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_푸른 독방 ●지은이_강경아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18. 11. 1 ●전체페이지 136쪽
●ISBN 979-11-86111-56-7 03810/신국판변형(127×206) ●값_ 10,000원
●문의_(044)863-7652, 070-8877-7653, 010-5355-7565 ●입고 2018. 10. 31
긴요한 골목 끝, 난간 위의 꽃들
강경아 시인의 첫 번째 시집 『푸른 독방』이 '시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강경아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우리는 문학이 하는 일을 목도하게 된다. 게다가 그 일이 때론 분명하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믿게 된다. 작은 목소리의 발성(發聲)과 발아(發芽) 그리고 발화(發花)야말로 오늘 우리 문학의 쓸모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거창한 목표와 목적만을 슬로건화하거나 고급의 정신만을 내세운다면 그것은 이미 문학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도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살이, 살림살이, 그 안에서 부딪치는 사소한 불편함들, 따스한 진실들 혹은 깨어진 진실, 소외된 이웃들의 고통과 한숨, 그늘 한 자락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작은 관심과 애정이야말로 문학이며, 문학이 낳고 돌보는 문학의 일이 아닐까.
문패는 플러그가 뽑힌 채 돌아누웠다
거실 모퉁이를 한 겹씩 벗겨내면
울컥 새어 나오는 어둠들
착각과 혼돈이 팽팽하게 충돌하는 곳에
짓밟힐수록 더 빳빳해지는
당신의 붉은 혀와 오래된 두 귀가 있다
조울을 앞세워 불안을 지피는 밤이 오면
애매모호한 상형문자들만 먼지처럼 쌓인다
소파 위를 군림하길 좋아하는 당신
무기력을 조종하는 채널을 돌린다
우울을 닦아내듯 징징거리는 볼륨 소리
잘 개키지 못한 감정들이 더욱 또렷해져 온다
무늬 없는 저 표정이 나를 밀어낸 증표라면
까다로운 궁리들만이 체위를 바꾸며 다가온다
또르르 발길에 차이는 투명한 알람 소리
밤새 다독이지 못해 눅눅해진 이름들
껍질이라도 잘 벗겨 베란다에 내걸어야 할 일
다시,
꺾인 무릎을 세우게 하는 내겐 너무나
딱딱하고도 거룩한 독방
—「푸른 독방」 전문
다행히 위의 시적 주체에게 독방이란 아직 신성이 남아 있는 “거룩한”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무기력과 우울, 조울과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지만 시적 주체에게는 몸을 눕히고 휴식할 공간이 있어 그나마 “다시/꺾인 무릎을 세우게 하는” 귀중한 공간으로 독방이 남아 있는 것인데 이는 아직 독방이 생명력과 쓸모를 잃지 않고 있는 것이리라. 포근하고 푹신한 아늑한 공간은 아닐지라도 “딱딱하”지만 “거룩한 독방”이 있어 시적 주체는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라 고백하고 있다. 방에는 햇빛 대신 “울컥 새어 나오는 어둠들”이 내려앉아 있고 “착각과 혼돈이 팽팽하게 충돌하”며 불안으로 소용돌이치고 있을 지라도 시적 주체는 그럴수록 이를테면 “짓밟힐수록 더 빳빳해지는” “당신의 붉은 혀와 오래된 두 귀가” 생겨나는 아이러니에 대해 말한다. “붉은 혀”는 말하는 혀이며, “오래된 귀”는 여전히 듣는 귀이며 아마도 그것은 시인의 혀와 시인의 귀일 것이다. 시인은 외지고 쓸쓸한 “거룩한 독방”에서 오히려 소외 된 많은 것들에 공감하고 차단된 신음소리들에 반응하고 함께 고통을 느끼는 것이리라. 아픈 몸, “꺾인 무릎을 세”워 일으켜 종국에는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와 당당하게 시로 발화하게 하는, 시인의 목소리와 시선이야말로 꽃 이며 향기이며 열매가 아닐까.
