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과 전교조 서울지부가 '교사의 방학 중 당직근무를 없앤다'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29일 맺었다. 이 때문에 "방학 중에도 학교에 오는 학생의 안전과 돌봄보다는 교사들 복지를 우선하는 협약을 맺었다" "비교육적 처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다음 달 21일로 예정된 전교조의 법외(法外)노조 여부 판결 이후에 단협을 체결하겠다는 애초 방침을 뒤집고 이날 전격적으로 전교조와 단협을 체결, "선거 때 자신을 지지한 세력에 대한 보은(報恩) 성격의 단협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방학중 당직근무, 교사로서 필수 업무 아냐
전교조
◇학생 안전 뒷전으로 미룬 전교조
지난 2012년 6월 전교조 요구로 협상이 시작돼 3년 6개월 만에 체결된 이번 단협에는 교사 복지를 증진하는 내용이 많이 포함됐다. 우선 '방학, 재량 휴업일에 강제적 근무조 운영을 폐지한다'는 내용이 있다. 통상 서울 지역 교사들은 방학 중 순번을 정해 1~2회 출근해 교내 안전과 학생 관리를 위한 '당직근무'를 서는데, 이런 교사들의 안전 관리 책무를 없애기로 한 것이다. "방학 중 당직근무는 교사의 의무가 아니다" "휴식권을 박탈당해 재충전에 방해가 된다"는 등 전교조가 그간 주장해온 내용을 서울시교육청이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방학 중에도 '초등 돌봄 교실'이나 '방과 후 학교' 등으로 학교에 나오는 아이가 많아 당직 교사는 꼭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초등 2학년 딸을 방학 때 돌봄 교실에 보낸다는 학부모 강모(43·서울 용산구)씨는 "만약 당직 교사가 없고 교장·교감이 출장으로 자리를 비우게 되면 학교가 텅 비는데 어떻게 아이를 안심하고 맡기겠느냐"며 "외부인들이 학교에 들어와 범죄를 저지를지도 모르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자녀안전 걱정… 범죄발생 누가 책임지나
학부모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만일 전교조 교사들이 방학 중 근무를 하지 않겠다면 다른 교사들이 여러번 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면서 "방학 당직 여부는 학교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사들이 방학 근무를 못 하게 한 것이 아니라 학교장이 강제로 당직조를 편성하지 말고 교사들과 협의해 결정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서울·전북·충북·제주 등 일부 진보·좌파 교육감은 지난 7월에도 평교사의 방학 중 당직근무를 폐지하라는 공문을 일선 학교에 보냈지만, 교육부는 당시 "학생들이 안전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크다"며 시정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방과후 수업 내용·수준을 단협서 규정하는것도 문제
◇"단협에 이런 내용까지…"
이번 단협에는 교사가 학습 지도안, 주간 학습 계획안 등을 작성해 교장에게 결재받는 것을 폐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또 교사의 근무 상황 카드(출근 보조부) 또는 출·퇴근 시간 기록부를 없애고, 방과 후 수업을 경시 대회나 특목고 입학 시험 등을 목적으로 운영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명시됐다. 한 교육계 인사는 "학교에서는 방과 후 수업을 학생들 수준에 따라 다양하게 운영할 수 있는 것인데, 단협에서 방과 후 수업 내용과 수준까지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라고 말했다.
이번 단협은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항소심 판결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갑작스럽게 체결됐다. 애초 조희연 교육감은 '1월 중순으로 예정된 법외노조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않겠다'고 밝혀왔었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전교조 서울지부가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교육청 앞에서 한 달 넘게 농성을 이어가자 이에 굴복한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