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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아버지의 이름을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6:9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ErKM0XyDcdQ
시카고의 한 호텔에서 노신사가 투숙을 하기위해 접수원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노신사는 그 호텔에서 가장 싼 가격의 방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접수원이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그 노신사는 당대에 유명한 거부 록펠러였기 때문입니다. 접수원은 그에게 “당신의 아들은 이곳에 오면 제일 비싼 방을 구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은 제일 싼 방을 구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록펠러는 안경 너머로 접수원을 가만히 쳐다보더니, “내 아들은 나와 같은 부자 아버지가 있지만, 나는 그런 아버지가 없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부요하시고 존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있더라도 자기는 비천하고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록펠러의 아들처럼 마음에 부요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주기도에서는 먼저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부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부른 후에는 아버지의 이름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주기도의 첫 번째 기도 제목은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기도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에 유명인사가 있으면 자기가 그 사람을 알고 있으며 그 사람과 얼마나 가까운지 자랑합니다. 그 사람이 유명할수록 더욱 자신과의 관계를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능력이 있고 가장 우수한 사람보다 더 위대하신 분입니다. 기도는 그런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의 창조주이십니다. 말씀으로 온 우주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르는 것이 없으시며 못할 일이 없으신 위대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에 충만하십니다. 어디에나 존재하시는 무소부재하신 분입니다. 기도는 그 위대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하게 되어야 합니다. ‘거룩’이라는 이 말에는 어원적으로 ‘무겁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 말은 함부로 부르거나 소홀히 하지 아니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너무나 거룩하기 때문에 함부로 부르면 안 됩니다. 그래서 십계명 중 3계명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출 20:7입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망령이라는 단어는 ‘낭비된 것’, ‘무질서한 것’, ‘소모하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말은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혹은 함부로 부르거나 사용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경외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글씨를 쓸 때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쓸 때는 ‘아도나이’ 즉 ‘주님’이라는 말로 바꿔 썼습니다. 그리고 읽을 때에도 ‘여호와’라는 부분에서는 묵음을 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너무도 높고 거룩하기 때문에 죄인 된 인간의 입술로 감히 부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라고 쓰인 종이도 밟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필사하는 서기관들은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면 붓을 다시 물에 씻고 자세를 가다듬고 난 다음에 다시 기록을 했습니다. 그 정도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생각했습니다.
성경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이름대로 살았습니다. 예를 들면 삼상 25장에 보면 나발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나옵니다. 삼상 25:25에 보면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나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원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의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의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여종은 내 주께서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아비가일은 자기 남편이 미련한 자라고 말했습니다. 나발은 ‘어리석은’이라는 뜻입니다. 미련한 자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아비가일이 말한 ‘미련한 자’라는 말은 네발라인데 이 단어는 나발에서 유래했습니다. 삼상 25장에 보면 나발이 다윗에게 어리석게 행동했습니다. 그 결과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매 그가 죽었습니다. 그는 이름대로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성경에서 사람의 이름은 그가 처한 상황과 그의 인생을 보여주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들을 변화시키실 때 그의 이름을 바꿔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바꿔주셨습니다. 아브람은 ‘고귀한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면서 열방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복을 받을 것을 암시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도 사라로 바꿔주셨고, 야곱은 이스라엘로 바꿔어 주셨습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름을 통하여 한 개인의 존재 양태를 나타냈고, 이름 속에서 한 개인의 성품과 속성 그리고 인격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어떻게 존재하시는지 가르쳐줍니다.
출애굽기 3장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께 자기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라고 하면 그들이 자기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을 텐데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출 3:14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은 자신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스스로 존재한다는 말이 ‘여호와’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십니다. 온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존재의 원인이 자기 밖에 있습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부모님이 계셔서 존재하는 것이고, 제가 사용하는 마이크도, 설교하는 강대상도, 제가 입고 있는 옷도, 제가 쓰고 있는 안경도 스스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만들었기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의 존재 원인은 자기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하나님만은 존재의 원인이 자기 자신이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에는 ‘이름’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도 이름이 있죠. 우리의 이름은 부모님이 지어주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짐승들의 이름은 아담이 지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이름은 누군가가 지어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이름을 지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 세상에는 많은 신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들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우상들의 이름은 다 사람들이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은 당신 스스로 지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가르쳐줍니다.