까맣게 타들어 가는 돼지껍데기처럼
밤새 질겅질겅 씹혔다
타닥타닥 튀는 저 살아 있는 꿈틀거림 속에서
타전되는 무중력의 푸른 외침
뒤집자
뒤집자
뒤집어보자,
짧고 여리게 터지는 아직 내겐 쓸 만한 희망들
눈 속에서 더 단단해진 그 경쾌한 방백(傍白)들
생의 반대편 안자락까지 노릇하게 달궈지는 눈빛들이
환하다
—「서시장, 그 틈새 소리를 굽다」 부분
“까맣게 타들어 가는 돼지껍데기처럼” 불판 위에서 이리저리 튀는 기름 거죽들……. 살아보겠다고 몸 뒤집는 존재들, 존재들의 비명이야말로 “틈새 소리”이며, 그들 이 몰아쉬는 거친 숨소리일 것이다. “고시원 단칸방 어린 남매의 시린 발들이”, “식당 그릇에 묻혀버린 아내 의 뒷모습”이 가쁘게 내어 쉬는 야윈 숨소리, 탄식의 불안정한 호흡, 그 불편하고 아픈 “틈새 소리를 굽는” 자, 시인(詩人). 시인은 언제까지나 그들에게 “푸른 외침”을 멈추지 않는다. “뒤집자”, “뒤집자”, “뒤집어보자”며 생 을 향해 타전하는 생생한 “희망”의 메시지. “참혹한 안 부”(「낯선 안부」)일지언정 묻고 또 묻고 묻는 목소리. 그 목소리의 불편한 발화가 시(詩)다.
강경아 시인의 시는 그렇게 생물(生物)의 언어로 피워낸 어화(漁花)이다. “거룩한 독방”을 나와 낯선 골목 어쩌면 낯익은 슬픈 골목에 들어선다. 골목마다, 난관(難關)이고 난간이다. 난관 과 난간 사이 아슬한 벼랑 위에 그 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비린내 가득한 바닷가 벼랑, 파랑이 쉴 새 없다. 파랑에 비틀거리는 생의 어귀 여기가 당신의 골목이다. 어쩌면 가장 “거룩한” 어쩌면 가장 “푸른” 절망의 골목, 시의 행간(行間)에 머물러 마음껏 비틀거려라. 그 골목이 당신을 붙잡아줄 것이다.
■ 차례
제1부
해물순두부·11
허공 한 채·12
길을 묻는다는 것·14
와불 한 쌍·16
아스트라에아·18
짜장면·20
헬로우 E.T·22
남산동 영순 씨·24
낯선 안부·26
긴요한 골목·28
어떤 출판기념회·30
외인출입(外人出入)·32
빗소리·34
숨은그림찾기·36
제2부
오월·41
바다를 굽는, 그 여자·42
판화를 찍다·44
섬진강 애(愛)·46
신(新)정읍사·48
상처·50
비렁길에서·52
방생·54
왕관해마·56
백야야, 분교야·58
대경도(大鏡島)·60
당신의 왕국·62
흐린 날의 수학 시간·64
그리움을 견인하다·65
제3부
여수 밤바다·69
관계 세탁·70
아웃사이더·72
푸른 독방·74
달팽이 모자·76
겨울 표정·78
Rain 증후군·80
우두커니처럼·81
어떤 독백·82
호모 인터네티쿠스·83
사와디카·84
빨간 구두의 금요일·86
마리오네트·88
제4부
벚꽃 흩날리는 날에는·93
목련꽃 그 남자·94
용산구 신계동 산 27번지·96
나들이·98
복숭아 K씨·100
서시장, 그 틈새 소리를 굽다·102
두더지게임·104
김치별곡(別曲)·106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108
꽃물이 든다·110
트러블 메이트·112
해설·115
시인의 말·135
■ 시집 속의 시 1편
벽과 벽, 좁은 길 틈 사이에서 나는, 자주 길을 잃는다
가래가 들끓는 쇠기침 소리는 안개 낀 골목의 후렴구다 전신주 외줄을 타며 율(律)을 맞추는 이 변주곡은 폭설 뒤 고요처럼 아랫목에서 절정을 이룬다 진성과 가성을 오가며 의식이 혼미해질 때쯤 골목의 계절은 열린다
키 낮은 작은 지붕들이 한숨을 짙게 내려놓는 밤
크레인 난간에서 고공낙하의 비행을 꿈꾸는 당신의 울분은 푸른 목청 앞에서 빈번히 무너졌다 수없이 꿇었던 무릎들과 마주하는 설움은 구겨진 고지서 뭉치로 귀를 틀어막았다
골목의 수피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결핍의 화음(和音)들
벗겨진 페인트 껍질이 쇠문에 바짝 붙어 찬바람에 너덜거렸다
결이 고운 눈물의 길을 따라 연대하며 걸어 오르면
깨진 가로등 불빛도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습한 이끼들의 무표정은 전염성이 강해
타이록신캡슐 한 알
욱신거리는 골목의 뼈마디에 털어 넣는다
—「긴요한 골목」 전문
■ 시인의 말
