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워크 / 김소연
텅 빈 종이 봉지가 유유히 날아간다 텅 빈 주차장을 만끽하는 것 같다
저쪽 끝에서 이쪽 끝까지, 몇 번의 스텝으로 유유히
“뭐 하니” 하고 나에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리고 저녁이 내려오고 있다
보였던 것들이 하나씩 지워지고 있을 뿐인데도 무언가가
끝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뒤로 걷고 싶다
차차 누군가를 지나치고
차차 누군가의 등을 잠시 바라보고
차차 누군가가 멀어지고
차차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누군가가 두 팔을 벌린 채
내 등을 안아주려고 서 있는 데까지
무사히 도착하고 싶다
그는 저 멀리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그쪽으로 가지 말고 이리 와봐” 하면서
영원히 나를 기다린 것 같다
물론 앞으로 걸어도 좋을 것이다
기다리는 사람은 멀리 있고 그를 조금 더 모른 척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물론 좋을 것이다 앞으로 걷는 게 덜 우스꽝스러울 테니까
나는 대체로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고
그래서 대체로 혼자 있고 싶어 했으니까
지금부터 뒤로 걷는 거다 부드러운 스텝으로 저쪽 모퉁이까지 그리고 모퉁이를 돌아
구두를 벗고 재킷을 벗고 콧수염을 떼는 거다
― 시집 『촉진하는 밤』 (문학과지성사, 20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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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연 시인
1967년 경북 경주 출생. 가톨릭대 국문학과 및 같은 대학원 졸업.
1993년 《현대시사상》 등단.
시집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눈물이라는 뼈』 『수학자의 아침』 『i에게』 『촉진하는 밤』 등.
산문집 『마음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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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가 점차 어두워지는 저녁 무렵,
텅 빈 주차장에 가만히 서서 텅 빈 종이 봉지를 바라보는 사람은 어떤 이일까.
텅 빈 것을 연습하는 그 마음의 공허를 더듬어 본다.
어쩐지 그는 여기가 아닌 어딘가 먼 곳에 마음을 줘 버린 것 같다. 먼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누군가가 두 팔을 벌린 채 내 등을 안아주려고 서 있는 데까지 무사히 도착하고 싶다”는 고백.
텅 빈 종이 봉지처럼 뒤로 걸어서. 춤추듯 날아서.
얼핏 우스꽝스러울지도 모르지만 한 번 시작된 “문워크”를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멈춘 순간, 너 지금 뭐 하니? 뭐 하니? 아픈 물음이 맴돌 것이다.
다르게 산다는 것. 다르게 걷는다는 것. 조금씩 멀어지고 사라지는 쪽으로.
- 박소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