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엄청난 상처를 입힙니다.육체적뿐 아닌 정신적인 면에서도 그렇습니다. 전쟁이 이웃나라와의 전쟁이 아닌 자국내의 전쟁 다시 말하면 민족상잔의 전쟁이면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 2024년 6월 25일은 바로 한국전쟁이 일어난지 74년이 된 날입니다. 한국전쟁이 벌어진 해에 태어난 사람들이 지금 74살이 됐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오래된 일이지요. 한반도에서 민족간의 전쟁은 많았습니다. 고조선, 삼국시대. 후삼국시대. 고려시대 등등. 하지만 한국전쟁처럼 민족상잔의 슬픈 역사의 최고봉을 기록하는 그런 날도 없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에 북한군은 남침을 시작했습니다. 74년전 바로 오늘 한반도에 엄청난 대사건 아니 슬픈 민족사를 기록하는 그런 한반도 역사상 최대의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당시 비참했던 상황을 다시 언급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나라에서 내전이 일어난 것이 한반도만의 상황은 아닙니다. 그 대단하다는 미국도 엄청난 내전을 겪었지요. 한국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내전 그리고 그 내전의 상흔은 2백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미국이 간직한 인종차별이요 이민자관련 대립이요 남부와 북부의 대갈등 구도 아니겠습니다.
한국은 74년전 엄청난 내전을 겪었습니다. 내전이라기보다 오히려 국제전이었습니다. 팽창해오는 공산주의와 민주진영관의 처절한 싸움이지요. 세계 2차대전이 민주세력과 파시즘 즉 전체주의 세력의 대결이었다면 민주진영과 공산진용의 대결의 첫판 싸움이 바로 한국전쟁 아니였습니까. 팽창하는 공산주의의 위력을 보여주려고 했던 소련진영의 북한과 민주진영의 결집을 보이는 미국진영간의 결투가 하필 한반도에서 벌어질지 정말 몰랐습니다. 미국도 당시 몰랐던 것 같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대통령은 트루먼대통령이었습니다. 세계 2차대전에서 중반이후 참전해 독일등 전체주의 독재정권들과의 마지막 전쟁에서 아주 운좋게 승기를 잡은 미국의 루즈벨트대통령이 전승을 눈앞에 두고 갑자기 사망합니다. 1945년 4월입니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트루먼이 대통령으로 전권을 이어받습니다. 루즈벨트가 다 이뤄낸 과실을 따는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트루먼입니다. 그가 인간적으로 정치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역대 최대의 전쟁인 2차대전을 마무리한 트루먼은 1948년 재선에 성공합니다. 트루먼은 민주당입니다. 그는 실제로 전쟁을 리얼하게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영국의 처칠이나 미국의 루즈벨트처럼 말입니다. 그냥 부통령으로 옆에서 듣고 배웠지 실전경험이 전무했다는 말입니다. 대통령 유고로 대통령직을 물려 받았고 그 여세로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그런 미국의 대통령의 성향을 소련 등 잠재적 적군들이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미국의 트루먼은 이제 더 이상 세계 대전이라는 끔직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했을 것입니다. 소련의 스탈린이 아무리 호전적이라고 해도 적당히 구슬리면 될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트루먼은 재선에 성공한 뒤에 세계 평화를 이룩하는 인물로 기록되고 싶었을 것입니다. 유엔을 중심으로 말입니다. 그는 동북아 지도를 살펴 봅니다. 당시 일본은 소련을 방어할 유일한 동북아 국가인 동시에 세계 평화를 수호할 위치 그리고 능력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공격해 수많은 생명을 없애고 필리핀 전쟁을 비롯한 태평양 전쟁의 대결자로 여기지 않고 그냥 원폭 두방으로 희생당한 그런 가련한 민족으로 일본을 판단했습니다.
트루먼이 그렇게 판단한 데에는 당시 아시아극동지역 사령관인 맥아더의 영향이 지대했습니다. 맥아더는 전후 일본을 사실상 통치한 인물입니다. 당시 일본인들의 맥아더에 대한 숭배는 왕 이상이었습니다. 키작은 일본인들 특히 여성들은 키크고 잘 생기고 늠름하고 관용이 있어 보이는 맥아더에 올인합니다. 하루에 맥아더에게 보내진 팬레터는 수백 수천통이었다고 합니다. 배운 것 없고 국제화에 무지했던 당시 남한인들에 비해 맥아더는 일본인들에 매료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맥아더는 그런 일본인들의 숭배심에 감동받아 일본을 용서해 주기로 판단합니다. 그런 일본인들의 반응이 그대로 미국 백악관 트루먼에게 보고됐습니다. 미국은 자국의 원폭 투하로 수십만 피해를 입은 일본에 대해 적지않은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맥아더로 인해 일본인들의 원성이 사그러들고 오히려 미국을 숭배한다는데대해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미국 트루먼은 결단을 내립니다. 일본을 소련을 막는 최전선으로 삼겠다고 말이죠. 그리고 당시 한반도는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어찌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36년 일제 강점기에서 독립됐지만 스스로 이룬 독립이 아닌 탓에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세력이 상당했습니다. 미국파 소련과 중공파에 친일파까지 이건 그의 국제파 수준이지요. 그런 상황속에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이념까지 개입하니 한반도는 그야말로 혼돈의 소용돌이였습니다. 북한은 그런 상황속에서도 소련파를 중심으로 체제를 구축해 갔습니다. 강압적인 방법을 동원해 토지개혁을 진행했고 친 기독교세력을 추출했습니다.
