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광석’이 개봉한 후에 김광석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부인 서해순에 의한 타살인 것 같이 여론이 몰려가고 있음이 개인적으로는 좀 안타깝다. 가까웠던 사람으로서 좀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다정하고 살갑던 고인에 비해서 뒤가 구린 것이 많았고, 특히 오늘 듣게 된 딸과 관련된 뉴스는 내게도 충격이긴 했다. 뉴욕에서의 부인 서해순의 행방에 대해서 여러 구설이 돌고 있음을 알고 있다. 영화의 영향이려니 한다. 김광석의 죽음이 자살이건 타살이건 간에 뉴욕에서 구설에 오른 서해순의 일탈 사건이 김광석에겐 큰 충격이었고, 그것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 공연을 주선했던 당사자인 나로서도 마음이 항상 무겁다.
22년전이다 벌써! 창립부터 함께 하면서 도움을 주었던 뉴욕 교포 청년들의 문화 단체인 '우리문화 찾기회'란 곳에서 플로리다에서 박사후 과정으로 일하고 있던 내게 연락이 왔었다. 김광석의 뉴욕 공연을 한번 개최하고 싶다고. 평소 절친한 후배들 부탁이라서 광석이에게 국제전화를 걸었고, 의외로 흔쾌히 하겠다는 답을 받았다. 그리고는 ‘우리문화 찾기회’와 광석이를 연결해 주고 난 뒤로 빠졌다. 당시 플로리다에 살고 있던 나는 안 가볼 수는 없는 일이라 비행기를 타고 추수감사절 휴가에 가족을 버리고 필라행 비행기에 올랐다. 필라 공연은 광석이의 전체 약속한 개런티를 뉴욕 공연만으로는 맞추어 줄 수 없다고 해서 내가 졸업했던 펜실베니아 대학 한국학생회에 연락을 해서 어렵게 마련했었다. 비행기로 필라델피아에 날아가서 졸업하고 1년만의 방문이라 오랜만에 후배들도 만나고, 광석이도 거의 5-6년만에 만나고, 공연도 보고.. 여기까지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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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광석이와 뉴욕으로 가야 하는데, 광석이가 밴을 몰고 뉴욕에서 필라까지 직접 운전해서 왔다는 거다. 렌트했느냐고 하니, 친구가 빌려주었다고 했다. 그런 친구가 있어? 하고 물었더니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고 했다. 그 친구가 바로 이윤성이었다. 뉴욕에서 정착해서 사업을 해서 학원도 하고 있고, 출판사도 하고 있고, 음식점에 술집까지 꽤 잘 나가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연 추최측이 공연 홍보를 위해서 교포 신문에도 광고를 내고 했더니 갑자기 광석이 고교동창이라고 연락을 해 왔다고 한다. 자기가 적극 돕겠다고.. 일단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친구니 주최측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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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석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뉴욕까지 올라가는 동안 여러 이야길 했다. 사실 한 5-6년만에 만났음에도 광석이가 이리 저리 수다 떨면서 노래이야기, 자기 활동하는 이야기, 자기 건물 자동차 이야기등 자기 이야기들을 술술 수다 떨면서 이야길 풀어놓아 주었었다. 그러면서 이 친구에 대해서도 이야길 들었는데, 자긴 고교동창으로 기억도 안 난다고 했다. 그런데 반갑다고 와서는 차도 빌려주고 호텔도 잡아주고 돈을 내주고 도와주니 고마왔던 거다. 뉴욕 가서 나도 이 친구 만나서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먹고 했는데, 머리를 바싹 밀어버린 민머리에 인상이 좀 고약했다. 무슨 조폭 나부랭이 같았던 느낌이었고. 뉴욕에 있는 후배들 말에 의하면 당시 뉴욕에서 돈은 벌었지만 평판은 별로 였던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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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가서는 나는 맨하탄에 살던 유학생 후배 중 하나의 아파트에 얹혀 살면서 며칠을 보냈고, 광석이는 퀸즈 플러싱에 있는 호텔에 머물렀었다. 이 호텔도 이윤성이 지불하고 예약해 주고 했던 호텔이라고 들었다. 추수감사절 휴가가 끝나면 내려가야 하는지라 그 이후 있을 뉴욕 공연을 볼 수 없었고, 공연 준비 상황을 같이 점검하고, 밤이면 몇 년 만에 만난 광석이와 거의 날을 새면서 술잔을 나누고 했었다. 3-4일을 어떻게 하다보니 거의 눈떠서 잠잘때까지 이 부부와 함께 붙어 다녔었는데, 다들 예상하다시피 둘 사이가 별로 안 좋았다. 음식점에서 식사하다가 광석이가 큰 소리를 내면서 서해순에게 성을 내기도 하고, 냉냉함이 항상 느껴질 정도 였다. 