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종교적 소재나 주제가 있는 영화가 꽤 있었는데, 말법시대여서 그런지 2000년대 이후는 좀처럼
그런 영화를 접하기 쉽지 않습니다. 오늘 문득 떠오른 종교영화가 있어 몇 자 적어봅니다. 영화 <미션>입니다.
1750년, 남미의 오지로 선교활동을 떠난 ‘가브리엘 신부’(제레미 아이언스) 일행.
그들은 신비로운 폭포 절벽 꼭대기에 사는 원주민 과라니 족의 마을에 교회를 세우고 이들과 함께 교감하는 데 성공합니다. 한편, 악랄한 노예상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는 우발적으로 자신의 동생을 살해하게 되고, 죄책감과 절망에 빠진 그에게 ‘가브리엘’ 신부는 함께 원주민 마을로 선교활동을 떠날 것을 권합니다. ‘멘도자’는 자신이 매매하던 과라니 족의 순수한 모습에 진심으로 참회하며 헌신적으로 신부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개봉하던 해 아버지, 오빠와 함께 호암아트홀에서 봤었습니다. 신부들의 감동적인 선교활동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아버지와 이 영화를 함께 봤다는 기억만으로도 작품성, 완성도를 차치하고 제 인생 최고의 영화가 된 작품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영화를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1990년대 후반 돌아가셨고,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속상함 때문인지 그리움 때문인지 모를 감정 때문에 다시 보기를 미뤄두었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까닭인지 올해(2017년) 여름, 마음을 내어 다시 보았습니다.
영화에서 제 눈에 들어온 인물은 멘도자(로버트 드니로) 였습니다. 그는 살생도 아닌 살인을 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어떤 깨달음이 있어 스스로 고행의 길을 택합니다. 그것은 일부러 무거운 철물더미를 자신의 몸에다 묶어 폭포 아래서부터 맨 위까지 끌고 올라가는 것이었죠.
주변에서 아무리 말려도 그의 고행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과라니 족의 부락까지 무사히 도달하게 됩니다. 원주민들은 노예 상인인 그를 알아보고 분탄해 했습니다. 하지만 가브리엘 신부의 설득으로 과라니 족은 멘도자를 받아주고 그의 몸에 걸려있던 고철 더미를 날카로운 비수로 끊어 냅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강물로 던져버립니다. 이에 멘도자는 마침내 눈물을 터뜨리고 맙니다 .
종교영화는 아니지만 주제적 측면에서 같이 보면 좋을 영화 종이달(2015). 이 영화는 은행에 근무하면서 고객의 돈을 1000억대까지 횡령한 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일본의 버블경제 시기 때 한 몫 단단히 챙긴 중년층은 노년층으로 접어들며 은행이자와 펀드로 돈을 굴리며 살아가지만 언제 다시 경제가 나빠질지 몰라 쓸 줄은 모르고 그저 움켜쥐기만 합니다. 그러면서 젊은층은 무능력하고 게으르다며 비판, 질타합니다. 그 중간에 낀 세대인 주부 우메자와(미야자와 리에)는 참으로 기특(?)하지만 어리석은 생각을 합니다. 부유충의 돈을 정말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하고 말입니다. 문제는 그 방식인데 말입니다. 사실 그런 생각의 배경에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누군가의 노동력을 착취해 부유함을 누렸다는 죄책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시절, 그녀는 아버지의 지갑에서 돈을 훔쳐 가난한 나라 어린이들에게 기부를 하곤 했었습니다. 고객의 돈을 횡령해 필요한 사람에게 쓰게 한다는 아이디어의 시작은 거기에서 비롯된 거였습니다. 물론 그 필요한 사람이란 자신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그 끝은....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합니다.
은행상사로부터 횡령을 의심받는 순간의 우메자와(미야자와 리에)
두 작품 다 실화이고, 공통점이 있습니다. 죄의식에 대한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참회에 해당하는 부분이죠.
사람들은, 나는 죄의식을 어떤 식으로 다루어왔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멘도자처럼 남이 끊어내줄때까지 죄의식을 달고 다니거나 결코 끊어내지 못하거나, 우메자와처럼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해석해서 진정한 참회에 이르지 못하거나... 많은 사람들이 지혜롭지 못한 참회에 오랫동안 자신을 묶어둡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삶을 바꾸지 못하는 참회란 설령 그것이 참회일지언정 <지장경> 4품에 나오는 ‘마치 물고기가 그물 안에 있으면서 흐르는 물 속에 있는 줄로 아는 것과 같이 장애와 액난의 그물에서 벗어났다가 또 다시 걸리고 만다’는, 업보로 인한 윤회와 같은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스님께서는 기도와 수행의 궁극적인 목표는 ‘운명을 바꾸는 것’이라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제 개인사를 되돌아보며 ‘어리석은 참회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운명을 바꾸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첫댓글 영화같은
실화 이야기 이군요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좋은 글 감사합니다. _()_
감사합니다.
저도 보고싶은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