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마이카상 / 김태정
이젠 너를 갈아치울 때가 되었나보다
네가 낡아서가 아니야
이십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해온
네가 이젠 무서워졌다
무서워졌다 나의 무표정함까지도 거뜬히
읽어낼 줄 아는 네가,
반질반질 닳아버린 모퉁이 만큼 노련해진 네가
너를 펼쳐놓은 순간부터
시를 쓸지 책을 읽을지
아니면 밥을 차려 먹을지
내 행동을 점칠 줄 아는 네가 무서워졌다
네 앞에서 시를 쓴다는 것이
네 앞에선 거짓말을 못한다는 것이 무서워졌다
이십년 전이나 이십년 후나
변함없이 궁핍한 끼니를 네게 보여야 한다는 것이
불편해졌다
책상도 되고 밥상도 되는 네 앞에서
시도 되지 못하고 밥도 되지 못하는
나의 현재가 문득 초라해졌다
시가 밥을 속이는지
밥이 시를 속이는지
죽도 밥도 아닌 세월이 문득 쓸쓸해졌다
이 초라함이,
이 쓸쓸함이 무서워졌다
네 앞에서 발바닥이 되어버린 자존심
아무래도 이 시시한 자존심 때문에
너를 버려야 할까보다
그래 이젠 너를 갈아치울 때가 되었나보다
-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창비, 2004)
* 김태정(金兌貞) 시인
1963년 서울 출생
1991년 <사상문예운동> 등단
등단 13년 만에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시만 빼고 다 버렸다'며 전남 해남 근처 미황사라는 절 아래 동네로 내려가 혼자 살다가
2011년 암으로 작고 (향년 48세).
***************************************************************************************
2년 전인 2011년 9월에 타계한 시인의 시를 늦게야 읽는다.
밥상으로 옮겨간 자아와 죽기 살기로 대치하고 있는 시인을 만난다.
그녀는 2004년 창비에서 나온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을 남겼다.
서울 토박이었던 사람이 불쑥 땅끝 해남으로 내려간 것은 그해이다.
돌아갈 다리를 불태운 장수처럼, 내려올 계단을 부숴버린 암자의 수행자처럼,
시의 바다까지, 아니 시의 바닥까지 내려가며 익숙했던 도시를 향한 문을 닫아걸었다.
호마이카상을 갈아 치우겠다는 선언은, 자기를 갈아 치우겠다는 말이리라.
시가 인간을 궁하게 하는 현실을, 자신에게만큼은 들키고 싶지 않은 맹렬한 고집이 시의 결을 돋운다.
자본주의가 밀어내버린 시의 자리, 밥의 법칙이 비웃는 시의 법칙. 암덩이를 껴안고도,
땅끝까지 찾아온 사람들에게 민들레처럼 쓸쓸하고 담담하게 웃었다는,
시의 기개(氣槪) 앞에 늦게야 여기 한 사내가 고개를 숙인다.
- 이상국 (시인ㆍ아시아경제 편집부장)
****************************************************************************************
오래 쓴 물건엔 정령 같은 것이 머물지요.
그럼 이 시인의, 시도 쓰고 밥도 먹는 20년 된 호마이카상은 육체와 정신이 함께 깃들어 있는 물건인가요.
허나 그는 이미 자신의 약점까지를 꿰뚫고 있어서 시인은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입니다.
말하자면 그 상은 자아를 검열하는 또 하나의 자아인 셈. 양심이라고도 할 수 있을 또 하나의 자아를
예민하게 의식하고 사는 시인이 그걸 쉬 버릴 수 있을까요?
- 손진은 (시인)
***************************************************************************************
서울 토박이 김태정 시인은 2004년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첫 시집을 내고 서울을 떠났다.
홀로 해남 땅 끝으로 내려갈 때에도 호마이카상을 버리지 않았다.
그 상을 갈아엎겠다는 것이 자존심 때문이라지만 그보다 자신의 궁핍과 생각을 다 들켜버린
초라함과 쓸쓸함이 무서웠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암 덩어리를 품고 대적한 죽음은 아니었을까.
2011년 9월 타계할 때까지 서로의 궁핍을 읽어주었을 가족 같은 호마이카상은
그녀의 마지막 모습까지 지켜주었을 것이다.
- 김명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