서해순을 난 처음 만났었는데, 약간 당돌하면서도 광석이 눈치를 많이 보고 있었고, 광석이는 무언가 매우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내가 알던 광석이는 자상하고 착한 친구였던지라 내겐 광석이의 그런 태도가 매우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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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밤에는 이윤성이가 소유한 카페에 가서 새벽까지 통음을 했다. 보스턴에서 내려온 새벽과 노찾사 활동 같이 앴던 신현중이 부부도 함께 있었고, 우리문화 찾기회 후배들도 몇몇이 있었고, 이윤성이와 이윤성이 똘마니 같은 친구도 하나 있고 그렇게 10여명의 인원이 새벽까지 마셨다. 광석이는 나하고 한테이블을 차지하고, 예전 새벽시절의 이야기부터 같이 아는 친구들 근황에, 광석이 예전 여자친구 이야기까지 참 많은 이야기들을 했다. 광석이도 기분이 좋아서 심하게 과음을 했고, 자리를 파할 때 쯤엔 만취해서는 몸을 못 가누는 상태였다. 이윤성이가 자기 밴으로 일행 모두를 호텔까지 데려다 주었다. 만취해서 정신을 못 차리는 광석이를 광석이 부인과 같은 호텔에서 묵고 있던 신현중이 부부가 부축해서 데리고 올라갔다. 나와 몇몇 일행은 밖으로 나가는 이윤성과 악수하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그리고는 호텔 로비에서 맨하탄에서 데리러 온다고 한 후배를 한 20분 넘게 기다리고 후배의 차를 타고 맨하탄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난 플로리다로 항공편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뉴욕에서 급한 전화가 왔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광석이 부인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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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석이가 사색이 되었고, 사색이 된 것은 주최한 후배들도 마찬가지 였다고 한다.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고 난리 법썩을 쳤다. 그렇게 해서 2박3일 이상을 행방불명이 되었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이윤성이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부인 서해순을 호텔 전화로 불러내어서는 그 길로 며칠 잠적을 해 버린 것이었다. 그 이후로는 공연 준비부터 끝날 때까지 거의 초상집 분위기였다고 했다. 며칠 후 버젓이 나타나서는 공연 촬영도 이 친구가 했다 한다. 나중에 듣기로는 이윤성이가 자신이 쓴 비용도 청구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뉴욕은 교포 사회가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리 크지 않다. 한 집 건너면 소식들을 듣는다. 1년 후쯤에 일이 있어서 들린 뉴욕에서 들었던 충격적인 이야기는 광석이가 그렇게 세상과 이별하고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았을 때 서해순이 뉴욕에 와서 이윤성과 오래 밀회를 즐기고 돌아갔다고 한다. 서해순이 그런 여자인 것은 그래서 이미 알고 있던 바이다. 하지만 과연 남편과 딸을 살해하기까지 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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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일어난 추문에 대해서는 한국에 와서 광석이가 죽은 후에 안치환을 통해서 내가 알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이야길 해 주었지만, 그 일이 죽음과 직접 관련되어 있는 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김광석의 사생활과 평판에 관련된 일이기도 했고 해서 죽음과의 직접적 연관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다른 여타 사실이 밝혀지지 이전까지는 조용히 있는 것이 광석이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광석이 입을 통해서 지인들도 대략은 알고 있었었다. 더 이상 크게 보탤 이야기도 없었다. 이후 뉴욕 후배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팀에서도 광석이 죽음 얼마 후에 초보 취재를 한번 다녀갔다가 보도하기엔 애매하다 결론하고 포기한 적도 있다 했었다 들었다. 난 아직도 미국에 있던 일이 광석이 죽음 원인의 한 요소로 작용했을 수는 있지만, 이 사건 때문만이라던가 더 나아가서 이 사건으로 자살 타살을 결론 지을 수 있는 일도 난 아니지 않을까? 그래서 조심스럽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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