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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 / 이재무
매번 고인께는
면목 없고 죄스러운 말이지만
장례식장에서 먹는
국밥이 제일 맛이 좋더라
시뻘건 국물에 만 밥을 허겁지겁
먹다가 괜스레 면구스러워 슬쩍
고인의 영정 사진을 훔쳐보면
고인은 너그럽고 인자하게
웃고 있더라
마지막으로 베푸는 국밥이니
넉넉하게 먹고 가라
한쪽 눈을 찡긋, 하더라
늦은 밤 국밥 한 그릇
비우고 식장을 나서면
고인은 벌써 별빛으로 떠서
밤길 어둠을 살갑게 쓸어주더라예
한 그릇의 밥
ㅡ 故 이문구 선생님을 생각하며
나희덕
집에 돌아와 한 그릇의 밥을 푸면서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지금쯤 보충수업에 자율학습에 지쳐
진밥처럼 풀이 죽은 아이들,
희고 고운 얼굴들이 형광등에 빛 바래고
조용히 밥그릇에 담겨
귀가 시간을 기다리는 아이들,
빈 자리 몇 개, 누가 도망갔느냐고
윽박지르며 묻고 돌아서면
-- 몇 시간 일찍 간 게 왜 도망입니까
-- 무단외출 했다고 무기정학입니까
말없이 대답하는 눈동자들,
오늘은 가출한 두 아이를 찾아나섰다
어두운 레스또랑 구석, 오락실, 만화가게,
미성년자 출입금지 팻말이 붙은
여관 뒷골목들을 찾아다녔지만
거리 거리 찬바람만 불어오는 저녁
두 아이를 담고 있는 그릇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 그릇의 밥을 푸면서
한 알도 흘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교사,
더러는 발밑에 떨어진 것도 주워담아
제 입에 넣고 맛있게 씹을 일이다
내일이라도 두 아이가 돌아온다면
밥보다 반가운 아이들,
덥석 껴안고 감사의 눈물이라도 흘릴 것이다
따뜻한 한 그릇의 밥을 받은 것처럼
국밥집에서 / 박승우
허름한 국밥집에서
국밥 그릇 먹다보면
그래도 사는 게 뜨끈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장난 시계와 삐걱거리는 의자와
비스듬히 걸린 액자가 다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뜨거운 국밥 한 숟갈 목젖을 데워오면
시린 사랑의 기억마저 따뜻하다는 생각이 든다
외로움도 쓸쓸함도 다 엄살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자리 모여 앉아 제각각의 모습으로 국밥을 먹는 사 람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낯이 익었다는 생각이 든다
소주 한 잔 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국밥집에서 국밥 한 그릇을 먹으며
구겨진 날들이 따뜻하게 펴지고 있다
눈 오는 날 콩나물국밥집에서 / 복효근
눈이 뿌리기 시작하자
나는 콩나물국밥집에서 혼자 앉아
국밥을 먹는다 입을 데는 줄도 모르고
시들어버린 악보 같은 노란 콩나물 건더기를 밀어넣으며
이제 아무도 그립지도 않을 나인데
낼모레면 내 나이가 사십이고
밖엔 눈이 내린다 이런 날은
돈을 빌려달라는 놈이라도 만났으면 싶기도 해서
다만 나는 콩나물이 덜 익어 비릿하다고 투정할 뿐인데
자꾸 눈이 내리고
탕진해버린 시간들을 보상하라고
먼 데서 오는 빚쟁이처럼
가슴 후비며 어쩌자고 눈은 내리고
국밥 한 그릇이 희망일 수 있었던,
술이 깨고 술 속이 풀려야 할 이유가 있던
그 아픈 푸른 시간들이 다시 오는 것이냐
눈송이 몇 개가 불을 지펴놓는
새벽 콩나물국밥집에서 풋눈을 맞던 기억으로
다시 울 수 있을까 다시 그 설레임으로
심장은 뛸 수 있을까 사십에
그까짓 눈에 속아
입천장을 데어가며 시든 콩나물 악보를 밀어넣는다
순대국밥집 / 나태주
마음 허하고
아무 곳에도 기댈 곳 없는 날은
비실비실 저녁 어스름 밟으며
시장 골목길 돌고 돌아
허름한 순대국밥집 찾아들어라
문을 밀치고 들어서자마자
달겨드는 구숫한 음식 내음새
순대국밥 안주하여 막걸리나 소주 마시며
크게 떠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웃음 소리
더러는 다투는 소리
그동안 내가 찾지 못하던
세상 살 재미들이
모두 여기
이렇게 깡그리 모여 있었구나
종일 두고 무쇠솥에 국물은 끓고
김은 피어 오르고
시꺼매진 벽을
등에 지고
보일 듯 말 듯 웃음 짓는
주인 아낙네
순대국밥 마는 일 하나로 저토록
늙어버린 주인 아낙네
내가 그동안 잃어버린 미더운
사람 마음과 사람의 얼굴이
여기 와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구나
비록 그들은 날마다 사는 일에 지치고
상채기 받지만
저토록 씩씩하게 자신들의 하루를 잘
갈무리하고 있음이여!