이스라엘에서 ‘러브 153’ 사역을 하시는 조이스정 선교사님이 제게 유인물 하나를 주셨습니다. 제목은 여호와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이름입니다. 그 유인물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서른 가지나 나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이름은 그보다 더 많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가지 이름으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다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양한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이름을 구약에서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➀여호와 바라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의 창조자이십니다. 하나님이 전능자이심을 보여주는 이름입니다.
온 우주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별은 지구뿐입니다. 가스가 몰려다니다가 우연히 크게 모인 것은 태양이 되었고, 작게 모인 것은 지구, 달, 금성 같은 것이 되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모래를 억만 년 놓아두면 집이 됩니까? 산에 쓰러진 나무를 백 년 정도 놓아두면 의자가 됩니까? 쇳덩어리를 몇 백 년 놓아두면 두면 마이크가 됩니까? 이렇게 단순한 것들도 누군가가 만들어야 되는데, 이렇게 아름답고 질서정연하고 광대한 우주가 우연히 되었겠습니까? 우주가 얼마나 질서가 정연합니까? 거기다가 생명체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답이 없습니다. 사 45:18에 해답이 있습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하나님이 만물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우주 가운데 사람이 살 수 있는 지구라는 행성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거주하게 하셨습니다.
➁여호와 이레입니다. 준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드리도록 명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모리아산으로 가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 도착해서 이삭에게 번제 나무를 지우고 함께 산에 올라갔습니다.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질문했습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이때 아브라함의 대답입니다. 창 22:8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여기서 여호와 이레가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대신해서 번제로 드릴 숫양을 준비하습니다. 여기 숫양은 대속 제물이 되실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세상 죄를 지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대속 제물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준비하십니다.
➂여호와 닛시입니다.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할 때 아말렉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승리한 후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 닛시’라 했습니다. 여호와 닛시는 ‘여호와는 승리의 깃발’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 중입니다. 우리의 적은 원수 마귀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승리의 깃발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수많은 전쟁이 있었습니다. 어떤 전쟁은 이스라엘이 이겼고 어떤 전쟁은 이스라엘이 패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긴 전쟁의 공통점은 한 결 같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자신들의 승리의 깃발로 삼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할 때는 반드시 승리했습니다. 그때 그들의 승리의 비결은 여호와 닛시였습니다.
➃여호와 라파입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출 15:26을 보겠습니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소개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들어간 후에 사흘 만에 물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백성은 모세에게 원망하였습니다. 모세는 여호와께 기도했고,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셨습니다. 모세가 그 나무를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자기를 계시해주셨습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다.” 여호와 라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치료하시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치료하시고, 우리의 육체와 관계와 환경도 치료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료하실 때, 우리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태도를 보십니다. 흥미로운 치료간증이 있습니다. 1960년대 오스트리아 어느 국립병원에서 있었던 입입니다. 그 병원에서 한 50대 여성이 1년 이상 살기 어렵다는 말기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아침 회진하던 주치의에게 이 환자가 매달리며 간청했습니다. “선생님, 저 좀 살려주세요.” 의사는 한참이나 말을 못했습니다. 도저히 어떻게 살려낼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의사는 엉겁결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살려 드릴게요. 1년 이상을 넘기기 어렵다고 말씀드리기는 했지만, 사실 암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아주머니의 경우는 특별해요. 무슨 암인지 아직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병명을 밝혀내기만 하면 고쳐 드릴 수 있어요. 새로운 의학을 공부한 전문의가 와서 아주머니를 다시 진단하고 암의 정확한 병명을 찾아내면 고쳐 드릴 수 있어요.” 이 말을 들은 환자는 그날부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새로운 의학을 공부한 의사를 어서 빨리 이 병원으로 보내 주세요.”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의사가 환자 앞에 와서는 영어로 “She is moribund”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환자는 ‘나는 머리번드라는 암에 걸렸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환자는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새로운 의사를 보내 주셨고, 그 의사는 자신의 병명을 밝혀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환자는 주치의 말대로 자신의 병명이 밝혀졌으니까, 곧 병을 고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는 매일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며 눈물로 베개를 적셨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이듬해에 그분은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습니다. 의사들은 그녀가 치료된 것이 이해되지 못했습니다. 별다른 치료도 하지 않았고, 특별한 약도 투여하지 않았는데, 치료되었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은 그녀를 만났습니다. “아주머니는 무엇을 놓고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셨어요?”, “예, 1년은 너무 짧으니 몇 년 만이라도 더 살게 해달라고요.”, “그래서요?”, “저의 주치의 선생님께서 그러시더군요. 제 병명을 몰라서 못 고치는데 새롭게 공부한 전문의사가 와서 병명을 알아내면 고칠 수 있다고요. 그래서 그날부터 새 의사를 보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 기도대로 새 의사가 왔습니까?”, “네,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셨습니다.”, “그분이 누구였죠?”, “저기 저 분이 오셨어요.”, “그래요? 저 분이 아주머니의 병명이 뭐라고 그러던 가요?”, “머리번드요!” 이 이야기를 들은 모든 의사들은 기가 막혔습니다. 왜냐하면 머러번드는 병명이 아니라, ‘다 죽어가고 있다. 이제 끝났다. 빈사상태다.’라는 영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의학적으로 고칠 수 없는 암을 믿음으로 고치게 되었다는 보고서를 작성하여 의학계에 발표했습니다. 이분이 치료 된 것은 의사의 말을 듣고 희망을 가졌으며,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라파