찬 바닥을 들추면
울퉁불퉁 주름진 골목이
결핍의 꽃들로 화음(和音)을 이룬다
더는 내디딜 곳이 없는 벼랑 끝에서
골방의 틈새 소리는 더 향기롭다
적막이 사무치면 바다가 되는 방
한 줌의 햇살과 바람, 구름
물빛을 닮은 고요가 흐르는 방
생의 마지막 뜨거움까지 길어 올리는
지독하고도 거룩한 독방
수인번호 20181101
독방의 햇살은 아직 딱딱하다
2018년 가을 강경아
■ 표4(약평)
강경아 시의 이미지를 따라가면 마르고 딱딱한 것들이 가득 찬 세계를 만나게 된다. “바싹 마른 보름달”로 대표되는 이 세계는 생명의 활기를 없애버리는 죽음의 세계, 무의미의 세계다. 이 세계 속의 인간 은 사물화된 모습으로 갇혀 있거나, 방치되어 있거나, 고립되어 있다. 유폐적 존재로 전락한 현대인의 모습을 형상화함으로써 강경아의 시들은 당대의 반생명적 체제의 폭압적이고 비정한 사태를 풍자 한다. “아임 낫 파인 통조림”은 오늘날 존재의 무화(無化)를 겪는 대 다수 익명화되어가는 존재들의 절규이고, “꿈틀꿈틀 독설 같은 저 푸른 뿔들의 발악”은 정당한 생명의 활기를 잃고 사는 존재의 발악이다. 특히 이것들은 이중으로 억압을 받는 당대 여성들의 분노의 표현이다. 때문에 그녀의 시는 타락한 세상에 대해서는 우화와 아이러니로 풍자를 감행하고, 억눌린 존재에 대해서는 그 생명의 발산을 위해 난장과 일탈의 해학을 풀어놓는다. 한바탕 우스꽝스런 언어의 굿판과 남도의 신명을 통해 민중의 끈끈한 생명력을 담아낸다. 카니발적 상상력으로 당대 자본주의 체제가 갖는 비인간화에 저항하는 자리에 강경아 시의 특색이 있다. _김경복(문학평론가, 경남대학교 교수)
시집을 펼치면 우리는 제일 먼저 강경아 시인이 견인하는 그리움과 만나게 된다. 그녀에게 그리움은 바삭하게 구워진, 달콤한 비스킷 같은 것. 그래서 그리움은 “다룰수록 쉽게 부서지는” “서걱거리는 감 정”(「그리움을 견인하다」)이다. 비스킷을 그리움으로 등치시키는 언 어적 집중은 여수 밤바다의 파도를 “메밀꽃이 하얗게 피어”(「여수 밤바다」)난다고 그려낸 것과 같은 묘사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뿐만 아 니라 밤이 오면 “무기력을 조종하는 채널”을 돌리며 군림하는 것 같지만, “껍질이라도 잘 벗겨 베란다에 내걸어”(「푸른 독방」) 주지 않으면 안 되는 당신들을 읽어내는 섬세한 시선, 그리고 “바지 끝단에서 묽게 흘러나”오는 신음에 귀를 기울이는「관계 세탁」을 비롯해 “정박 할 항구도 없이 고단한 의자”인 생선장수의 일상을 그린「남산동 영순 씨」등 삶의 공간에서 뽑아낸 언어의 풍경들은 곡진하기 그지없다. 지독한 마음의 병을 시가 아니라면 우리는 어디서 치유할 것인가. 강경아 시인은 온갖 통증이 들끓는 일상의 단면이나 내면의 풍경 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생활 세계의 공간을 의미의 장소로 변주해 보여준다. _배한봉(시인)
■ 강경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2013년 『시에』로 등단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시에문학회, 여수화요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독서논술 교사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첫댓글 강경아 시인의 첫 번째 시집 『푸른 독방』이 '시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시에 후원 회원님께는 다음 주중 발송 에정입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가슴이 벅차네요~~
이런 날이 저에게도 오네요^^
많은 분의 수고로움으로 정성이 가득한 시집이 되었습니다. 몸둘바를 모르겠어요~
시간 되시는 문우님~
여수밤바다로 초대합니다^^
여수의 푸른독방에 이날만큼은
갇혀도 좋을 듯 합니다~^^
사룽합니다~♡♡
내 카페 신간 시집 코너에 소개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