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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피낭 3 - 꼴리우흐에서 해변을 구경하고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다!
2026년 5월 13일 바르셀로나 남쪽 시체스 Sitges 에서 로컬 기차를 타고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다시 고속열차인 아베 열차로 북상해서 프랑스 페르피낭에 내려서
호텔에 배낭을 맡긴후 로컬 기차로 20분을 동남진해 꼴리우흐 Collioure 에 도착합니다.
꼴리우흐역 Gare de Collioure 에 내려 아히느띠드 마이욜 가를 걸어 내려오다가 벼룩시장을 구경하고는
골목길에서 예쁜 인테리어를 한 선물가게와 옷집이며 카페와 레스토랑들을 구경하며 해변에 도착합니다.
여기 꼴리우흐 Collioure 의 해변에는 오른쪽은 성채가 보이고 그 사이 긴 모래사장이 있으며
왼쪽으로는 Our Lady of the Angels Church 를 지나 돌출된 방파제
끝에는 등대 Collioure Lighthouse 가 보이는데 바람이 너무 심해서 가는 도중에 돌아섭니다.
해변에 매우 견고한 성채는 왕궁 Royal Castle of Collioure 으로 중세에 북아프리카
튀니지와 알제리에 살던 베르베르인 이슬람 해적들이 이탈리아와 남 프랑스
에다가 스페인 연안을 약탈하고 다니던지라... 방어를 위해 육중한 성채가 필요했습니다.
꼴리우흐 왕궁 Royal Castle of Collioure 은 멋진 파노라마 전망을 가진 고대 성곽으로, 피레네-
오리엔탈의 지중해 연안에 위치하니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후 왕실 법원으로 변모했고 그후 스페인에서 온 난민들을 위한 감옥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몇년 전에 제노바 남쪽 이탈리아 서북부 리구리아 해안의 그림같은 다섯개 마을인 친꿰 테레
Cinque Terre 에서 몬테로소 Monterosso al Mare 마을에 갔는데 바닷가 절벽 위에
높은 망루가 세워진걸 보았으니 이슬람 해적선이 먼 수평선에 나타나는지 감시하던 곳입니다.
476년에 서로마가 게르만족 용병 오도아케르의 배신으로 망한후 수십년 만에..... 동로마 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를 재정복하지만 565년에 죽고 3년후 랑고바르드족
이 침입하니.... 이탈리아는 랑고바르드와 동로마 (비잔틴) 세력이 혼거하는 불안전한 상태로 됩니다.
이 무렵에 아라비아에서 일어난 모하메드의 이슬람 세력이 커져 동로마 비잔틴이 지배하던 고도
다마스크스를 점령해 우마이야 왕조를 세우고는 서진해 642년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함락하고, 698년에 이르면 리비아를 거쳐 튀니지와 알제리 등 북이아프리카를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고는 710년에 북아프리카 모로코를 제압한 이슬람 사라센인들은 지중해를 건너 이베리아 반도에
상륙해서는 스페인 땅에 세워졌던 게르만족의 서고트 왕국을 정복하고 기세가 오른지라....
내친김에 피레네 산맥을 넘은 사라센인들은 732년에는 프랑스 파리 근교 푸아티에 까지 북상합니다.
게르만 프랑크 왕국에 저지당한 사라센인들은 후퇴해, 스페인 반도 대부분을 1492년 까지 무려 780년간이나
지배하는데.... 652년에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출항한 이슬람 사라센 해적들은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큰 도시 시라쿠사를 습격해 800명의 시민들을 납치해 와서는 노예로 팔았으니, 유럽의 왜구들 입니다.
이후 698년에 튀니지의 카르타고를 함락한 사라센인들은 2년 후에는 동로마 비잔틴
제국 영토인 람페두사섬을 습격했으며.... 세월이 흐른 후에 사르데냐섬과
코르시카섬을 습격하는 해적들은 이젠 더 이상은 아라비아 출신 사라센인은 아닙니다?
이제는 북아프리카 토착민으로 무슬림이 된 무어인과 베르베르인들이 주를 이루는데,
이 해적들이 티레니아해를 건너 이탈리아 땅을 습격하기 시작하니... 서로
분열되어 혼거한 랑고바르드 왕국과 비잔틴 제국은 해적들을 방어할 힘이 없었습니다.