역전 국밥 / 김귀례
새벽바람을 이고
남광주역에서 하차하는 푸성귀들을 위해
언 손 녹여 주는 골목이 있지
순대국밥처럼 위로받는
노점 좌판대 같은 사람들
가로등 없는 고샅길에서 만난 첫눈 같은 이들이
내장이 되고 순대가 되고 살코기 몇 점 되어주며
마주 앉은 자리
섞어국밥 같은 사람들이 있지
꽃인 줄 모르면서 들꽃이 되는 사람들
혼자서 밤길 걷는 이에게 향기의 꽃등 밝혀 놓고
투박한 노래 불러주는 이들 있지.
(시집 ‘꽃들은 묻지 않는다’, 시와사람, 2023)
터미널 국밥집
류 미 야
마음이 종착인 날은 터미널로 가 보자
보따리에 실려 온 고향 내음도 맡고
설렘과 아쉬움이 빚는
풍경에 젖어보자
그래도 못내 허전커든 국밥집에나 들어
소박한 허기가 부른 맑은 식욕을 느끼며
어느새 어깨에 내린 어둠까지 말아보자
마른 생도 젖은 생도
밥보다 뜨거울까
쩔쩔 끓는 국물에 눈콧물 다 쏟아내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삼키고 돌아오자
*류미야: 2015년「유심」등단. *월간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발행인 겸 주간
https://kiss.kstudy.com/Detail/Ar?key=3747688
초록expand_more
음식은 생물학적 구체물이면서 문화적 기호체계를 보여주는 다양한 의미의 표상이다. 음식은 공유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감각적 표상으로 단지 맛을 즐기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재생되는 기억을 통해 내밀한 서사가 구현된다. 음식을 시적 소재로 과감하게 끌어들인 백석 이후, 예전에 비해 음식을 시의 소재로 수용하는 사용 빈도는 증가하고 있다. 음식과 관련한 시 쓰기는 기억을 통해 환기된 시적 언어들의 재구성이다. 시적 소재인 ‘음식’은 시인의 기억, 영감, 취향 등의 경험적 서사를 제공한다. 본고는 현대시의 소재인 ‘국밥’에서 구현되는 서사를 통해 표출되는 정서를 살펴 보았다. 국밥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서민적인 음식이다. 본고에서 고찰한 현대시 9편의 소재로 쓰인 국밥의 서사에서는 기다림에서 우러나는 위로의 소환, 어울림의 미학적 승화, 공동체적 유대감의 내적 고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 정서는 국밥이 다른 음식에 비해 ‘기다림’과 ‘어우러짐’ 그리고 ‘공동체적 유대감’이 잘 드러나는 서민적인 음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국밥은 진한 국물을 얻기 위해 각종 재료를 우려내는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다. 또한 국밥은 만들어둔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음식이다. ‘어우러진다’는 의미에서는 비빔밥이 대표적인 음식이다. 비빔밥은 여러 나물을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어우러졌을 때 새로운 맛이 된다. 그에 비해 국밥은 국과 밥이 어우러지면서도 음식 본연의 맛이 바뀌지 않고 더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 국밥은 혼연일체의 어울림을 추구하는 음식이다. 국밥은 여럿이 함께 밥을 나눠먹는 공동체문화에 잘 어울린다. 다른 음식에 비해 국밥은 함께 모인 사람들이 어디서나 부담 없는 가격으로 손쉽게 먹을 수 있어서 공동체적 유대감을 형성하기에 더 적합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돼지국밥집이 붐비는 풍경 / 고재종
담양하고도 창평장에를 가면
거기 녹슨 양철지붕의 돼지국밥집 있다네
머릿고기, 내장, 간과 순대들.
물큰내를 풍기며 가마솥에서 펄펄 끓는다네.
오일장이면 누구랄 것도 없이 이른 참 부터 들러
육두문자와 파안대소도 곁들이는 돼지국밥
모내기가 얼추 끝나 목 때를 벗기거나
숫눈이라도 내릴 때면 더더욱 붐비는 집
우리 동네 항우장사 이상신 씨는
주먹 송이만 한 비계까지 서걱서걱 베어 먹곤
소주병째로 털어 넣은 뒤 입 딱, 씻는다네
요즈음 인근 광주의 세단까지 웬일로 몰려와선
길바닥까지 평상 자리를 펼치자
옆집 포목점 영감, 으허으허 거쿨지게는 웃으며
구정물 퍼 묵을라고 참 많이도 온다고 외치는 집.
