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이 있어 집을 나와 지내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 보니 때때로 외로움이 슬며시 고개를 들기도 한다. '외로움은 내게 숙명일까? 그렇진 않을 거야.' 스스로 묻고 또 위로하며 한양도성을 산책하고, 명동 도심을 거닌다. 종로의 골목을 거닐다 후미진 곳의 노포에서 국밥 한 그릇을 먹으면서 젊은 날에도 애달파 읽기 힘겨웠던 시 하나를 나지막이 읊조려본다.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국집에서/ 국밥을 가득 떠 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 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황지우 <거룩한 식사> 중) 젊은 날에도 이런 시를 외고 다녔으니 외로움은 나에게 숙명인 걸까. 지난 30년간의 싸움 같았던 사회생활은 결국 외로움을 향해 달려온 여정이었던 것일까. 톨스토이의 문장까지 떠오르며 《안나 카레니나》의 서두에 적힌 절창이 내 마음을 찌른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다양한 모습으로 불행하다.' 외로운 사람들은 많고, 저마다 제각각의 방식으로 외롭다. 그러나 스스로를 연민하기 시작하면 처량하기 그지없다. 서글픔에 언제까지나 잠겨있으면 끝끝내 서럽기만 하다. 이같은 마음을 다른 마음으로 바꾸려는 시도도 마뜩잖다. 누군가에게 들으니 우리 마음이 저 혼자서 작동해 이런저런 생각과 느낌을 자아내는 건 아니란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우주와 늘 어우러져 춤을 추는 중이며, 순간순간 그들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춤사위가 우리의 생각이고 느낌이란 것이다. 나는 느릿한 진양조의 춤사위를 경쾌한 자진모리 정도로 바꾸고 싶어 지친 마음을 끌고 오늘도 집을 나선다. 되도록 먼 길을 걸어 널찍한 나무 탁자가 있는 도서관에 가 앉는다. 이걸 어쩌나. 도서관에는 온통 외로운 사람들뿐이다. 색 바랜 역사소설 몇 권을 쌓아두고 보는 중년도, 두툼한 철학서 한 권을 과묵한 표정으로 벗하고 있는 또 다른 중년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듯 무거운 교재를 펼쳐놓고 열중한 청년도, 수천 명의 운명이 담겼을 《주역》과 씨름 중인 돋보기안경을 쓴 노인도, 유명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 한 권을 꺼내 읽다 잠깐 눈을 감은 40대 여성도 모두 혼자다. 혼자라고 다 외로운 건 아니지만 홀로 앉아있는 그들의 실루엣이 왠지 쓸쓸해 보인다. 그나마 어린 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독서 중인 젊은 엄마의 모습이 정겹다.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좋아하는 책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따뜻하고 아름답다. 도서관 밖 사람들은 외롭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도서관 밖에서도 사람들은 섬이다. 나르시시즘과 안락이 그들의 거처다. 그들은 자신에 빠져, 누구의 간섭도 없는 평안을 희구한다. 1분짜리 쇼츠, 두 시간짜리 영화, 12부작의 OTT 드라마가 담긴 조그만 모니터에 빠져 외떨어진 섬이 된다. 사람 부대끼는 곳에서도 그들은 용케 혼자가 되는 법을 안다. 도서관을 찾는 건 그런 군도(群島)로부터의 이탈일까, 또 하나의 섬을 만드는 일일까. 쉽사리 답을 내릴 수 없다. 서가에서 막 꺼내 온 책을 펼치지도 않고 혼자서 그런 생각에 빠져있는데 멀리서 은은한 눈길이 느껴진다. 고개를 돌려보니 엄마 옆에서 책을 읽던 여자아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잠깐 흠칫하더니 아이가 소리 없이 씨익 웃는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흔쾌한 눈웃음을 덧붙인다. 아이가 엄마의 팔짱을 꼬옥 낀다. 엄마도 나를 쳐다본다. 평화로운 표정이다. 그러고 보니 지하 보존 서가에 박혀있던, 철 지난 유럽 문화사 책을 신청한 내게 책을 찾아다주며 "이런 옛날 책을 찾기도 하시네요. 재밌게 읽으세요"라는 말과 함께 친절하게 웃던 사서도 비슷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도서관을 찾는 일이 또 하나의 섬을 만드는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요즘 내 삶의 화두는 '사람, 사랑'이다. 자주 두 단어를 명상하고 몽상한다. 이따금 시간이 날 때면 아무 종이나 펼쳐 심지 가는 볼펜으로 두 단어를 여러 번 써보기도 하는데 '사람과 사랑'이라 쓰지 않고 꼭 '사람, 사랑'이라 쓴다. 사람에게도, 사랑에게도 온전한 한 자리씩 마련해주고 싶어서다. '과'라는 조사를 사용하면 '사랑'이 '사람'에 묶이고 '사람'이 '사랑'에 얽매여 사람도 사랑도 답답할 것 같다. 이 세상 사랑이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웠으면, 충만했으면, 홀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몽상의 끝에서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펼친 책에는 독특한 사랑법이 적혀있다. 특정한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건 가능하지 않다는 취지다. 그건 집착이기 쉽고 한때의 열정일 거란 얘기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일시적인 도파민 과잉상태일까? 사랑은 그런 게 아니라고, 사랑은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 세상 전체와 관계 맺는 방식이라고 저자는 말하려는 듯하다. 지난 세기의 걸출하고 예민한 지성,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엔 그런 말들이 가지런하다. 나는 내가 삶을,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젊을 적 한때 그저 먼 산 바라보듯 성글게 미학을 공부했는데 미학 교과서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었다. 옛날엔 사람들이 특정한 사물에 깃든 아름다움의 실체, 본질을 찾아 헤맸다. 그런데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아름다움이 특정한 사물에 속하는 게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의 태도에 있단 걸 깨달았다. 나는 내가 세상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아내와 가끔 동네 도서관에 들르곤 한다. 다음번에는 이제는 성인이 되어 부모와의 동행을 즐기지 않는 두 아이를 구슬려 온 가족이 함께 도서관에 와야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열람실 안에 각자 흩어져 조용히 보고 싶은 책을 보며 가끔씩 미소를 교환하다가, 정오쯤 네 사람의 눈이 맞는 순간 약속이나 한 듯 일어나 도서관 근처 조그만 동네 식당에서 조촐한 점심을 같이 먹으면 좋겠다. 꼭 그리해야겠다. 글 이지형(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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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람, 사랑
좋은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눈 덮인 단풍 나무 모습
잘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기온차 큰 환절기
감기 유의하시고
늘 건강하세요
沃溝 서길순 님 !
감사합니다 ~~
좋은글 감사 합니다
안녕하세요
고우신 걸음으로
멘트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늘도
좋은 날 보내시고
행복하세요
동트는아침 님 !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고운 멘트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늘도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목자 님 !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눈이 많이 내렸다고 하는데요..
눈길 미끄럼 주의 하시고..
포근하고 따뜻한 날들 보내세요
오늘도 감동방에 좋은 글 고맙습니다^^
반갑습니다
핑크하트 님 !
고운 멘트남기고
다녀가셔서 감사합니다 ~
뜻있는 12월 맞이하시고
늘 건승하시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