔仁旭)은 1920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일본 니혼(日本)대학 종교과를 중퇴했다. 1938년 단편 「시들은 마음」 이 『매일신보』에 선외가작으로 입선되고, 다음 해에 『동지』 에 「산신령」 이 가작으로 입선되면서 등단했다. 같은 해에 『조광』 에 「월하취적도」를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으며, 광복 후 「개나리」 「동방기」 「동차승」 등의 문제작을 연달아 발표했다. 초기에는 주로 동양적인 토속세계왼써정에 바탕을 둔 작품들을 썼으나 차츰 『애정지도』와 같은, 대중적 요소가 가미된 장편 역사물을 많이 발표했다. 1972년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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