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 캔버스에 유화 / 78×114cm
“역사의 한 페이지를 옮겨 놓은, 그리고 파리 사람들의 생활을 담은 귀중한 유산이다.
인상파 화가들이 이런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주제 때문이 아니라 색채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인상파 화가들이 다른 화가들과 다른 점은 바로 이것이다.”
-조르주 리비에르(19세기 프랑스 미술 평론가)
이 그림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대표작인 동시에 인상파의 대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유명하고 익숙한 그림이다. 대부분 이 그림을 어디에서 많이 봤다고 느낄 테지만 우리가 보아 온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는 사실 이 그림이 아니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이것과 거의 똑같은 그림이다.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것은 크기가 131×175센티미터로 이 그림보다 훨씬 크고 디테일이 더 또렷하다. 반면 이 그림은 크기가 작고, 즉흥적으로 빨리 그린 듯 사람들의 형태가 흐릿하다. 그래서 이 그림을 습작처럼 먼저 그린 뒤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것을 그렸다고 추측할 수 있다. 두 그림은 제목도 다르다.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것은 〈Bal du Moulin de la Galette〉로, ‘무도회(Bal)’라는 말이 들어가 있지만 이 그림의 제목에는 ‘무도회(Bal)’라는 말이 빠져 있다. 하지만 두 그림은 똑같은 장면을 그린 것이라 너무 비슷하다. 사진으로만 보면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 그림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의 앞에 나온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을 소장한 존 헤이 휘트니 부부가 1929년부터 갖고 있던 것이다. 존 헤이 휘트니가 사망하고 8년이 지난 1990년에 아내 헬렌 휘트니가 〈물랭 드 라 갈레트〉를 경매에 내놓았고, 일본인 기업가 료에이 사이토가 샀다. 앞서 나온 반 고흐의 〈가셰 의사의 초상〉을 샀던 바로 그 사람이다. 이 그림과 〈가셰 의사의 초상〉이 거래된 1990년은 일본 경제가 최절정에 달했을 때다. 당시 일본인들은 현찰을 들고 나가 세계 미술 시장에서 고가의 그림, 특히 인상파 그림을 많이 샀다. 일본인들은 서양 미술 중에서도 인상파 그림을 특히 좋아한다. 그래서 지금도 세계 미술 시장에 나오는 인상파 작품 중에는 일본인들이 소장하던 것이 꽤 된다.
이 그림은 파리의 유명한 무도회장이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평범한 일요일 오후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사람들이 춤을 추거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편안한 모습을 그렸다. 춤추는 사람들의 옷, 리본, 머리카락 위에서 한낮의 햇빛이 반짝거린다. 르누아르는 사람들 개개인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리는 대신, 여유롭고 행복해 보이는 무도회장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스케치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 그림 속 사람들은 마치 스냅 사진에 찍힌 것처럼 자신들이 그림의 모델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자연스럽게 각자의 일에 열중하고 있을 뿐 그림을 위해 포즈를 취한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인상파 화가들이 그 전 화가들과 다른 것은 이렇게 주변의 자연스러운 풍경과 실제 사람들을 그렸다는 점이다. 과거의 화가들은 주로 신화와 역사 속에서 소재를 끌어왔다. 신화와 역사 속 소재나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늙거나 없어지지 않는 위대한 신과 영웅과 그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하지만 인상파 화가들은 정반대였다. 순간의 장면, 현재의 모습, 곧 사라지고 없어질 것들, 시간이 지나면 늙어서 죽을 이웃의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주제 자체보다는 빛, 색깔, 움직임 등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가리켜 ‘앙플레네르(En Plein Air)’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는 영어로 ‘In the Open Air’, 즉 스튜디오 안에서 그린 그림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 주변 사람들과 풍경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다. 인상파의 대표 화가 모네와 르누아르는 전형적인 앙플레네르 스타일의 그림을 그린 화가들이다.
이런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인상파 화가들은 각자 스타일이 뚜렷하게 달랐다. 모네는 물감과 캔버스를 들고 스튜디오 밖으로 나가 햇빛이 부서지는 강물과 연못을 느낌대로 그렸고, 르누아르는 당시 파리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어느 신화 속 한 장면보다 아름다운 풍경으로 그려 냈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이 그림 속 무도회장은 무척 낭만적이고 호화로운 곳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파리 중산층 가족들이 즐겨 찾던 가장 대중적인 사교장이었다고 한다. 인상파 화가들 중에서도 인물 표현에 특히 뛰어나던 르누아르는 완벽한 몸매의 전문 모델 대신 여기에서 놀고 있는 평범한 엄마와 소녀들을 모델로 썼다. 이 그림에는 인상파라는 사조의 특징과 르누아르라는 화가 개인의 특징이 아주 잘 드러나 있다.
첫댓글 그림이 좋은건가용?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