이슬람 해적들의 약탈에 견디다 못한 기독교 로마쪽에서 반격을 하자 그 보복으로 무어인 해적들은 829년
튀니스를 출항해 치비타베키아에 상륙했고.... 로마로 진격해 성 밖의 "베드로 성당을 약탈" 합니다.
때문에 해안가 도시나 마을 주민들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바닷가에 튼튼한 탑인 망루를 세웠습니다.
이탈리아 서부 친꿰테레에 세워진 망루는 “토레 사라체노 (사라센의 탑)” 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훗날 교황청과 베네치아, 제노바, 에스파냐, 몰타 기사단이 1571년에 300척의 대 함대를
모아 이슬람을 격파한 레판토 해전후에야 이탈리아는 비로소 바다의 자유를 되찾게 되는 것이지요?
830년에는 북아프리카에 거주하는 이슬람 베르베르인 해적들에 의해 시칠리아의 거대
도시 팔레르모가 함락되었으며...... 이후 메시나를 점령하고 840년에는 나폴리와
동맹을 맺은 이슬람 해적들이 동쪽 아드리아해를 북상해 베네치아 해군을 격파 합니다.
849년이 되면 북아프리카 이슬람 해적들은 친꿰테레 남쪽에 루니라 불리웠던 라 스페치아에 상륙해 도시
를 폐허로 만든 후에는.... 친꿰테레 마을을 거쳐 북상해 제노바 인근과 남프랑스 까지 약탈을 합니다.
이에 로마 교황의 요청으로 프랑크 (프랑스 + 독일) 제국의 루도비코 황제는 서기 860년에 이탈리아에
들어오지만 남 이탈리아에서 이슬람 사라센 해적들에게 패하고 포로가 될뻔하였던 것이지요?
이후 이슬람 해적들의 약탈이 시도 때도 없이 계속되자.... 로마 교황은 좌절해 무력대결을 포기합니다.
교황은 "1년간 이탈리아를 약탈하지 않는다" 는 조건으로 877년에는 은화 2만 5천냥을 지불합니다! 하지만
다음해 50년간 이슬람 세력에 맞서 농성하던 시칠리아의 시라쿠사가 마침내 함락되고 도시의 교회는
모스크로 개조되자.... 로마 교황은 다시 비잔틴 제국에 도움을 청하나 비잔틴 선단은 해적들에게 패배합니다.
해적의 습격을 재빨리 발견하고 도망치려 경보를 울리는 망루라면 튼튼하게 지을리는
없겠는데..... 1453년에 이슬람 오스만 터키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해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킨 후에 북아프리카 해적선들이 장착한 대포를 대비하고자 함이었을라나?
중세의 여기 지중해 바다는 모로코 에서 리비아 까지 트리폴리와 튀니스, 알제 등의 베르베르인
이슬람교도들이 오스만 투르크를 등에 업고 기독교세계를 약탈하던 “해적의 시대”
였으니.... 동아시아에서 왜구들이 고려와 조선에 중국 명나라를 약탈했던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이후 오스만 튀르크가 강성해져 발칸반도를 점령하고 헝가리를 지배하면서 오스트리아 빈을 2차례나
포위하는 중에..... 바다에서는 저 북아프리카 해적들이 오스만의 정식 해군이 되어
기독교 국가들과 여러차례 해전을 치르기도 했으니 여기 해안에 대포를 배치할수 밖에 없었나 봅니다?
지중해 바다의 주인이 된 이슬람 해적들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페인 해안에서
무차별적으로 기독교도를 잡아 노예로 파니.... 패배하기만 하던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은 마침내 1571년에 대규모 선단을 구조직하기에 이릅니다.
교황청과 베네치아, 제노바, 에스파냐, 몰타기사단과 사보이 공국은 갤리선 203척에 범선 80척 함대를 구성
하니 제노바의 안드레 도리아는 좌익군 총사령관으로 출전을 하는데.... 이에 비해 오스만 투르크가
동원한 북아프리카 해적 군단은 갤리선 270척으로 오스만 제국의 그리스 항구인 "레판토" 에서 출전합니다!
이슬람 오스만 투르크 함대는 저 바르바리고가 이끄는 베네치아 함대와 안드레
도리아가 지휘한 제노바 수군의 협공을 받아 대패하니.......
서지중해 바다는 비로소 740년만에 기독교 유럽인들의 바다가 되었던 것이지요!