➄여호와 멜렉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시편 98:6입니다. “나팔과 호각 소리로 왕이신 여호와 앞에 즐겁게 소리칠지어다” 우리는 왕이신 하나님께 온갖 악기를 연주하며 호각을 불면서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즐거이 소리치며 찬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왕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백성들이 왕의 통치를 받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여호와 멜렉, 하나님은 왕이십니다.
➅여호와 삼마입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전에 계시며,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는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 43:1입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여기서 야곱과 이스라엘은 그 당시 하나님이 구속하셨던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면서, 오늘 날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고 구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 있더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지으시고 구속하신 하나님께서 물 가운데서도, 불 가운데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제 실버예배에서 이환목사님의 설교 중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산리금식기도원에 오셔서 설교를 하신 어떤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그분이 미국에 가셔서 어렵게 이민목회를 했습니다. 2년 동안 성도 20명 정도가 모였는데, 월세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예배당에서 쫓겨나게 생겼습니다. 곧 교회 문을 닫아야 하는데 이상하게 매주일 주일 예배가 끝나면 여선교회회장과 교인들이 어디를 가더랍니다. 그들이 점을 보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궁금해서 그분들과 함께 점집에 가셨습니다. 목사님이 무슨 마음으로 교우들과 함께 점집에 가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희한한 일입니다. 그동안 점쟁이가 점을 잘 쳤는데 이상하게 그날은 점괴가 안 나오더랍니다. 점쟁이가 모인 사람들에게 “여기에 예수 믿는 사람이 있어서 점괘가 안 나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점 보러 간 교인들을 따라간 목사님 때문에 점괴가 안 나온 것입니다. 그 일로 목사님도 회개하고, 여선교회회장도 회개했습니다. 목사님은 목회도 안 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도 없으니 실망하고 있었는데, 실패한 목회를 하는 자신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여전도회회장은 자기 목사님이 목회도 잘 못하고 교회 문을 닫게 생겼으니 목사님을 우습게 생각했었는데, 그 일로 하나님이 목사님과 함께 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회개했습니다. 두 분은 그때 힘을 얻어서 교회를 잘 섬기게 되었고, 교회가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여호와 삼마입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3.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를 가르쳐줍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만 보여주실 때에는 ‘하나님’이라고 하시는데, 자기 백성들과 언약적 관계를 말씀하실 때에는 ‘여호와’라는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사용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사람이 계약서를 쓸 때 서명란에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계약자의 이름을 정확하게 쓰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이전까지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언약적 이름을 가르쳐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름을 묻는 야곱에게 그 대답을 거절하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나 출애굽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여호와’라는 당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셨고,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기억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을 통해서 그들과 언약적 관계를 유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믿습니다. 그분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적인 행위인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과 언약 관계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공로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영생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와 공급을 받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죽어서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과 언약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를 통해서 자기가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언약관계를 맺기 위해서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의 언약관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자기를 보는 시각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꿔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고귀한 존재이다. 나는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죽어지신 복된 존재이다. 나는 성령님이 성전 삼은 위대한 존재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4.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려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보면 하나님은 높고 위대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높여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릴 수 있습니까? 세 가지만 말씀드립니다.
