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권섭 | 날짜 : 16-10-26 02:26 조회 : 1024 |
| | | 소이부답笑而不答
왜 푸른 산속에 사느냐고 내게 묻기에, 나는 웃을 뿐 대답은 않지만 마음은 한가롭네, 복사꽃잎이 떠 흐르는 물 아득히 내려가니, 여기는 신선 사는 별천지지 인간 세상이 아니로구나 (問余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이백의 《산중문답》시다. '웃는 낯에 침 뱉으랴.'란 말대로 웃음은 뭇 사람들에게 슬픔을 가시게 하고 즐거움을 준다. 정신건강에도 좋다는 웃음도 지나치면 좋지 않다.‘웃음 속에 칼이 있다(笑裏藏刀)'거나 '어리석은 자가 웃음이 많다(痴者多笑)'라는 말이 있으니 말이다. 목적에 따라 만족감도 나타낼 수 있고, 비밀이나 악의를 드러낼 수도 있다.
나는 어려서, 성인되어서도 웃음이 많아 실례를 범한 때가 간혹 있었다. 본의 아니게 잘 웃어 한 때는 경망함을 보였다. 웃음을 자제할 줄 아는 때가 되고 보니 어느새 황혼 노을이 어린다.
무슨 일에 웃음을 띨 뿐(笑而)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不答)는 이 성어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간혹 어떤 사람을 만나 이야기할 수 없을 때 미소로 답한다. 질문이 단순하여 대답할 가치를 못 느끼거나 어처구니없을 경우, 또는 긍정을 의미할 때도 있고, 반대의 경우라도 굳이 표현하기 싫을 때 사용할 수 있다.
이백은 궁중을 떠나 산속에 조용히 묻혀 살면서 자연과 함께 유유자적하는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속세의 사람들이 물어도 대답을 않고 빙그레 웃기만 하는 것은 ‘산속에 사는 사람의 즐거움은 본인만 느껴 알 뿐 무어라 표현할 수 있으랴’하는 심정이다.
‘별유천지비인간’마지막 구절은 자주 인용되는데 무릉도원(武陵桃源) 같은 별천지를 가리킨다. 도연명의《도화원기》에 무릉도원의 내용이 있다. 중국인의 ‘별천지’사상으로 깊은 산속에 숨겨진 낙원이 있으니 무릉도원 산속을 헤매던 남자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낙원'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풍요로운 논밭이 이어져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며칠 간 머물다가 남자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시 이곳에 오려고 하지만 낙원은 두 번 다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중국의 '낙원'은 신비에 쌓인 별천지다.
염화미소, 마하가섭이 꽃을 든 부처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마하가섭이 미소를 짓자 부처는 모든 대중들 앞에서 그가 자신의 후계자이며 자신의 법을 마하가섭에게 부촉(咐囑)하겠노라고 말하였다. 마하가섭과 부처는 일생에 거쳐 미소로 세 번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다. 이심전심(以心傳心)’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 부처와 마하가섭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불경》아함경에는, 부처께서 어느 날 걸식을 하러 성중에 나갔다가 어떤 바라문 집에 갔다. 그는 부처를 보자마자 삿대질을 하면서 욕을 하였다. “그대는 육신이 멀쩡한데 어찌 남의 집에 걸식을 하는가? 그러지 말고 스스로 일해서 벌어먹어라. 그대에게는 음식을 줄 수 없다.”하고 화를 내면 소리를 쳤다.
그 때 부처는 그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 그러자 “왜 내가 말을 하는데 웃는가?” 시비를 걸었다. 그러자 부처는 “그대는 집에 가끔 손님이 오는가?” 하고 말하자. “그렇소.”라고 답했다. “그러면 손님이 올 때 선물도 가끔 가지고 오는가?”라고 물었다. “그렇소.”라고 대답했다. “그럼, 만일 손님이 가지고 온 선물을 그대가 받지 않으면 그 선물은 누구의 것이오?”라고 물었다. “그야, 내가 안 받게 되면 손님의 것이지요. 그런데 왜 그런 것을 물으시오?”라고 따지듯이 물었다.
