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론을박(甲論乙駁)
갑이 논하면 을이 논박한다는 뜻으로, 서로 논란하고 반박함을 이르는 말이다.
甲 : 갑옷 갑
論 : 논할 론
乙 : 새 을
駁 : 논박할 박
사자성어에 갑론을박((甲論乙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갑이 주장을 하면 을이 반박한다 라는 뜻으로, 서로 자기 의견을 내세우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반박함을 이르는 말이지요. 그 말의 유래가 아주 재미있습니다.
옛날 바닷가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삼형제가 하늘에 날아가는 새를 보고 제일 큰 형이 저 새를 잡아서 삶아먹자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둘째는 구워먹자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고 막내는 맛있게 먹으려면 끓는 물에 데친 후 구워 먹자고 합니다.
서로 자기 생각을 주장하며 논란하는 형제들의 갑론을박이 계속되자 그 해결책을 얻으려고 고을 수령에게 갔습니다. 그런데 사또가 그 말을 듣고 새를 잡아오면 판결을 해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를 잡으려고 삼형제는 바다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바다 위의 새는 벌써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지요.
상대편의 말이나 글의 잘못된 부분을 논란하여 서로 헐뜯는 것으로 서로간의 소모적인 말다툼을 가리키는 말이다. 자기 의견을 내세우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반박하는 모습이다.
갑론을박은 이렇게 여러 사람이 서로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며 남의 의견을 반대하는 상황을 나타내는 말이다. 천간(天干)에서 갑(甲)은 첫 자리, 을(乙)은 둘째 자리에 있어서 갑을(甲乙)을 붙인 것이다.
보통 토론을 하거나 회의를 할 때 갑론을박을 많이 한다. 하지만 갑론을박만 할 게 아니라 서로 의견을 모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선 후기에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무리를 짓고 서로 편을 갈라 대립했다. 이러한 정치 무리를 붕당(朋黨)이라고 한다.
붕당에 속한 사람들도 처음에는 다른 편의 의견을 인정해 주고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사이가 점점 나빠지면서 무조건 자기 편의 주장이 옳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백성을 위한 마음도 다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 보니 의견을 모아 무엇인가를 결정하기는 커녕 갑론을박만 하는 정치적 대립이 계속되었다. 서로 죄를 뒤집어 씌우는 일까지 일어났다.
영조(英祖)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고자 붕당 사이의 갈등을 억누를 수 있는 강한 정책을 펴기로 마음먹고, 어느 날, 영조가 음식을 차려 놓고 신하들에게 말했다.“음식도 여러 재료를 골고루 섞어 먹어야 하듯이 정치에서도 여러 당의 인재를 골고루 써야 평화로운 법이오.”
영조는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아주 공평하게 정치를 하기 위해 탕평책(蕩平策)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때 신하들 앞에 차려진 음식은 청포묵에 여러 가지 색깔의 채소를 섞어 무친 것이었다. 그래서 이 음식은 탕평채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영조는 탕평책에 따라 인재를 여러 붕당에서 골고루 뽑았고, 이들은 영조의 명령에 따라 많은 개혁 정치를 이루어 냈다.
하지만 강력한 탕평책을 실시한 영조도 붕당 싸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영조와 그의 아들인 사도세자(思悼世子)는 서로 다른 붕당의 지지를 받고 있었는데, 영조를 지지하는 세력의 사람들은 영조에게 세자가 잘못한 점을 낱낱이 보고하며 이간질했다.
"전하, 세자가 함부로 사람을 해쳤다고 하옵니다."
"세자가 몰래 궁을 빠져 나가 위험한 군사 지역에 다녀왔다 하옵니다."
이들의 말을 들은 영조와 세자의 사이는 이전보다 더 벌어졌고, 결국 영조는 세자를 뒤주 속에 가두어 굶어 죽게 했다. 붕당 간의 갈등으로 일어난 비극이었다.