➀우리는 찬송으로 하나님을 높여 드립니다. 우리는 찬송을 위하여 지음 받았습니다. 사 43:21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찬송을 위하여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찬송은 ‘미덕을 기리고 칭찬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찬송은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다.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시다.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고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찬송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고 찬송을 위하여 구속 받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찬송으로 하나님을 높여드려야 합니다.
➁우리는 감사로 하나님을 높여 드립니다. 시 50:23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합니다. 그러나 감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생을 멀리보고,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 긍정적으로 보면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이런 감사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아내가 잠이 많아서 아침밥을 먹지 못하고 직장에 다녔습니다. 그 아내가 얼마나 잠이 많은지 아침에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못하고, TV를 보다가도 자고, 밥을 먹다가도 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내 때문에 골치가 아팠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회사의 동료가 아주 괴로워하더랍니다. 그래서 이유를 물으니 아내가 불면증으로 입원을 했답니다. 그 사람이 생각해보니 아내가 불면증으로 입원하는 것보다는 잠이 많은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감사했답니다. 그러고 나니 어쩌다 친구와 놀다가 늦게 집에 들어가도 아내의 잔소리를 듣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더 감사가 되더랍니다. 잠보 아내가 복이더랍니다. 우리는 감사하므로 하나님을 높입니다.
➂우리는 삶으로 하나님을 높여드립니다. 마태복음 5:16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가 착하게 사는 것은 세상의 빛으로 사는 것이며 우리가 세상의 빛으로 살 때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착하게 살아내므로 하나님을 높여드릴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세상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착한 생활로서 하나님의 크심과 그분의 영광과 그분의 영화로운 속성을 반사해야만 합니다.
연세대학교의 부총장을 지내신 한 교수님의 간증입니다. 그분이 미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LA 공항에 도착했더니 마중 나오기로 한 친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흑인들의 폭동 때문에 시내로 통하는 모든 통신시설이 두절이 되고,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지 못한 것입니다. 이분이 처음 와보는 미국 땅에서 얼마나 앞이 깜깜했겠습니까? 영어가 유창한 것도 아니고, 길도 모르는데, 거기다가 폭동까지 일어났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만 하고 있는데, 어떤 중년 남자가 말을 걸더랍니다. 그분은 교수님과 반대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분은 친구 마중을 나왔는데, 그 친구는 폭동 소식을 듣고는 미국에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가 교수님에게 “당신은 마중 나오기로 한 분이 못 온 것 같은데 우리 집으로 가시죠. 그러면 내일 어떤 방도가 생기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더랍니다. 교수님은 딱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라 그 분 집에 가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저녁과 아침까지 잘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 친구 집 주소를 가지고 그 곳까지 데려다 주고는 빠이빠이 하며 가더랍니다. 교수님이 너무나 감사해서 그분에게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시면 후에 꼭 은혜를 갚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나의 성은 당신과 같습니다. 그리고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그리고는 “God bless you!” 하면서 가더랍니다. 그 교수님은 그 후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크리스천으로서 살아감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게 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였고, 지금껏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자식이 잘살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것은 부모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끄럽게 살면 그것은 부모의 이름을 치욕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부모의 얼굴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영광스러운 분이시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느냐 가리느냐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으로 하나님을 높여드려야 합니다.
오늘은 주기도문 두 번째 시간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위하여 기도하라”라는 제목으로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을 나눴습니다.
1. 하나님이 어떻게 존재하시는지 가르쳐줍니다.
2.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가르쳐줍니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이름을 구약에서 몇 가지 살펴봤습니다.
➀여호와 바라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➁여호와 이레입니다. 준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➂여호와 닛시입니다.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➃여호와 라파입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➄여호와 멜렉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입니다.
➅여호와 삼마입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3.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를 가르쳐줍니다.
4.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려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➀우리는 찬송으로 하나님을 높여 드립니다.
➁우리는 감사로 하나님을 높여 드립니다.
➂우리는 삶으로 하나님을 높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