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大千·78) 동국대 명예교수는 자타가 인정하는 ‘삼국유사 박사’다.
1958년 대학 3학년 때 처음 쓴 ‘화랑도 창설에 대한 소고’를 비롯해 석·박사 논문 모두 삼국유사를 토대로 썼다. 대학생 때 썼던 논문은 당시 학생으로선 유일하게 「동국사상」 창간호에 실릴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석사논문 ‘신라 백월산 이성(二聖) 성도기 연구’도 학계의 원로 서여 민영규 선생으로부터 “감동하고 감복했다”는 찬사까지 받았다.
당시 쟁쟁한 학자들의 원고 중심으로 편찬된 『조명기화갑기념불교사학논총』(1965)에 당당히 이 논문이 실린 것도 젊은 그의 삼국유사 이해가 비범하다는 선학들의 인정과 격려 덕분이었다.
김 교수는 이후 50여 년간 250여 편의 논문과 40여 권의 책을 썼다. 이들 논문 중 삼국유사와 직접 관련된 논문만도 30편이 훌쩍 넘는다. 그 세월 동안 김 교수가 삼국유사를 읽고 펼쳐본 횟수는 수천, 수만 번. 그토록 귀히 여겼던 육당 최남선이 편찬한 삼국유사도 이젠 낡고 너덜너덜해졌다.
이런 김 교수가 최근 『자세히 살펴본 삼국유사』(도피안사 간) 첫 권을 펴냈다. 그는 머리말을 대신한 ‘보각국사님께 올리는 글월’에서 “국사님께서 힘들여 수집하시고 알뜰히 엮어 놓으신 그 숱한 이야기와 많은 옛일들을 첫 장부터 차례로, 될수록 자세히 살펴서 그 바른 뜻이 드러나도록 풀이하도록 애썼다”고 밝혔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그의 삼국유사 결정판이자 학문적 회향의 첫 결실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싶다.
곧 팔순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본책 8권에 별책 3권이라는 계획까지 세운 김 교수. 그가 말하는 삼국유사의 ‘바른 뜻’은 과연 무엇일까? 지난 11월 25일 서울 인사동 한 찻집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뒤늦게 삼국유사 역주 작업을 시작하신 이유는?
“저자인 일연 스님이 불교인이었고 삼국유사를 쓸 무렵도 불교시대였다. 또 전체 9편 중 왕력(王曆)편과 기이(紀異)편을 제외한 삼국유사 모두 불교적인 내용들이다. 따라서 불교를 알지 못하곤 삼국유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불교의 눈으로 삼국유사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이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라는 말이다.”
▷삼국유사 번역서가 100여 권이나 된다. 이번 삼국유사는 어떤 차이가 있나?
“삼국유사의 새김·풀이·연구라고 부제를 달았듯 한 구절 한 구절 가장 쉽고 자세히 풀어쓰려고 애쓰고 있다. 내 학문적인 회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책 서두에서 ‘이 문헌 찾고 저 참고서 훑어보며 눈병이 나도록 살폈다’고 적었다. 하루 몇 시간이나 작업하시나?
“밤 12시부터 새벽 3~4시까지 매일 원고를 집필한다. 낮에는 자료를 찾거나 밤에 쓴 원고도 검토한다. 어떤 날은 전거 하나를 찾기 위해 꼬박하루가 걸리기도 했다.”
▷혹사 수준 같은데 건강은 어떠신지.
“글을 쓰는 오른팔보다 왼팔이 많이 아프다. 얼마 전 다시 산책을 시작했다. 이틀에 한 번씩 나가는데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산책할 때 턱걸이도 하는데 한번에 15개씩 세 번쯤 반복한다. 아직 건강이 좋은 편이다.”
▷육당은 그의 삼국유사 해제에서 ‘일연의 공은 서방의 헤로도토스에 비할 것’이라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삼국유사를 잡을 것’이라고 했다. 선생님께 삼국유사는 어떤 의미인가?
“나 또한 마찬가지다. 일연 스님의 공적은 길이 찬양받아야 할 것이며, 삼국유사도 민족의 옛 역사와 문화의 성전으로서 높이 평가돼야 한다. 불교 역사를 엮은 삼국유사는 신라를 중심으로 한 초기의 ‘민족불교문화사’라 할 수 있다.”
▷삼국유사 중 왕력편은 나머지 편들과 사뭇 다르다. 이 때문에 왕력편은 일연 스님이 쓰지 않았다거나 부록으로 보려는 견해도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왕력 표는 한 마디로 삼국유사 전체의 대전제이며, 그 시대 범주의 기본 틀이다. 일연 스님이 왕력편을 첫머리에 붙였던 것도 그 때문이다.”
▷왕력은 보통 뒤에 붙지 않나.
“그 점이 바로 삼국유사가 불교적인 편찬 의도에서 찬술됐다는 반증이다. 수나라 때 간행된 『역대삼보기』(597년)의 연표인 ‘제년록(帝年錄)’이나 『경덕전등록』(1004년)의 연표인 ‘서래연표(西來年表)’도 모두 앞부분에 연표가 실려 있다. 일반 사서들과는 달리 불교 역사서의 성격이 강한 책들은 연표를 전체 권 앞부분에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도 불교사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불교역사서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럼 기이편도 불교적인 안목으로 편찬된 것인가?