탕평이라는 말은 서경(書經) 홍범조(洪範條)의 無偏無黨王道蕩蕩 無黨無偏王道平平이라는 글에서 유래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숙종이 탕평책을 처음 시행하고자 하였으나 여의치 않아 환국이 자주 발생하였다.
신임옥사(辛壬獄事)의 와중에서 왕위에 올라 당쟁의 폐단을 뼈저리게 겪은 영조는 1724년 즉위하자 당쟁의 폐단을 지적하고 탕평의 필요를 역설하는 교서(敎書)를 내려 탕평정책의 의지를 밝혔다.
1730년(영조 6) 그의 옹립에 공이 컸던 노론(老論)의 강경파 영수 민진원(閔鎭遠)과 소론(少論)의 거두 이광좌(李光佐)를 불러 양파의 화목을 권하는 한편 그의 시책에 호응하지 않는 호조참의(戶曹參議) 이병태(李秉泰), 설서(說書) 유최기(兪最基) 등을 파면하였다.
또한 노론의 홍치중(洪致中)을 영의정, 소론의 조문명(趙文命)을 우의정에 임명함으로써 당파를 초월하여 인재를 등용하고 일반 유생(儒生)들의 당론에 관련된 상소를 금지시켰다. 그리고 1742년 성균관 입구에 ‘탕평비’를 세우는 등 당쟁의 해소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와 같은 영조의 탕평책에 의한 화해기운 조성에도 불구하고 뿌리깊은 당파의 대립은 그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남인(南人)들은 과거에 합격해도 이를 취소하는 바람에 수십년 동안 과거의 응시를 거부하였으며, 이인좌(李麟佐) 등 과격파는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영조를 이은 정조도 탕평책을 계승하여 그의 거실을 탕탕평평실(蕩蕩平平室)이라 하고 노론, 소론뿐만 아니라 출신을 가리지 않고 서얼(庶孼)도 글 잘하는 사람을 등용하였으며, 남인 출신을 영의정에 앉히는 등 적극적으로 탕평책을 써서 많은 효과를 거두었다.
▶ 甲(갑)은 상형문자로 새싹이 싹트면서 아직 씨앗 껍질을 뒤집어 쓰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싹이 나기 시작한다는 뜻으로 전(轉)하여 처음, 제일을 뜻한다. 또 씨의 겉껍질을 뜻한다. 단단한 껍데기에서 전(轉)하여 갑옷의 뜻이 되고, 음(音) 빌어 천간(天干)의 첫째 글자로 쓴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살갗 부(膚), 껍질 각(殼), 가죽 피(皮), 겉 표(表), 갑옷 갑(鉀), 갑옷 개(鎧), 가죽 혁(革)이다. 용례로는 갑옷과 투구를 아울러 이르는 말을 갑주(甲冑), 첫째 가는 부자를 갑부(甲富), 같은 나이를 갑장(甲長), 큰 배나 군함의 위에 철판이나 나무 등으로 깐 넓고 평평한 바닥을 갑판(甲板), 육십갑자의 첫째를 갑자(甲子), 열한 번째를 갑술(甲戌), 스물한 번째를 갑신(甲申), 서른한 번째를 갑오(甲午), 마흔한 번째를 갑진(甲辰), 쉰한 번째를 갑인(甲寅), 예순 한 살 되는 해를 갑년(甲年), 갑이라는 집과 을이라는 정자라는 갑가을정(甲家乙亭), 갑이라는 남자와 을이라는 여자라는 갑남을녀(甲男乙女), 갑이 논하면 을이 논박한다는 갑론을박(甲論乙駁) 등에 쓰인다.
