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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 우포(牛浦, 소벌)늪을 찾았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목포(木浦, 나무벌)늪 들머리에 들어서자 밀림처럼 우거진 왕버드나무숲이 눈에 들어온다. 숲에는 아침안개가 살짝 드리워져 있어 태고적 신비를 느끼게 한다.
우포늪은 낙동강 지류인 토평천 유역에 약 1억 4000만 년 전 한반도가 생성될 시기에 만들어진 국내 최대 최고의 원시 자연늪지로 경상남도 창녕군 유어면 대대리와 세진리, 이방면 옥천리와 안리, 대합면 주매리 일원에 걸쳐 있다. 규모는 약 70여만 평으로 담수면적 2.3㎢, 가로 2.5㎞, 세로 1.6㎞이다. 우포늪은 목포, 우포, 사지포(砂旨浦, 모래벌), 쪽지벌 등 네 개의 늪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에서 우포가 가장 크다. 다음이 목포, 사지포, 쪽지벌 순이다.
1997년 실시된 생태계 조사를 통해서 우포늪에는 총 342종에 이르는 동물과 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물은 가시연꽃을 비롯해서 생이가래, 부들, 줄, 골풀, 창포, 마름, 자라풀 등 168종, 조류는 쇠물닭과 논병아리, 노랑부리저어새(천연기념물 제205호), 청둥오리, 쇠오리, 큰고니(천연기념물 제201호), 큰기러기 등 62종, 어류는 뱀장어, 붕어, 잉어, 가물치, 피라미 등 28종, 수서곤충은 연못하루살이, 왕잠자리, 장구애비, 소금쟁이 등 55종, 패각류는 우렁이, 물달팽이, 말조개 등 5종, 포유류는 두더지, 족제비, 너구리 등 12종, 파충류는 남생이, 자라, 줄장지뱀, 유혈목이 등 7종, 양서류는 무당개구리, 두꺼비, 청개구리, 참개구리, 황소개구리 등 5종이 서식하고 있다. 우포늪은 그야말로 생태계의 박물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포늪이 습지생태계로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정부는 1997년 7월 26일 이 일대를 생태계보전지역 가운데 생태계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하였다. 그 이듬해인 1998년 3월 2일 우포늪은 국제습지조약(람사협약) 보존습지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1999년 8월 9일 정부는 우포늪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우포늪은 이제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늪지로 그 보존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
장재리 생태학습원에서 아침해를 맞는다. 동녘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떠오른 햇살이 찬란하다. 아침햇살을 받은 숲에서 안개가 끊임없이 피어오른다. 이토록 고요하고 평화로운 아침을 맞아본 적이 언제던가! *장재리 (사)푸른우포사람들 사무국과 생태학습원
*생태학습원 옆의 작은 늪
생태학습원에서는 늪체험장, 생태관찰소, 생태교실을 운영하고 있어 우포늪에서 살아가는 식물들을 한눈에 볼 수가 있다. 생태학습원 건물에는 두 개의 작은 늪지가 붙어 있다. 생태학습원 바로 앞에 있는 늪에는 늪 한가운데 통로를 설치해서 수중식물과 동물들을 보다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하였다. 늪의 수면은 생이가래가 뒤덮고 있고, 부들은 잎이 누렇게 말라가고 있다. 생태학습원 옆의 늪에도 뗏목을 띄워 놓아 수중생태계를 직접 탐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곳도 역시 생이가래가 꽉 들어차 있다. *장재리 생태학습원에서 바라본 목포 전경
장재리 생태학습원에서 목포늪을 바라본다. 호수면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산중턱에 걸려 있다. 산그리메가 진 잔잔한 수면..... 한 폭의 산수화가 따로 없다. 목포늪 가장자리를 따라서 손바닥만한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떠 있다. 저 멀리 늪 한가운데에도 작은 섬이 보인다.
목포늪은 우포늪의 북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여름에는 온갖 수생식물들이 군락을 이루는데, 특히 가시연과 왕버들 군락지로 유명하다. 목포늪은 처음에 나무벌 또는 나무갯벌이라고 했다. 여름철 장마가 지면 이 늪의 작은 하천을 따라서 나무가 많이 떠내려와 땔감을 모을 수 있는 곳이었기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목포늪 제방에서 바라본 우포늪
목포늪 제방으로 자리를 옮겨 우포늪을 바라본다. 우포늪의 수면이 아침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난다. 잔잔한 수면 위에 마치 금비단을 펼쳐 놓은 듯 아름다운 풍경이다.