하지만 남한은 온갖 세력이 혼합돼 상상을 초월하는 혼란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이 미국의 트루먼에게 시시각각으로 보고됐습니다. 당시 남한의 군정을 지휘하던 하지는 이런 상황속에 안정적인 통치는 불가하다는 보고까지 미국 워싱턴에 타전했습니다. 트루먼은 고민합니다. 그 작은 그리고 세계 최빈국인 한반도 그리고 그 반쪽인 북한이 이미 소련의 통치속에 들어가 있는데 남한에 더 이상 미련을 둘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유사시에는 일본에 있는 맥아더 군대가 그런 혼란상을 진압하면 된다는 아주 안이한 판단을 내립니다. 트루먼은 맥아더를 신임한 것이죠. 그래서 나온 것이 1950년 애치슨 라인아닙니까. 미국의 동북아 전선을 한국이 아닌 일본과 대만선으로 내린다는 것이지요. 사실상 그때 미국은 남한을 소련에 바친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1905년에 저지른 태프트 카스라 밀약의 판박이 아닙니까. 필리핀을 미국이 드시고 조선은 일본화한다는 것이지요. 소련과 북한의 김일성이 그것을 몰랐을 리가 없지요. 미국이 내린 선물이라 판단했을 것 아닙니까. 남한 즉 북한 더 나아가 소련이 드시고 일본부터 방어한다는 그런 전략아닙니까. 그런 전략속에 김일성은 남침계획을 차근 차근 수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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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당시 남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그런 상황을 몰랐을까요. 이승만 그사람 바보가 아니지요. 하지만 미국의 트루먼은 이승만의 생각을 능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승만의 판단을 좌지우지하는 인물이지요. 트루먼의 판단에 투정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트루먼은 남한은 우리가 책임진다 바로 옆에 존재하는 일본의 사령관이 바로 맥아더 아닌가 단지 소련군이 북한에서 철수했으니 미군도 철수하는 그런 모양새를 보이니 그다지 걱정하지 말라했겠죠. 모든 기반을 미국에 두었던 이승만...젊은 시절 백성들을 뒤로 두고 미국에서 젊고 야망찬 시절을 보낸 이승만 그리고 부인을 미국인으로 둔 그는 트루먼의 판단을 울며 겨자먹기...아니 숙명으로 받아드립니다. 그리고 6월 25일 일요일 단잠에서 일어나기도 전인 새벽 4시 북한군은 남침을 감행했습니다. 미국이 북침을 몰랐다면 미국 CIA는 존재가치가 없었을 것이고 미국은 세계를 지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뒤늦게 정신차린 미국은 맥아더로 하여금 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북향을 시작합니다. 밀물듯이 내려왔던 북한군처럼 유엔군도 밀물처럼 북진을 펼쳤습니다. 드디어 압록강변까지 도달합니다. 드디어 중공군이 개입합니다. 자신들의 영토에 위협을 준다고 말이죠. 맥아더는 트루먼에게 급전을 보냅니다. 만주에 대폭격을 가하자 그리고 원폭 한방만 사용하게 해달라고 말이죠. 하지만 미국 트루먼은 그럴 경우 겨우 겨우 끝난 세계 대전이 또 발생할 것을 두려워해 맥아더를 전격 해임합니다. 아이젠아워 사령관이 유럽에서 독일을 격파하고 태평양에서는 일본을 패망시킨 맥아더 영향으로 미국은 2차대전 최종 승리로 장식했습니다. 결국 트루먼을 재선으로 이끈 일등 공신중 한명인 맥아더를 트루먼이 스스로 파면한 것입니다. 그리고 맥아더와 2차대전 유럽의 영웅인 아이젠아워는 1952년 11월 대선에서 미국 공화당 후보로 나섭니다. 트루먼의 민주당에 맞서는 공화당 후보로 말입니다.
미국 민주당은 트루먼때 있었던 여러가지 패착 정책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한국전쟁을 발발하게 했고 유효하게 이끌지 못했다는 판단을 미국 유권자들이 미국 민주당에 내렸고 맥아더를 누른 최종 미국 공화당 후보인 아이젠아워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1952년 11월입니다. 아이젠아워는 당선후 급히 전쟁중인 한국으로 와서 전황을 보고받은뒤 이승만과 만났고 모종의 선택으로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막을 내리게 됩니다.
6.25 한국전쟁과 현 상황이 낯설다고 판단됩니까. 동북아 정세는 중국이 더욱 강력하게 세력을 확장한 것 외에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입니다. 미국은 더욱 힘을 발휘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는 옛 소련의 영화를 누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고 북한은 여전히 호전적인 성향을 버리지 못하는 가운데 미국과의 대결속에 생존의 길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74년의 세월은 흘러도 상황은 여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남한과 북한이 여전히 휴전상태에다 세계 유일한 분단국으로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러시아는 소련의 영향을 회복하려 하고 있고 중국은 예전 소련의 힘을 자신들이 이어 받으려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여전히 혼란스럽고 불편하고 심각한 정치 외교적 대결은 동북아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내부적으로만 부딪히는 남한 즉 한국의 모습은 74년전과 그다지 변했다고 보이지 않습니다. 74년동안 한국에는 그다지 인재도 인물도 백마타고 오는 바로 그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74년이 지난 한반도의 과거와 현재입니다. 슬픈 한반도의 역사인 6.25날 74년이 지나서도 결국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제 자신이 한 없이 슬픕니다.
2024년 6월 25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
첫댓글 이글이 널리 읽혀지리라 여기기 않습니다. 워낙 에아이가 훌륭해서 입니다. 뭔가 불편하면 실질적 하락내지는 폐지를 강행합니다. 에이아이가 한다는데 뭐라 하겠습니니까. 우리는 권력의 지휘아래 역사도 잊고 사는 그런 인간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더욱 강력한 힘이 작용되면 우리는 비판할 기능도 사라질 것입니다. 지금 중국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