그래도 당나귀처럼 잘도 찾아와선
비지땀 쏟으며 벌건 국물을 켜고
그렁그렁한 눈으로 먼 산을 한 번 ! 쳐다보는 집.
산해진미에도 헛헛한 마음들
돼지 내장으로 씻고는 화색이 도는 것인데
아무래도 무슨 추억이며 향수를 먹는 돼지국밥집
24시 양평해장국/ 권혁웅
내 앞에 앉은 그대는 방금 안사람과 헤어졌다
핸드폰을 닫는데, 이 인간 들어오기만 해봐라...
보조키 걸어 잠그는 소리가 났다
그대가 다섯번째 밥을 허겁지겁 떠 넣는 건
네번째 끼니를 잊어서가 아니라 그냥 연금저축이다
첫사랑은 500cc 거품과 함께 사라졌고
독재자와 장사꾼과 모리배들은 불판 위에서 다 탔다
그대가 탁자를 탕, 치자
막걸리가 장마철 탁류처럼 솟아올랐다
친구들은 유수지로 물 나가듯 빠져나갔다
저 인간 다시 만나나봐라...제법 격류였지
겨우 보내고 달래어 앉은 자리에서
찢긴 북어와 풀 죽은 콩나물 사이에서
그대는 다시 첫사랑으로 돌아와 운다
고개 숙인 그대의 머리가 잡초 솎아낸 밭 같다
어린 남자로 위장한 그대 뒤에
구조조정이 있다는 걸 나는 안다 그대가
구직과 실직을 혼동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대도 안다
분별 있는 우리 사이로 분별 있는 새벽이 온다
그대는 느릿느릿 집으로 간다
그대는 헤어진 안사람이 다시 받아주리란 걸 안다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대는 자러 간다
야근과 당직을 마치고 퇴근하러 간다
국밥과 희망 / 김준태
국밥을 먹으며 나는 신뢰한다
국밥을 먹으며 나는 신뢰한다
인간의 눈빛이 스쳐간 모든 것들을
인간의 체온이 얼룩진 모든 것들을
국밥을 먹으며 나는 노래한다
오오, 국밥이여
국밥에 섞여 있는 뜨거운 희망이여
국밥 속에 뒤엉켜 춤을 추는
인간의 옛추억과 희망이여
어느 날 갑자기
수백 대의 이스라엘 폭격기가
이 세상 천지 곳곳을
납작하게 때려 눕힌다 해도
西베이루트처럼 짓밟아 버린다 해도
국밥을 먹으며 나는 신뢰한다
국밥을 먹으며 나는 신뢰한다
인간은 결코 절망할 수 없다는 것을
인간은 악마와 짐승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노래하고 즐거워한다
이 지구상에 어린 아기의
발가락이 하나라도 남아서
풀꽃 같은 몸짓으로나마 꿈틀거리는 한
오오, 끝끝내까지 뜨겁게 끓여질 국밥이여
인간을 인간답게 이끌어 올리는
국밥이여 희망이여…
해장국 / 도종환
사람에게 받지 못한 위로가 여기 있다
밤새도록 벌겋게 달아오르던 목청은 식고
이기지 못하는 것들을 안고
용쓰던 시간도 가고 분노를 대신 감당하느라
지쳐 쓰러진 살들을 다독이고 쓰다듬어줄
손길은 멀어진 지 오래
어서 오라는 말 안녕히 가라는 말
이런 말밖에 하지 않는 주방장이면서
주인인 그 남자가 힐끗 내다보고는
큰 손으로 나무식탁에 옮겨다 놓은 콩나물해장국
뚝배기에 찬 손을 대고 있으면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어디서 이렇게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으랴
떨어진 잎들이 정처를 찾지 못해 몰려다니는
창밖은 가을도 다 지나가는데
사람에게서 위로보다는 상처를 더 많이 받는 날
해장국 한 그릇보다 따뜻한 사람이 많지 않은 날
세상에서 받은 쓰라린 것들을 뜨거움으로 가라앉히며
매 맞은 듯 얼얼한 몸 깊은 곳으로 내려갈
한 숟갈의 떨림에 가만히 눈을 감는 늦은 아침
국밥/ 박난민
가마솥에서
뿜어 나오는 뜨거운 김
주인 아낙
넉넉한 인심 같아라
무거운 가방 내려놓고
얼큰한 국밥 한 그릇 마주하면
왁자지껄한 장터
잠시 잊고
풍성한 마음이 된다
서창, 해장국집 / 전성호
비오다 그친 날, 슬레이트집을 지나다가
얼굴에 검버섯 핀 아버지의 냄새를 맡는다
양철 바케쓰에 조개탄을 담아 양손에 쥐고 오르던 길