우포늪은 겨울이 되면 철새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포늪 북동쪽에 사지포늪이 있다. 사지포늪은 사람들의 출입이 좀 뜸한 편으로 여름철에는 물옥잠꽃이 장관이다. 네 개의 늪 모두 모래와 뻘이 있지만 사지포늪은 그중에서 가장 모래가 많은 까닭에 모래늪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곳 사람들은 우포늪을 소벌이라고도 부른다. 소벌의 유래는 이렇다. 우포늪과 목포늪 사이에는 우항산(牛項山, 소목산)이 있어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물을 먹는 소의 목처럼 생긴 까닭에 '소가 마시는 벌(넓은 들판, 펄)' 즉 소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소벌을 한자로 표기하면 바로 우포(牛浦)가 된다. 또 다른 유래가 있다. 옛날 마을사람들은 풀과 물이 풍부한 이 늪에서 소를 많이 키웠다고 한다. 그래서 소를 기르는 벌 또는 소에게 물을 먹이는 벌이라 하여 소벌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지금도 우항산 기슭에는 소목이라는 마을이 있다. *우포늪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 우포늪에서 물이 토평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어귀에는 낚시꾼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아마도 밤을 새워 낚시를 한 듯하다. 이곳에는 붕어나 잉어, 가물치 등과 같은 물고기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고 하니 낚시꾼들이 몰려들 만도 하다. *위쪽 토평천 *토평천에서 자라고 있는 어리연과 생이가래
우포늪의 서남쪽을 흐르는 토평천으로 자리를 옮긴다. 토평천은 창녕군 유어면 대대리에서 우포늪으로 유입된 뒤 서남쪽으로 빠져나가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토평천은 우포늪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토평천 상류로부터 실려온 퇴적물이 낙동강과 합류하기 전 자연제방의 형태로 쌓이는 한편 낙동강의 강바닥이 높아져 이곳의 물이 제대로 빠져 나가지 못해서 거대한 늪지가 형성된 것이다.
이곳 토평천에도 생이가래가 수면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다. 생이가래는 참으로 대단한 생명력과 번식력을 가진 식물이다. 생이가래 군락 사이에는 어리연도 보인다. 어리연의 노오란 꽃망울이 물속에서 이제 막 올라온 듯 물방울이 맺혀 있다.
아래쪽 토평천에 잔물결이 일고 있다. 토평천 오른쪽 즉 우포늪 서쪽에 쪽지벌늪이 있다. 쪽지벌은 아마도 네 개의 늪 중에서 크기가 가장 작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쪽지벌은 아주 작은 늪이라는 뜻이다. 원래 우포늪 주변에는 가항늪, 팔락늪 등 10여 개의 늪이 더 있었는데, 농지를 위한 매립으로 지금은 사라져 버렸다. 우포늪도 한 때 매립의 위기에 처했지만 지역주민과 환경단체의 노력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포늪을 떠나려고 하는데 흑갈색의 깃털을 가진 큰기러기떼가 날아와 앉는다. 큰기러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바라보기는 처음이다. 기러기는 북반구의 북부에서 번식하고 겨울에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오는 철새다. 전세계적으로 14종의 기러기가 알려져 있으며, 한국에는 흑기러기와 회색기러기, 쇠기러기, 흰이마기러기, 큰기러기, 흰기러기, 개리 등 7종이 발견되고 있다. 이중에서 흰이마기러기와 회색기러기, 흰기러기 등 3종은 길 잃은 새(迷鳥)들이고 나머지 4종은 모두 겨울새다. 흑기러기는 전라남도 여수에서 부산 다대포 앞바다에 이르는 바다에서 월동한다. 한반도 전역에서 월동하는 기러기는 쇠기러기와 큰기러기 2종 뿐이다. 쇠기러기는 몸길이 72㎝로 깃털이 회갈색이고, 큰기러기는 몸길이 85㎝에 깃털이 흑갈색이다. 이들 두 종의 기러기는 10월 하순경부터 한국에 날아오기 시작하여 습지나 저수지, 해안 갯벌 등지에서 겨울을 난다.
기러기는 예로부터 사람들에게 매우 친근한 새였다. 기러기는 가을에 와서 봄에 돌아가는 철새다. 그래서 기러기가 날아오면 '아, 가을이구나.'하고 비로소 가을이 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기러기는 그 울음소리가 구슬퍼서 날씨가 추워지고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라는 계절과 어울려 서글프고 처량한 정서를 나타내 주는 새이기도 하다. 또한 기러기는 사람이 왕래하기 어려운 곳에 소식을 전해 주는 새로도 알려진 까닭에 '신조(信鳥)'라고도 한다. 뿐만 아니라 기러기는 부부 사이에 금슬이 아주 좋은 새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짝 잃은 외기러기'나 '기러기 아빠', '외기러기 짝사랑'같은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처럼 기러기는 우리에게 가을을 알려주는 새, 소식을 전해주는 새, 부부간의 사랑이 지극한 새로 각인되어 있다.
우포에 가면 꼭 봐야 할 여덟 가지 풍경이 있다. 이른바 우포팔경이라고 하는 것이다. 제일경은 장재마을 앞 목포늪에 있는 왕버들숲과 그 그림자가 호수면에 비친 모습이고, 제이경은 여름밤 반딧불이의 야간비행이다. 제삼경은 한여름에 물풀이 빈틈없이 들어찬 우포늪의 풍경이고, 제사경은 국내 식물중 잎이 가장 크다는 가시연 군락이다. 제오경은 우포늪 전체가 붉게 물드는 해질 무렵 지는 해를 향해 날아오르는 기러기들의 비상이고, 제육경은 겨울에 우포늪을 찾은 백조들의 군무다. 제칠경은 수초 사이를 헤치고 다니는 장대나룻배의 모습이고, 제팔경은 호수면에 가득 내려 앉은 밤하늘의 별자리다. 우포팔경을 제대로 보려면 여름에 다시 찾아야 하겠다.
우포늪에 가을이 깊게 내려앉아 있다. 우포늪의 가을을 가슴에 안고 귀로에 오른다.
2006년 11월 5일 |
출처 : 林 山의 거꾸로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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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林 山 |