▶ 論(론)은 형성문자로 论(논/윤)은 약자(略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말씀언(言; 말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侖(륜)으로 이루어졌다. 冊(책)은 나무나 대나무의 패를 이은 옛날 책, 집(亼)은 모으는 일을 말한다. 그래서 侖(륜, 론)은 책을 모아 읽고 생각하여 정리하는 일이라는 뜻으로, 여러 사람과 의견을 교환하며 정리하여 말한다(言)는 뜻이 합(合)하여 논의하다를 뜻한다. 즉 상대방과 조리를 세워서 의논하는 일을 말한다. 용례로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 시비를 따져 논하는 것을 논란(論難), 사회의 어떠한 현상이나 정치적 문제 등에 대하여 국민들이 나타내는 공통된 의견을 여론(輿論), 말할 것도 없음을 물론(勿論), 서로 의견을 논술하여 토의함을 논의(論議), 말로나 글로써 자기의 의사를 발표하는 일을 언론(言論), 어떤 논제를 둘러싸고 여러 사람이 각각 의견을 말하며 논의함을 토론(討論), 어떤 사항을 내놓아 논제로 삼음을 거론(擧論), 탁자 위에서만 펼치는 헛된 논설이라는 탁상공론(卓上空論), 갑이 논하면 을이 논박한다는 갑론을박(甲論乙駁), 공이 있고 없음이나 크고 작음을 따져 거기에 알맞은 상을 준다는 논공행상(論功行賞), 낱낱이 들어 잘 토의한다는 난상토론(爛商討論), 모든 문제를 흑이 아니면 백, 선이 아니면 악이라는 방식의 두 가지로만 구분하려는 논리를 흑백논리(黑白論理), 이미 지나간 일은 다시 논하지 아니한다는 이의물론(尼矣勿論) 등에 쓰인다.
▶ 乙(을)은 상형문자로 한가운데가 쥐는 곳이며 양쪽이 굽고 뾰족한 작은 칼의 모양으로, 일설에 이른 봄에 초목의 싹이 트려고 할 때, 추위 때문에 웅크리고 있는 모양이라고 한다. 음(音)을 빌어 천간(天干)의 두 번째로 쓴다. 용례로는 임금이 글을 봄을 을람(乙覽), 범의 가슴 양쪽에 있는 을자형의 뼈를 을골(乙骨), 두 편으로 번갈아 일할 때 나중에 당하는 편을 을번(乙番), 둘이나 그 이상되는 학급 또는 군중의 모임에서 편리상 구별한 반의 둘째를 을반(乙班), 24시의 여덟째 시, 오전 6시 반부터 7시 반까지의 사이 을시(乙時), 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눈 그 둘째, 밤 9시부터 11시 사이를 을야(乙夜), 육십갑자(六十甲子)의 둘째 을축(乙丑), 열 두번째 을해(乙亥), 스물 둘째 을유(乙酉), 서른 둘째 을미(乙未), 마흔 둘째 을사(乙巳), 쉰 둘째를 을묘(乙卯), 갑자을축이 바른 차례인데 그 차례가 바뀜과 같이 무슨 일이 제대로 안되고 순서가 뒤바뀜을 비유하여 이르는 을축갑자(乙丑甲子) 등에 쓰인다.
▶ 駁(박)은 형성문자로 駮(박)과 통자(通字), 驳(박)은 약자(略字)로, 어떤 주장이나 의견에 대하여 그 잘못된 점을 조리 있게 공격하여 말한다는 논박(論駁)을 말한다. 뜻을 나타내는 말 마(馬; 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爻(효, 박)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용례로는 남의 의견에 반대하여 논박함을 반박(反駁), 남의 잘못을 논란하고 공격함을 공박(攻駁), 죄상을 들어 논하고 책망하거나 규탄함을 탄박(彈駁), 여러 가지가 마구 뒤섞여 질서가 없음을 잡박(雜駁), 뒤섞여서 고르지 못하거나 어수선하여 바르지 못함을 천박(舛駁), 통렬하게 공박하는 것을 통박(痛駁), 얼굴을 마주하여 꾸짖거나 논박함을 면박(面駁), 옳고 그름을 가리어서 논박함을 변박(辨駁), 남을 반박하는 학설을 박설(駁設), 서로 논란하고 반박함을 이르는 갑론을박(甲論乙駁), 편파적이고 불공정함에 대한 한탄이라는 반박지탄(斑駁之嘆)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