꼴리우흐에서 유명한 레스토랑 Casa Léon 은 생선, 해산물 및 육즙이 풍부한 스테이크가
특징인 요리를 내니, 베이를 바라보는 테라스에서 그림 같은 경치를 감상하며
식사를 즐길수 있는데..... Tripadvisor 및 Google 플랫폼에서 좋은 평판을 얻고 있답니다.
레스토랑 Chez Simone 은 타파스, 지역 메인 요리 및 와인을 제공하는 아주 매력적인
식당으로, 야외 테이블에서는 멋진 바다 전망과 웅장한 성이 잊을수 없는 식사
경험을 주니... 맛있고 세련된 코코넛 밀크에 조리된 홍합과 같은 요리를 즐길수 있습니다.
꼴리우흐 맛집 Cote Faubourg (피자 & 햄버거 집) 은 구글 평점 4.7 로 부팔라 치즈 피자, 브룩클린
버거 더블, 체다치즈와 베이컨을 뿌린 감자 튀김이 맛있는데버거는 수제빵인 듯 하고 고기
패티도 더블이라 든든하며 피자도 도너가 얇고, 토핑이 맛있으니 탄산수, 콜라 포함 총 38유로 입니다.
하지만 유명하다는 레스토랑 Casa Léon 이 빨리 찾아지지 않는지라 포기하고는 일반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옆 테이블에서 먹는 소고기 요리를 시키고 생맥주를 겻들여
점심을 먹는데..... 우리는 맥주를 마시지만 옆 테이블은 와인 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봅니다.
문득 ‘저스트고 파리’ 저자인 정기범씨가 동아일보에 쓴 “로제 와인에
얼음 띄워 마시는 프랑스인들” 이라는 기사가 떠오릅니다.
여름철 프랑스 파리의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가 거절당하는 일은 의외로 흔한데 스페셜티
카페가 아닌 동네 카페일수록 그렇다. 프랑스인들은 차가운 커피를 즐기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여름만 되면 로제 와인에는 얼음을 몇개씩 띄워 마신다. 남부 노인들이
테라스에서 얼음이 든 로제 와인을 천천히 마시는 풍경은 프랑스에서는 낯설지 않다.
한국인의 시각에서는 다소 의아하다. 와인에 얼음을 넣는 것은 금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로제는 원래 부터 복잡하게 분석하며
마시는 술이 아니었다. 여름의 긴 오후를 오래 즐기기 위한 생활의 음료에 더 가깝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로제는 특별한 날의 와인이 아니다. 햇살이 길어지는 계절, 친구들과 테라스에 앉아
오래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기 위한 가장 프랑스적인 여름 술이다. 그래서 얼음을 넣는
것도 자연스럽다. 와인의 섬세함을 해친다는 생각보다 더 시원하게, 더 오래 즐긴다는 감각에 가깝다.
로제 와인은 왜 분홍색일까. 프랑스어 rose 는 ‘장밋빛’ ,‘분홍빛’ 을 뜻한다. 이름 자체가 색에서 나온
셈이다. 실제로 로제는 레드 와인용 적포도로 만든다. 다만 레드 와인 처럼 포도 껍질과 오래
발효하지는 않는다. 색소가 들어있는 껍질과 짧게만 접촉한뒤 분리하기 때문에 연한 분홍빛이 남는다.
그래서 로제의 색도 다양하다. 프로방스 로제 처럼 거의 흰 와인에 가까울 정도로
옅은 스타일도 있고, 타벨 (Tavel) 처럼 붉은 기운이 강한 로제도 있다.
프랑스 와인 애호가들이 색만 보고도 어느 지역 스타일인지 짐작하는 이유다.
프랑스 로제 문화의 중심은 남부 프로방스 지역이다. 햇빛과 지중해 바람 아래에서 만들어지는
프로방스 로제는 산뜻하고 허브 향과 미네랄 느낌이 특징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여름만 되면 자연스럽게 로제를 찾는 이유 역시 이 지역의 생활문화와 연결돼 있다.
