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글은 몇 년 전부터 반재경 전도사님이 작성한 글로, 매년 교정 및 첨삭하여 올리고 있습니다. ]
"말만 하면 되나?"
물론 말만 해선 안 되고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만 하는 것"도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다들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려 해도 사람들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마 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눅 6: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위의 구절들은 마음에 악이 가득하면 악을 말하고, 마음에 선이 가득하면 선을 말한다는 맥락이기 때문에 쉽게 지나칠 수 있지만 선과 악뿐만 아니라 절망, 희망, 부정, 긍정, 등등 우리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마음에 가득한 것들에 대해 100% 책임이 있는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과거의 경험, 환경 등으로 인해 원치 않는 것이 마음에 쌓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음이 상한 자들을 고치러 오신 것입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은 매우 중요한데 마음에 가득한 것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니 말입니다.
여기서 저는 영혼몸의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은 혼의 영역이지만 말씀으로 가득한 우리 영은 혼보다 더 상위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상해있을지라도 새롭게 된 우리의 영 안에는 이미 영이요, 생명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합니다(요 6:63). 그래서 내가 현재 마음으로 믿지 못하는 말씀이라 하더라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씀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의지적으로 믿지 않으려는 것 말고 믿기를 원하나 믿지 못할 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의 이러한 주장과 설명이 때로 어폐가 있는 듯 보이는 이유는, 마음과 마음의 기능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믿기도 하고(롬 10:10) 의심하기도 하며(막 11:23) 우리를 책망하기도 합니다(요일 3:21). 그래서 믿으면서도 동시에 의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막 9: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의심하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귀신들려 고생하는 아이의 아버지가 한 말입니다. 의심하면서도 동시에 믿기 원하는 마음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예 믿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 아버지가 예수님께 도우심을 구하자 예수님은 그 귀신을 꾸짖어 떠나게 하십니다. 제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주제, 우리가 말을 고치고자 하지만 마음에 가득한 것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저 아버지처럼, 솔직하게 나아가면 됩니다. "주님, 소망하고 싶은데 절망뿐입니다. 믿기를 원하는데 의심뿐입니다. 저를 도와주셔서 당신의 약속을 믿을 수 있게 하소서!" 그러면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주께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겸손한 자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만한 자는 절망과 의심만을 계속 남발할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을 바꾸고 싶으나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자꾸 불거져 나올 때, 교만이 아닌 겸손을 택하여 주님의 한량없는 도우심을 받아 승리합시다!
사랑과 긍휼이 많으셔서 우리의 모습에 제한받지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