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철승 가롤로 신부
대림 제3주일
이사야 61,1-2ㄱ.10-11 1테살로니카 5,16-24 요한 1,6-8.19-28
주변에 관심을 가져주세요.
다음과 같은 글을 인터넷에서 보았습니다.
어느 주택가 마트에 늦은 밤 어느 젊은 여자가 아기를 안고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 여자는 초췌한 얼굴에,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고, 또한 아기를 안고
힘없이 걷는 모습에서 경제적인 여유 없이 혼자 애를 키우며, 힘들게 살아가는
미혼모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 아기 엄마는 아기를 안은 체 진열대에 있는 분유 한 통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계산대로 가서 분유 한 통과 구겨진 돈 만 원을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계산을 하던 마트 사장님은 만 육천 원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기 엄마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계산을 포기하고 돌아서는 것이었습니다.
만 원 이외에는 더는 돈이 없었던 것입니다.
힘없이 돌아서는 아기엄마 뒤로 마트 사장님은 분유통을 진열대 제자리에 올려놓습니다.
그러다가 그 분유통을 그 높은 진열대에서 슬며시 떨어뜨립니다.
그래서 분유통이 찌그러졌습니다. 그러자 마트 사장님은 아기엄마를 불러 세우고는
찌그러진 분유는 형태상 불량품이니, 반값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만 원을 받고 이천 원을 거슬러줍니다.
아이 엄마는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분유통을 갖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가게주인은 여인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사랑을 실천한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베푼다는 것은 굳이 꼭 큰 노력이나 큰 금액이 아니어도 가능한 것입니다.
글쎄요. 위 이야기가 사실인지 누가 지어냈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마트 주인의 모습은 우리 신앙인들이 닮아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저 마트 사장님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 모든 사람의 공동선을 위해
옆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대림 제3주일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정한 자선 주일입니다.
1984년부터 시작하여 올 해로 제40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자선 주일은 국내의 이웃에게 따뜻한 사랑의 나눔 실천을 강조하는 날입니다.
토빗기에서는 자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네가 가진 것에서 자선을 베풀어라. 그리고 자선을 베풀 때는 아까워하지 마라.
누구든 가난한 이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마라. 그래야 하느님께서도 너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않으실 것이다. 네가 가진 만큼, 많으면 많은 대로 자선을 베풀어라.
네가 가진 것이 적으면 적은 대로 자선을 베풀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네가 곤궁에 빠지게 되는 날을 위하여 좋은 보물을 쌓아 두는 것이다.
자선은 사람을 죽음에서 구해주고 암흑에 빠져들지 않게 해 준다.
사실 자선을 베푸는 모든 이에게는 그 자선이 지극히 높으신 분 앞에 바치는
훌륭한 예물이 된다.”(토빗 4,7–11)
내가 가진 모든 재산은 나의 노력이나 나의 재능만으로 형성된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도우심과 또한 이웃들의 도움이나 양보,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니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내가 가진 재화를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내 아들아, 네가 할 수만 있다면 도와야 할 이 에게 선행을 거절하지 마라.”(잠언 3,27 참조)
전주교구 서철승 가롤로 신부
2023년 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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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달수 바오로 신부
대림 제3주일
이사야 61,1-2ㄱ.10-11 1테살로니카 5,16-24 요한 1,6-8.19-28
더 나은 사람이 되어보자
대림 제3주일을 보내며 우리가 들은 복음 말씀은,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라는 질문을 반복하여 던지고 있습니다.
이에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라고 자신의 신원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의 인정을 받으며 요르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주고 있는 요한의 입장에서는
조금은 우쭐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라는 자의식을 가질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자신을 한없이 낮고 부족한 사람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요한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는 신앙의 한 가지 역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나은 사람이라 생각할수록 덜 나은 선택을 하기 쉽고 부족하다고 생각할수록 부족하지 않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더 나은데 어찌 더 나아지려 하겠습니까. 부족하다고 생각해야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이런 노력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켜 주는 것 아닐까요?
이러한 의미로 ‘set me free’라는 노래에서 “미치지 않기 위해 미치려는 걸...”이라고 외치는
BTS 지민의 노래는 큰 울림을 줍니다. 대중음악가로는 이미 세계 최고의 위치에 올라있으면서도
미친듯이 더 노력하겠다는 것이니 말입니다.
이는 현시대에서 더 많은 재물을 가지려 하거나 더 높은 지위로 올라가려는 태도와는
다른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것에 만족하거나 이만하면 괜찮다고 안주하는 대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실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것이 무엇이든 어떤 위치에 있든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이 보여준 삶의 태도를 잘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라는 요한의 겸손한 고백 속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는 결연한 삶의 의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죽는 순간까지 무엇인가를 선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세례자 요한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부족한 것을 조금이라도 성장시키는 선택을 무엇이라도 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현 순간에 우리는 한 번에 백 걸음을 걸을 수는 없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그 힘찬 한 걸음을 지금 당장실천해보면 어떨까요?
대전교구 윤달수 바오로 신부
2023년 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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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근표 바오로 신부
대림 제3주일
이사야 61,1-2ㄱ.10-11 1테살로니카 5,16-24 요한 1,6-8.19-28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요한 1,26)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에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면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이어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다.”라고 답하면서,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라면서, 오시기로 된 분이 우리 가운데에 서 계신다고 말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언젠가 훈화 말씀 중에 “예수님의 인성 안에서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하고, 또 삶의 여정에서는 우리가 만나는 형제자매들 속에서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사막의 은수자’ 샤를 드 푸코 신부는 나자렛의 가난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따라
사하라 사막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그곳의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며
그들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가난한 이들 안에서 나자렛 예수님의 모습을 보려고 했던 푸코 신부의 삶은 오히려 우리에게
예수님의 삶과 사랑을 드러내 주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지난해 그를 성인품에 올리셨습니다.
샤를 드 푸코 성인의 삶에 매료되어 그분의 영성을 따랐던 요셉의원의 선우경식 원장도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한평생 그들 안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가난하지만 때로는 매우 거칠고 말썽도 피우고 직원들에게 우격다짐까지 하는
그런 폭력적인 환자들을 보면서, 그들 안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발견하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고 회고한 내용은,
그가 평소 얼마나 그 가난한 이들 안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찾으려고 노력했는가를 엿보게 합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극진한 사랑을 베풀며 평생을 헌신했는데, 오히려 그를 만난 이들은
한결같이 ‘선우경식 원장님이야말로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분’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코로나로 인한 충격에 많은 이들은 ‘지금이 신앙의 위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초기 교회 때에도 아주 심각한 전염병이 발병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위기의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감염될 수도 있는 죽음의 위험 속에서 이교도들이 상상할 수 없는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그래서 이교도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일컬어, ‘파라볼라노이’ 곧 ‘위험을 무릅쓰는 이들’
이라 불렀습니다. 그 전까지 천여 명에 불과했던 그리스도인들의 수는 그 후,
10년마다 40%씩 급격히 늘어나면서 로마제국 전체로 신앙이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선택에 따라 지금이 오히려 복음 선포의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가난과 질병과 외로움 속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들을 향한 우리의 따뜻한 사랑과 자선은 ‘우리 가운데 하느님이 함께 계심’을 드러내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서울대교구 홍근표 바오로 신부
2023년 12월 17일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
가톨릭 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