최근에 로제가 미식 장르로도 발전하고 있다. 방돌 (Bandol) 지역 로제는 무르베드르 (Mourvedre)
품종으로 만들어져 구조감이 있고 음식과 조화가 뛰어나다. 샤토 드 피바르뇽 (Chateau de
Pibarnon) 이나 도멘 텅피에 (Domaine Tempier) 같은 생산자는 유럽 미식가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흥미로운 것은 로제가 한국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파리 한식당에서도 프랑스 손님들은 날씨가
따뜻해지면 자연스럽게 로제를 주문한다. 닭강정이나 제육볶음 처럼 매콤하고 단맛이 있는 음식과
좋은 조화를 보인다. 차갑게 마시는 로제의 산도와 과실감이 한국 음식의 양념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아직도 “고기에는 레드 와인” 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이 여름마다
로제를 찾는 모습을 처음에는 낯설게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몇잔 마시다 보면 금세 이해하게
된다. 로제는 단순한 분홍색 와인이 아니라 프랑스 사람들이 여름을 보내는 방식 자체에 가깝다는 사실을.
음식을 얘기하다 보니 문득 저스트고 파리 저자인 정기범씨가 동아일보 ‘정기범의 본 아페터’
라는 칼럼에 쓴 “ 도로 위의 식탁, 프랑스의 ‘기사식당’ ” 이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여행 유튜버 ‘곽튜브’ 가 이끄는 ‘곽준빈의 세계 기사식당’ 이란 방송 프로그램이 있었다. 기사식당을
방문하고 현지인과 친구가 되는 과정을 다뤘다. 1년여전 제작진으로 부터 프랑스 기사
식당을 주제로 한 촬영 제안을 받았고, 평소 흥미있게 보고 있었던터라 현지 코디네이터로 참여했다.
촬영은 화물차 운전사들이 주로 이용하는 시골의 국도변 기사식당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유럽은 국경을
넘나드는 장거리 운송이 일상인만큼, 화물차 운전사들은 한 번에 수백 km 를 이동한다. 거대한
트럭을 몰고 도심으로 들어가 식당을 찾기는 어렵고, 저녁에는 차량 안에서 잠을 해결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화물차 운전사들은 그저 식당이 아니라 샤워와 휴식이 가능한 시설을 찾는다. 고속도로
휴게소도 있지만 수십에서 수백대 대형 트럭을 동시에 수용할수 있는 곳은 많지않다. 때문에
기사들은 넓은 주차공간을 갖추고 식사, 샤워를 동시에 해결할수 있는 국도변 식당을 선호한다.
프랑스 남부 도시 툴루즈 인근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한 화물차 운전사의 집에서
가족들과 아침 식사를 함께 한뒤 그의 일상에 맞춰 트럭에 올라 길을 나섰다.
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은 데올 인근의 ‘레스칼 빌라주 (L’Escale Village)’ 였다.
이곳은 유럽 각지의 트럭이 모여드는 최대 규모의 기사식당 중 하나다. 550석 규모 식당과 대형트럭
220대를 수용할수 있는 2만 5000㎡ 주차장을 갖추고 있다. 장거리 운전자뿐 아니라 지역주민
까지 찾는, 식사와 휴식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하루에 800∼1200식, 많을 때는 1500식까지 준비한다.
프랑스의 기사식당은 한국의 휴게소와 다르다. 프랑스답게 식사가 하나의 코스로 이어진다. 15∼20유로면
전식과 본식, 치즈나 디저트, 커피까지 갖춘 한끼가 완성된다. 일과를 마친뒤 식사와 함께 와인
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한다. 빠르게 허기를 채우는 곳이 아니라 긴 여정 속에서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 문화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한때 프랑스 전역에 3500곳에 달하던 기사식당은
이제 300곳 안팎만 남았다. 고속도로 체계와 운전 환경의 변화, 물류산업의
효율화가 겹치며 수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전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파리 시내에도 ‘셰 레옹 (Chez Lon)’, ‘레 마르셰 (Les Marches)’ 등이 기사식당 체인인 ‘를레 루티에
(Relais Routiers)’ 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비록 대형 트럭이 줄지어 서있는 풍경은
아니지만 합리적인 가격에 푸짐한 식사, 그리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식탁이라는 가치는 여전히 남아있다.
차량을 빌려 프랑스를 여행하는 이들이라면 고속도로 휴게소나 국도변 기사식당에 한번쯤 들러
보기를 권한다. 그곳에서 한끼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사라져 가는 프랑스
도로문화의 마지막 장면인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식탁에서 즐기는 역사적인 경험이 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