잘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언 손으로 얼굴 감싸쥐어도
겨울 새벽은 쉬 밝아오지 않고,
막 피워낸 난로 속 불꽃은 왜 그리 눈을 맵게 하던지
닫힌 문 작은 구멍마다 차가운 열쇠를 들이밀면
낡은 내복 속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 뜨겁게 흘러내렸다
한달치 봉급을 들고 아들이 돌아오면
아버지는 마른 정강이를 이끌고 해장국집으로 갔다
푹 들어간 눈 속으로 탕 한 그릇씩 퍼담던 오후
길 끝 당산나무에 하늘 높이 가슴치는 매미 울음소리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껴안을수록 멀어지는 세상
우산도 없이 젖은 머리칼을 털며
서창 해장국집 문을 열고 들어서면
습기 찬 구름 한덩이 닫힌 창 밖으로 빠르게 흘러가고
검버섯 핀 손등 위로 까맣게 아버지 홀로 걸어가신다
살다 허기지면 찾아가는 그 집
금빛 바늘처럼 날렵한 울음 사이로
까마귀 한 마리 잎을 흔들며 날아간다
* [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창비시선 300 기념시선집
시래기국밥 / 정윤천
우리 할머니
염천 뙤약볕 가슴으로 거둔 산답배미 콩밭
콩밭의 콩알들일랑은 그렇게
훗날의 한 장독 가득 간장도 된장도 되고
또 우리 어머니
품 들여서 손톱 깎을 일이라곤 없었던
갈쿠손 세워 이룬 뒷전 남새밭
남새밭의 청무 푸른 잎들은
애초부터 한 줄기도 버릴 일이라곤 없어
처마귀 몇 다발의 시래기도 되고
그렇게 아둥바둥 등거리 대고 살아온
저 행색도 대물림 받은 꼬장한 고부지간에
험난한 세월의 뒤엉킴과도 같이
푸진 국솥 안에 끓고 넘쳤던
사발도 드높은 흥건한 국물 속의
시래기 국밥 한 그릇은
그때 누구나 다 허한 속으로 건너가야 했었던
질척이는 한겨울 밤의 지난함을
쬐금은 덜 힘들게 하곤 그랬었는데
그 밥상머리가 얽힌 식구들의 추억이
후제까지 여영 따뜻하고 그랬었는데
https://naver.me/xoYlrbyb
순대국밥을 먹으며 / 정일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낙향을 결심한 후배와 함께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경남은행 옆 순대골목으로 가 조금은 이른 저녁을 먹는다 붉은 고춧가루를 듬뿍 뿌려 순대국밥을 먹는다 한그릇의 순대국밥을 놓고 후배의 식욕은 쓸쓸하다 드는 둥 마는 둥 꺾어진 젊은 시절의 퍼런 절망이 쓸쓸하다
나는 안다 돌아갈 그의 고향 주소와 농투사니로 살고 있는 빈농인 그의 부모를 기부금이 없어 돌아온 그의 이력서와 중등학교 2급 정교사 자격증을 나는 안다 마지막 남은 전답을 팔아 농협빚으로 마친 지방 국립대학 4년을 이제 돌아가도 볍씨 한 톨마저 뿌릴 땅이 남아 있지 않음을 안다 아니다 아니다 나는 모른다 가슴 속 깊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는 그의 슬픔의 눈물을 험산처럼 서 있는 절망의 날카로운 분노를 흰 손이 부끄러운 나는 정말 모른다 아무 말도 못한 채 나는
열심히 순대국밥을 먹는다 하루의 지친 노동에서 거친 일터에서 우리의 건강한 아웃들이 낮고 어두운 이곳으로 찾아와 배부른 사람들이야 거들떠보지도 않을 기름이 둥둥 뜨는 순대국밥을 찾는다 비로소 순대국밥집에 30촉 백열전구가 켜지고 이웃들의 터진 손등과 주름진 이마가 따뜻하게 살아난다 희망으로 꿈틀거리는 청동빛 근육들이 살아난다 어느새 후배는 열심히 순대국밥을 먹는다 좌절된 꿈을 다시 우걱우걱 씹는다 그래 믿어야지 믿고 살아야지 고난의 날이 가면 새날이 찾아오리니*
* 푸시킨의 시에서 인용
- 정일근,『바다가 보이는 교실』(창작과비평사,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