“물론 그렇다. 예를 들어 현행 판본(정덕본)에는 『고기』 운의 첫 마디가 ‘석유환국(昔有桓 )’이다. 하지만 이는 인(因)을 잘못 해석한 것으로 ‘석유환인(昔有桓因)’이 맞다. 『제왕운기』나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등에도 분명 ‘환인’으로 돼 있다.
그런데 육당 선생을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환국을 고집해 엉뚱한 해석을 하고 있다. 환인은 『잡아함경』 권40을 비롯해 경전에 셀 수 없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경전에 등장하는 환인제석은 호법, 호세적이며, 베풂(보시)과 효행 등 인간 세상의 선을 권장하고 보호하고 있다.”
▷‘환인’ 자체가 불교적인 용어라는 것인가.
“당연하다. 환인뿐 아니라 ‘단군(檀君)’이라는 말도 그렇다. ‘단(檀)’이라는 말을 두고 박달나무, 향나무 등 온갖 추측과 해석이 난무한다. 그러나 이 ‘단’은 불교경전에 흔하게 나오는 말로 범어의 ‘da-n’ ‘da-na’를 옮긴 글자로 바로 보시(布施)를 의미한다. 6바라밀의 하나인 보시바라밀도 ‘단바라밀(檀波羅蜜)’로 쓰이곤 했다. 널리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베풂을 뜻한다. 따라서 ‘단군’은 ‘보시하는 군주’를 일컫는다고 볼 수 있다.”
▷충분히 공감 가능한 해석 같다.
“불교적인 이해가 있어야 삼국유사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심지어 경전에 ‘홍익중생(弘益衆生)’이라는 말도 나온다.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점에서 홍익인간과 홍익중생은 같은 의미다. 또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천하는 임금이 곧 베푸는 임금이라는 점에서도 단군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일연 스님은 어떤 분이라고 보시나?
“삼국사기에서 쓰지 않은 유문(遺聞), 일사(逸事)를 먼저 챙겨 다룬 점에서도 참으로 겸손하셨던 스님의 마음이 읽혀진다. 학승이자 선승이며 직접 노모를 모셨던 효자이기도 했던 스님은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님을 온 몸으로 보여준 위대한 분이시다.”
▷언제 이 작업이 마무리되며, 별책에는 어떤 내용이 담기나?
“(출판사 발행인) 송암 스님에겐 죄송하지만 기한은 정해놓지 않았다. 다만 부지런히 연구하고 쓸 따름이다. 별책으론 ‘한글 삼국유사’ ‘삼국유사의 이해’ ‘단군연구’ 등을 계획하고 있다.”
▷2006년 1월 『태고종사』 편찬 이후 조계종의 많은 반발이 있었다. 학문적 소신이었나?
“그건 태고종 종단사간행위원회가 펴낸 책이고, 난 의뢰를 받아 공개된 내용을 정리했을 뿐이다. 나는 50년 넘게 학문을 하면서 지금것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자부한다. 지난번도 마찬가지다.”
▷요즘 젊은 학자들 사이에선 ‘불교학계에 원료가 없다’는 불만이 나오곤 한다. 원로학자들의 세미나 참여가 거의 없는 등 소통문제인 것 같다. 젊은 불교학자들의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부끄럽고 죄송하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이 많고 남은 시간은 별로 없다. 오랫동안 집밖을 거의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칩거는 계속될 것 같다.”
▷후학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면?
“모든 불교사는 불교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역사서 뿐만 아니라 경전과 논서도 끊임없이 읽어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학 때부터 좌선한다고 들었는데?
“부처님의 참뜻을 참구하는 것이 참선이다. 매일 규칙적으로 앉는 습관이 연구에 큰 힘이 된다.”
▷학자로 살아오면서 늘 가슴에 새긴 구절이 있다면?
“인도 유가행파 논사인 호법께서는 ‘미소가 모든 마군을 항복받는다’고 하셨다. 늘 미소짓는 일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이며 닮아가는 일이다.”
▷삼국유사 역주 이외에 계획은?
“다른 계획은 없다. 단지 지금의 나에겐 삼국유사만 있을 뿐이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025호 [2009년 12월 01일 10:18]
첫댓글 김영태교수님 글을 뵈면서 어제 동기들끼리 했던 이야기, 참회합니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이 짧아 학회 참석도 삼가시고, 책이 너덜너덜 할 때까지 보셨다는 말씀에는 공부하는 자세를 보여주시는 듯하여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고맙습니다. 불교설화쯤으로 인식되는 삼국유사가 다시 살아 숨쉴 수 있는 좋은 역작 나오시길 기원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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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저 연세에 대단하십니다...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나무마하반야바라밀
교수님의 삶을 보면서 출가와 재가의 구분이란 것이 참 무색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근본자리를 밝히고 매진하며 회향하시는 모습에서 한 평생 수행하신 선승을 보게 됩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오래 머물러주시길...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참선으로 깨우침을 향해 수행 정진하시는 스님들의 모습이나 정말 불교사 연구에 전념하시는 모습이 또 같다는 생각을 저도 했습니다. 저렇게 열심히 수행하시는데~~~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