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이있는시 - 김남주 사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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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6.23. 21:47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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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를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보며.
사랑만이
사랑만이
겨울을 이기고
봄을 기다릴 줄 안다
사랑만이
불모의 땅을 갈아엎고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릴 줄 안다
천 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줄 안다
그리고 가실을 끝낸 들에서
사랑만이
인간의 사랑만이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산골 아이들
이 아이들
자기들 담임선생과 함께 걷고 있는 나를
에워싸고 핼끔핼끔 쳐다보다가도
무엇이 그리도 우스운지 깔깔대며
천방지축으로 흩어져 달아나는 이 아이들
이 아이들
낯선 사람을 보면
그가 무슨 친절이라도 베풀면 그 길로
지서에 달려가 신고하는 아이도 있다 이 산골 아이들
이 아이들
집에 가면 어른처럼 일을 하고
갓난아이 보다 얼러 잠재운다
이 아이들
그 얼굴 아직은 함박꽃 같은 웃음뿐이고
그 손은 아직 고사리손인 이 아이들
저만큼 쪼르르 빗속으로 달아난다
저마다 메밀꽃 뽑아 한 손에 모아
그래도 선생님과 나에게 내밀고
부끄러워 부끄러워 밤송이 같은 뒷머리 뒤로 하고 달아나는 이 아이들
무엇이 될까 이 아이들은 커서
나이 사십에 구부러진 허리
죽으면 죽었지 서른다섯에 아직 장가도 못 가는 이 산골에서
무엇이 될까 그러면 이 아이들 도시로 가서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앞서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하고 가자.
투쟁 속에 동지 모아 손을 맞잡고 가자.
열이면 열 천이면 천 생사를 같이하자.
둘이라도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자.
고개 너머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가자.
서산 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네가 가서 일으켜 주고,
내가 넘어지면 내가 와서 일으켜 주고,
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 가야할 길 시련의 길 하얀 길
가로질러 들판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해방의 길 통일의 길 가시밭길 하얀 길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출처] 김남주 |작성자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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