이에 부처는 그래도 빙긋이 웃으면서 “그대는 나에게 욕을 했는데, 내가 받지 않으면 그 욕은 누구 것이 되는가?”하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무엇인가를 깨우쳤는지, 무릎을 꿇고 잘 알았습니다. 부처님! 제가 잘 못했습니다.”이렇게 공손하게 진심으로 잘못을 시인하고 집안으로 들어가서 좋은 음식을 차려서 부처님께 극진히 공양을 올렸다.”
웃을 뿐 대답하지 않은 정치인들이 많다. 자신의 회고록 이름으로 쓴 김종필 전 총리. '정치는 허업(虛業)'이라면서 즉답을 회피하고, 미소로 답하는 것을 본뜨는 것이다. 김종필증언록 ‘소이부답’은 중앙일보에 연재하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산 증인인 그의 회고록의 제하이다.
대한민국 격동의 현대사 한 가운데 있었던 그는 반세기가 훨씬 지난 얘기를 특유의 느릿느릿한 목쉰 말투로 육성 증언했다. 뇌졸중 후유증에다 아내를 잃은 후 더 늦기 전에 구술하였다. 한 때 은거 중으로 경기지사를 지낸 손학규님에게 ‘정치계 복귀 의사를 물을 때 웃음 짓기만 했다.’고 한다. 왜 깊은 뜻을 모르고 자꾸 묻는가 하는 뜻도 있겠다.
삼국지에서 ‘소이부답’은 제갈량이 자신의 친구들에 관하여는 모르는 것이 없으면서 정작 자신에 관하여 질문하면 그저 웃음으로만 답 하였다. 그렇기에‘제갈지능 불가량(諸葛知能 不可量)’이라는 말도 있다. 제갈량의 능력은 측량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그는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가야할 길을 제시하고 시대에 맞는 정책을 내며 마음을 열고 공정한 정치를 행하였다. 이리하여 온 백성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형벌과 정치는 엄격했는데도 원망하는 자가 없었던 것은 그의 마음가짐이 공평하고 상벌이 공정했기 때문이다. 제갈량은 비교적 속내를 쉽게 노출하지 않고 웃음으로 상대를 대했다. 소이부답으로 할 말을 줄이면서 남의 말을 경청하는 여유를 가졌다.
소이부답은 어떤 질문에 그냥 빙긋이 웃기만 할 뿐 대답은 하지 않는다. 남에게 질문을 받고 대답하기 싫어하거나 곤란할 때의 소이부답 그 웃음에는 긍정이 있을 수 있겠고 부정이 있을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어떤 대상에 대한 비웃음, 그러니까 가소로움이 있는 웃음일수도 있다. 어떤 웃음인가는 본인만이 안다고 하겠다. 제갈량의 처세술과 관련한 명언 중에 “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그의 욕구를 이해하는 것이고, 한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것은 그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성공을 위해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제대로 만족시켜주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그 사람을 이해하는 길이며, 다음은 상대가 원하는 바를 충족시켜 줄 때만이 그 사람을 감동시켜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지혜를 제갈량의 ‘소이부답’의 처세에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 임재문 | 16-10-26 02:37 | | 저도 어떤 자극을 받으면 바로 반응하는 사람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자중하라는 충고를 받기도 합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앞으로는 염화시중의 미소로 이심 전심으로 그렇게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다시 한 번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김권섭 선생님 ! | |
| | 김권섭 | 16-10-26 04:01 | | 설봉임재문선생님 반갑습니다. 아침 일찍 오셨네요. 쌀쌀한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다방면에 활동하시는 모습 늘 아름답군요. 댓글 감사합니다.^^ | |
| | 윤행원 | 16-10-30 11:35 | | 김권섭 선생님, 오래간만입니다. 이렇게 좋은 글을 자주 올려주셔야 後學들의 배움도 늘어납니다. 該博한 말씀으로 흥미 있게 읽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그 무엇- 때문에 하도 시끄러운 세상이라 같이 흥분하기도 지쳐있는지라.... 書齋에 조용히 앉아서 笑而不答...헛웃음만 웃고 있습니다. | |
| | 김권섭 | 16-10-31 03:42 | | 석계선생님 정말로 오랫동안 뵙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尊名만 봐도 반갑고 그리움이 사무칩니다. 인간 중에는 끌리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는 사람이 있는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厚德한 인품은 千里香이 되어 요즘 풍기는 銀木犀 보다 香氣로움을 느낌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며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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