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밤중 홍두깨와 고추 먹고 맴맴 우리 옛말에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뜻 아니 한 때에 별안간 불쑥 어떤 일을 당했다거나, 뜬금없이 누군가 찾아왔을 경우 흔히 사용하는 그런 말이다. 하지만 그 어원을 찾아보면 참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우선 “홍두깨”가 무엇인가부터 알아보자. 요즘은 사용되지 않는 물건이기에, 어떤 건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줄 안다. 예전에 무명옷을 해 입던 시절에, 빨래를 다듬이질 하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빨래를 다듬이질 하는 방망이가 있었는가 하면, 그 방망이 보다 훨씬 기다란 몽둥이에 빨래 감을 둘둘 감아 다듬이질 하던 그런 물건을 홍두깨라 말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홍두깨는, 옷감을 감아 다듬이질하는 굵고 둥근 몽둥이이긴 하나, 이 홍두깨는 조선왕조 시대부터 남자의 성기로 풍자되어 왔다.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사회적 규범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젊은 여인이 남편을 잃고 나면 평생 수절을 해야 했다. 그런데 동네 바람둥이나 한량들이 그를 그냥 놔 둘리 없었다. 그들은 칠흑 같은 야밤에 월담을 하는 등, 갖은 수법으로 은밀히 침투하여 정분을 맺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렇게 한 번 내통을 하게 되면, 남자는 욕정을 참지 못하고 틈만 나면 찾아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남편을 잃은 여인이 외간 남자와 내통을 하게 되면, 온전히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여인의 입장에서는, 은밀히 정분을 맺은 남자가 내심 그리워지는 사이가 됐다 하더라도, 그가 찾아오는 것이 무척이나 두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예고도 없이 밤중도 아닌 백주에 정부가 찾아왔다면 어찌된단 말인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란 바로 이런 때 즉, 밤중이 아닌 백주에 예고도 없이 찾아든 정부를 뜻했던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유분수라는 말이 쓰여 지기도 하는데, 유분수란 분수가 있어야 한다는 말.... 그래서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라고 말한다면, 백주 대낮에 정인이 찾아오는 것도 분수를 알고 찾아왔어야지라는 그런 뜻이 된다. 유래는 그러하나 경우에 따라서는 부부지간에도 이런 표현을 쓰기도 한다. 아내가 사랑할 수 있는 준비가 전혀 안된 상태인데, 만약 남편으로부터 갑작스럽게 저돌적인 공격을 당하게 된다면, 아내는 그 아픔을 참지 못하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이게 무슨 짓이요?"라고 소리를 지르고 말 것이다. 이렇듯 아닌 밤중에 홍두깨나, 연이어 쓰여 지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라는 말은 무척이나 흥미를 자극하는 풍자의 은유가 담겨 있는 선인들이 써왔던 말이다. 다음에는 “고추 먹고 맴 맴”이란 말의 뜻을 한번 음미해 보자. 일반적으로 고추를 먹으면 맵기 때문에, 맵다는 의미에서 맴맴 하게 되는 줄 짐작하기 쉬운 말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여기에도 속 깊은 해학이 숨겨져 있다. 여기서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 배웠던 동요하나를 떠올려 보자.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 “어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 댁에”... 왜 갔을까? 우리는 어린 시절 이 동요를 부르면서, 아버지는 단순히 물건 팔러(장사하러) 장에 가신 줄 알았고, 어머니 역시 그냥 이웃 아저씨 댁에 찾아 간 줄로만 알았다. 누구나 그 시절엔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버지는 장사하러 장에 가신게 아니다. 요즘 말로 바람피우러 가셨다. 장사하러 가시려면 소를 끌고 가셔야 한다. 소 잔 등에 짐을 싣고 아버지는 소를 끌고 가셔야 마땅하다. 그런데 아버지는 나귀를 타고 가셨다. 즉 아버지는 “한량”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 장은 보통 5일 장이었으며,3일장, 5일장,7일장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모처럼 장이 서는 날이면, 기생집도 대목을 보는 날이었다. 나귀 타고서는 일반 주막에 가질 않는다. 주막은 서민들이 이용하는 대폿집이었으니 말이다. 돈 좀 있고, 할일은 없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그 당시 한량이라 했고, 그런 사람들은 적잖이 값비싼 나귀(에쿠스 급?를 타고 다닐 정도의 부유층 계급이 한량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 댁에~” 아저씨 댁엔 왜 갔을까? 어머니도 맞바람을 피운 것이다. 이모 댁도 아니고, 고모 댁도 아니다. 삼촌댁도 큰 엄마 댁도 아니다. 바로 어머니가 숨겨놓은 애인인 아저씨 댁인 것이다. 아버지는 장에서 어머니는 아저씨 댁에서 바람을 피웠다는 증거는 유추할 필요도 없이 후렴구에 정확하게 나와 있다. “고추 먹고 맴 맴~, 달래 먹고 맴 맴~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아이는 두 번이나 강조하며 분명하게 전달한다. 어머니 아버지가 없을 때, 왠만큼 잘사는 집안의 아이가 괜스리 매운 고추와 달래를 먹으면서 맴맴 하면서 놀리는 만무하다. 그 당시는 하우스 재배를 하지도 않았기에, 봄에 나오는 달래와 여름철에 따먹는 고추를 어린 아이가 동시에 날것으로 먹기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추와 동그랗게 생긴 달래의 상징적 의미를 그 어린 아이도 알았던 것이다. 고추란 일반적으로 남자의 성기를 상징함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달래라는 말도 무엇을 달라고 조를 때 쓰여 지는 말이다. 그렇다면 고추와 달래를 먹은 사람은 어린애가 아닌 아버지 어머니였을 것이다. 그리고 “매앰 맴~”은 “응 응응~”과 같이, 남녀 관계 시 흘러나오는 교태 어(?)였을 것이다. 충북 충주에 가면 달래 강이 있고, 달래 강 전설이 흐른다. 거기 “달래”라는 말도, 남자가 여자 거시기를 한번 달라는 그런 뜻에 유래를 두고 있다. “고추 먹고 매엠 맴~, 달래 먹고 메엠 맴~” 아무리 들어봐도 재미가 넘쳐나는 풍경이 연상된다. 여자는 고추를 먹고 “매엠 맴~”하고 있고, 남자는 달래 먹고 “매엠 맴~”하고 있으니...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어머니의 애인인 아저씨는 계획적이며 지속적으로 어머니한테 접근하여 지능적으로 어머니를 “응 응응~” 한 것이다. 그 사실을 어린 아이가 알고 있다. 달래 먹구 즉 달래서 먹고 “매엠 맴~”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부모로써의 모범을 왜 보여야하는지를 극명하게 알 수 있다. 즉, 아이들은 속일수가 없으며, 그 아이는 그런 사실을 동네방네 알리고 있다. 아마도 수십 년은 알린 것 같다. 그 아이의 노래가 어떻게 우리들의 동요가 되었을까? 동요작가가 그 아이로부터 그토록 사연 있는 이야기를 듣기라도 했더란 말인가? 아니면 작가 자신이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사건을 묘사라도 하고 있단 말인가? 아무리 듣고 또 들어봐도, 풍자와 해학의 재미가 넘쳐나는 동요임에는 틀림없으나 그 출처가 아리송하니 그것이 문제로다.
|
첫댓글 정말 그러한것 같아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더운 여름 건강하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